▲ 박재승 위원장은 ‘공천 특검’이란 명성에 걸맞게 거침없이 쇄신의 칼날을 휘두르고 있다.(왼쪽), 당 일각에서는 공심위의 최종 칼날이 박상천 대표를 겨냥하게 될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하지만 칼날이 매서운 만큼 그 후유증 또한 만만치 않다. 공천을 둘러싼 각종 음모론이 나도는가 하면 낙천자들을 중심으로 무소속 연대를 추진하려는 움직임도 감지되고 있다. 특히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핵심 측근인 박지원 전 비서실장과 차남인 김홍업 의원이 무소속 출마를 강행할 경우 민주당은 적전분열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전통적 표밭인 호남이 민주당과 동교동계를 중심으로 한 호남권 무소속 연대가 정면으로 충돌하는 ‘대혈투의 장’으로 변질될 것으로 관측되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권 주변에선 민주당의 호남권 분열이 현실화될 경우 4월 총선을 전후해 ‘범야권 2차 빅뱅’으로 이어질 것이란 얘기도 꽤 설득력 있게 나돌고 있는 실정이다. ‘공천 전쟁’을 넘어 ‘2차 빅뱅’ 소용돌이에 휘말리고 있는 민주당 공천 막후 스토리를 들여다봤다.
“한밤의 쿠데타다.” “정치적 음모다.”
지난 12일 오전 공천 탈락 소식을 접한 현역 의원들이 이구동성으로 쏟아낸 말들이다. 구 민주당 대선후보였던 이인제 의원을 비롯해 호남지역 현역 의원 9명은 공천 탈락 소식을 듣고 공심위에 거세게 항의하는가 하면 일부 의원들은 탈당 후 무소속 출마도 불사하겠다는 강경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날 탈락한 호남 의원은 광주지역의 정동채 김태홍 의원, 전남의 이상열 신중식 채병인 김홍업 의원, 전북의 한병도 이광철 채수찬 의원 등 9명이다. 호남권 전체 의원은 모두 31명으로 불출마를 선언한 김원기(전북 정읍) 염동연(광주 서갑) 의원을 제외하면 31%가 탈락된 셈이다. 비호남권 지역구 현역 의원 중에는 이근식(서울 송파병) 김형주(서울 광진을) 이원영(경기 광명갑) 이상민 의원(대전 유성) 등이 탈락됐고 ‘숙청 대상자’로 포함된 이용희 국회 부의장까지 포함하면 현역 의원 낙천자는 모두 15명으로 늘어난 상태다.
하지만 박 위원장과 ‘공포의 외인부대’로 통하는 공심심사위원회(공심위)는 개혁공천을 염원하는 여론을 등에 업고 내친김에 호남권 경합 지역구에서도 대대적인 현역 숙청몰이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실제로 공심위는 DJ와 노무현 대통령의 측근들은 물론 호남권 터줏대감인 중진급 의원들을 숙청하는 데도 흔들림이 없었다.
박 위원장이 주도적으로 진영을 짠 외부 공심위가 구성됐을 때부터 당 안팎에선 이들이 ‘대형사고’를 칠 것이란 관측이 우세했다. 외부에서 발탁한 공심위원들 대부분이 개혁 성향인 데다 대학교수(정해구), 시골의사(박경철), 시인(인병선), 재야 역사학자(이이화), 광복군의 아들(장병화), 언론인 출신(김근) 등 다양한 이력을 소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박 위원장도 이들 공심위원들을 개혁공천 가치를 공유하는 ‘코드인사’라고 시인한 바 있다.
대통합민주신당 출신의 김부겸 이인영 의원과 구 민주당 몫으로 인선된 최인기 김충조 최고위원, 황태연 동국대 교수 등 내부 공심위원(5명)보다 이들 ‘외인부대’가 수적 우위를 점하고 있다는 점도 공심위의 개혁 칼날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이들 외부 공심위원들은 ‘한국판 포청천’으로 불리는 박 위원장과 찰떡 공조를 과시하며 기성 정치권을 상대로 거침없이 메스를 들이대고 있는 형국이다.
외부 공심위원들은 수도권 단수 지역 현역을 전원 통과시키거나 일부 D등급 현역들을 후보로 확정한 것을 두고 당 지도부 및 내부 공심위원과 적잖은 마찰을 빚기도 했으나 결코 쇄신 의지를 접지 않았다. 공천 초반 최대 관심사였던 비리 전력자 배제 기준과 관련해서는 ‘11인 전원 숙청’이라는 초강수 카드를 꺼내들었고 비호남권 현역에 대해서도 칼끝을 겨눴다. 나아가 공심위는 전략공천과 비례대표 선정 작업에도 적극 개입하고 있다.
당 일각에선 공심위의 최종 칼날이 박상천 대표를 겨냥하게 될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한나라당이 13일 친이계와 친박계의 수장 격인 박희태 전 국회부의장과 김무성 최고위원 등 영남권 거물들을 대거 탈락시키며 ‘개혁공천’ 주도권 경쟁에 나선 만큼 공심위가 분위기 반전 차원에서 당내 거물급인 박 대표를 희생시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논리다.
실제로 박 위원장은 ‘수도권 징발론’ 대상에 박 대표를 염두에 뒀던 것으로 확인되고 있고 박 대표 측은 ‘음모론’으로 이에 맞선 바 있다. 구 민주당 측 관계자는 “박 대표와 박 위원장이 공천 과정에서 자주 갈등을 빚어온 게 사실이고 공심위 또한 개혁공천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박 대표를 타깃으로 삼고 있다는 소문이 무성하다”며 “공심위가 끝내 박 대표에게 칼날을 겨눈다면 호남권 분열은 불가피하고 4월 총선 또한 한나라당의 완승으로 끝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처럼 가속도가 붙고 있는 공심위의 대대적인 쇄신몰이에 낙천자들은 음모론을 제기하며 조직적인 반발 움직임을 보이고 있고 아직 공천이 확정되지 않은 ‘현역’들은 “아무도 공심위 칼날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며 긴장감을 늦추지 않고 있다.
특히 일부 낙천자들은 탈당 후 무소속 연대로 총선 출마를 강행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유사시 이들의 행보는 민주당 분열을 촉발하는 기폭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이인제 의원은 14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이번 공천 결정은 저를 당에서 축출하겠다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며 “오늘 당에 요청한 재의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동지들과 유권자의 뜻을 물어 행보를 신중히 결정하겠다”고 말해 탈당을 통한 무소속 출마 가능성을 시사했다.
호남권 일부 낙천자들은 무소속 연대 방안을 추진 중이다. 신중식 채일병 이상열 의원 등 구 민주당 인사들은 남은 호남권 공천을 지켜본 뒤 추가 낙천자들과 원외위원장들을 규합해 무소속 연대로 억울함을 호소한다는 방침이다.
이와 관련해 신 의원은 한 언론 인터뷰에서 “전 지역에 걸쳐 경쟁력 있는 예비후보들을 규합, 무소속 연대나 준결사체를 구성해 총선에서 국민의 심판을 받은 뒤 비판세력에 가담하자는 입장”이라며 무소속 연대 추진을 기정사실화했다. 그는 또 “당이 세를 확대하기 위해 마지막에 ‘잔류 사수파’와 통합했는데 결과적으로 더 분열되는 상황이 벌어져 결국 소탐대실이 된 것”이라며 “탈당을 하게 된다면 공천작업이 완료된 시점일 것”이라고 말해 추가 낙천자들과 행동을 같이할 뜻을 내비쳤다.
이에 앞서 지난 2월 27일 밤 전남지역 의원 10여 명도 비공개 모임을 갖고 공심위의 공천 발표에 따른 대응 방안을 논의한 바 있다. 이미 9명의 호남 현역이 탈락한 상황에서 남은 11명의 호남 현역 중에 추가 탈락자가 생길 경우 무소속 연대는 더욱 탄력을 받게 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특히 DJ의 핵심 측근인 박지원 전 실장과 김홍업 의원의 탈당 및 무소속 연대 가담 여부는 민주당의 호남권 분열과 맞물려 초미의 관심사로 부상하고 있다. 두 사람은 DJ의 복심으로 통하고 있는 만큼 이들이 무소속 연대에 가담할 경우 이는 DJ의 의중이 반영된 것으로 해석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호남권 현역 낙천자 대부분은 해당 지역구에서 나름대로 경쟁력을 갖추고 있어 DJ의 막후 지원을 등에 업는다면 민주당 후보와 박빙의 대결이 펼쳐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정치권 관계자들은 DJ가 무소속 연대를 적극 지원할 경우 호남에서 예상치 못한 이변이 연출될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박 전 실장과 김 의원은 물론 호남권 낙천자 상당수가 나름의 경쟁력을 갖추고 있는 상황에서 DJ가 이들에 대한 지원유세에 나선다면 인지도가 낮은 민주당 후보들이 고전을 면치 못할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리고 있다.
공심위의 마지막 쇄신 칼날은 대체 누구를 향하게 될까. 또 DJ를 정점으로 한 호남권 낙천자들의 대응 카드는 과연 무엇일까. 공천심사가 막바지로 치닫고 있는 민주당에 전운이 감돌고 있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