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암 유발 여부를 두고 소송전이 이어지고 있는 존슨앤드존슨사의 베이비파우더. 그래픽=이세윤 디자이너
이 제품은 존슨앤드존슨이 1892년 유아용으로 향기나는 파우더를 발명하며 탄생했다. 여기에 이탈리아산 탤컴(Talcum, talc)과 향료를 넣어 베이비파우더로 팔기 시작했다. 베이비파우더는 이름과 다르게 사용자의 약 70%가 성인이다. 뽀송뽀송함과 향기를 사랑한 많은 여성들은 속옷이나 회음부에까지 뿌리기 시작했다.
100년도 더 지난 최근 탤컴의 안전성이 도마에 올랐다. 탤컴은 마그네슘과 실리콘으로 이뤄진 진흙 광물에 자연적으로 포함돼 있다. 발암물질로 알려진 석면 주변에서 채굴되는 탤컴은 석면에 오염되지 않기 위한 절차를 따라야 한다. 광물 중에서는 부드러운 물질인 탤컴은 습기를 제거하면서 딱딱해지는 것을 막아 화장품에 첨가된다. 알약이나 씹는 껌에도 쓰일 정도로 흔하다.
이 베이비파우더 속 탤컴 성분으로 인해 난소암에 걸렸다고 주장하는 여성들이 존슨앤드존슨과 탤컴 제조회사인 이메리스(Imerys)를 상대로 소송을 걸었다. 배심원 재판이 네 차례 열렸는데 세 번은 원고 승소, 가장 최근에 열린 네 번째 소송에서는 원고가 패소해 존슨앤드존슨의 손을 들어주었다.
소송은 2009년 다이엔 버그가 탤컴 파우더 소송을 제기하며 시작됐다. 2006년 당시 49세이던 그녀는 난소암 진단을 받았다. 다이엔은 좋은 냄새를 위해 평생 탤컴 성분이 있는 베이비파우더를 속옷에 뿌렸다. 발암 위험성을 경고하는 문구가 제품에 없었기 때문에 베이비파우더가 위험하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2013년 존슨앤드존슨은 그녀에게 소송을 취하하고 모든 공격을 접으면 130만 달러를 주겠다는 합의를 제안했다. 그녀는 비밀 유지 조항을 이유로 합의를 거절했다. 다이엔 버그는 인터뷰에서 ‘내가 이와 같은 소송을 제기한 것은 돈 때문이 아니다. 전 세계에 제품의 위험성을 알리기 위함이다’라고 밝혔다.
다이엔 버그의 소송 결과는 다소 아이러니했다. 사우스다코타 배심원들은 탤컴 파우더와 난소암과의 관계는 인정했지만 존슨앤드존슨의 배상책임은 인정하지 않았다. 이 소송은 베이비파우더 소송 중 유일하게 연방법원의 배심원 판결로 평결됐다. 다이엔 버그의 소송은 끝났지만 소송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결과도 달라졌다.
세인트루이스에서 사망한 어머니 재키 폭스를 대신해 아들 마빈 샐터가 존슨앤드존슨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마빈의 어머니는 2013년 난소암 진단을 받은 뒤 2015년 62세로 사망했다. 배심원들은 존슨앤드존슨은 피해배상금 1000만 달러, 징벌적 손해배상금 6200만 달러로 도합 7200만 달러를 유가족에게 배상하라는 평결을 내렸다.
역시 세인트루이스 법정에서 배심원들은 존슨앤드존슨은 글로리아 리스트선드에게 피해배상금 500만 달러, 징벌적 손해배상금 5000만 달러로 도합 5500만 달러를 지급하라고 평결했다. 원고 리스트선드는 존슨앤드존슨의 베이비파우더를 수십 년간 회음부에 사용해왔다. 현재 리스트선드는 자궁절제수술을 받고 회복 중이다.
세 번째 판결 역시 미주리 주 세인트루이스 지방법원에서 열렸다. 지난해 10월 28일 배심원들은 존슨앤드존슨이 원고인 데버러 지아네키니에게 피해배상금 257만 달러, 징벌적 손해배상금으로 6750만 달러로 도합 7000만 달러의 배상액 지불해야 한다고 평결했다.
지난 두 차례 배심원 평결과 달리 이번 세 번째 배심원들은 탤컴 제조 공급사인 이메리스에도 실제 손해에 대해서 10% 책임과 징벌적손해배상 금액 중 250만 달러에 대한 책임을 인정했다. 존슨앤드존슨은 항소했다.
원고측 변호인 비슬리 앨런 로펌의 테드 메도우스는 ‘이번 배심원 평결이 존슨앤드존슨가 탤컴 파우더의 위험성에 대해서 솔직하게 다 털어놓을 때가 됐음을 알리는 신호’라고 말했다.
존슨앤드존슨이 패소하면서 엄청난 배상금을 물게 되자 전국적으로 소송이 밀려들었다. 현재 미국 전역에서 2000여 개의 소송이 제기돼 있다. 집단 손해배상으로 유명한 비슬리 앨런 로펌은 세인트루이스 승소 판결 이후 5000여 개의 새로운 잠재 소송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아직 탤컴과 난소암과의 실제 인과관계는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존슨앤드존슨이 항소하기로 결정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의료전문가들이 탤컴의 난소암 유발가능성에 대해 결론 내리지 못하는 이유는 탤컴이 의약품이 아니어서 위험성을 지적한 치료보고서가 없기 때문이다.
2017년 3월 3일 세인트루이스 법원에서 진행된 재판에서 배심원들은 노라 다니엘의 난소암이 존슨앤드존슨과 탤컴 제조사인 이메리스의 책임이 없다고 평결했다. 그녀는 1978년부터 2013년까지 존슨앤드존슨의 탤컴 파우더를 사용했다. 존슨앤드존슨은 세인트루이스에서 진행된 유사한 소송에서 세 번 연속으로 패소한 후 첫 번째 승소 판결을 받아냈다.
세인트루이스 배심원인 루크 윌슨은 ‘탤컴 파우더와 난소암을 연결시키는 증거가 존슨앤드존슨에 경고 문구 부착을 요구할 정도로 강하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반대의견을 제시했던 배심원 조지 스태어는 ‘증거가 충분했다고 생각한다. 배심원들이 제품의 경고 문구를 부착시켜야 한다는 메시지를 보내지 못해 유감’이라고 말했다.
3연속 패배 뒤 승소를 따냈음에도 상황은 존슨앤드존슨에게 불리해 보인다. 현재 세인트루이스에만 탤컴 사건이 1000여 건 제기돼 있고, 뉴저지주 법원에도 탤컴 소송이 증가 추세다. 캘리포니아 주 LA 법원에서도 올해 7월부터 존슨앤드존슨의 베이비파우더 사건을 두고 배심원 재판 일정이 잡혀 있다. 다음 소송에서 패소한다면 더 많은 소송이 쏟아져 들어올 가능성도 높다.
존슨앤드존슨 베이비파우더는 국내에서도 오랫동안 판매됐기 때문에 소송을 피할 수 없을 전망이다. 제조물책임(PL)법을 다뤄온 법무법인 바른의 하종선 변호사는 “한국 여성 중 미국 피해 여성처럼 존슨앤드존슨의 베이비파우더를 오래 사용해왔고, 난소암에 걸렸다면 인과관계를 엄격히 따지는 한국 법원보다는 미국 법원에 소송을 제기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미국 재판을 통해 징벌적 손해배상을 받는 것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김태현 비즈한국 기자 toyo@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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