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X)맨’ 논란의 중심인 김평우 변호사가 대통령 대리인단에 합류한 것은 지난 2월 16일의 일이다. 헌재 분위기는 1월 말부터 급격히 무너지고 있었다. 증인을 대거 신청하는 등 ‘시간 끌기’를 시도했지만 나름의 선은 지키고 있던 대리인단이 그 선을 넘어선 것은 대략 1월 25일부터였다. 이날 9차 변론에서 박한철 전 헌재소장이 “3월 13일 이전에 결론을 내야 한다”고 밝히자 대통령 대리인단이 “(대리인단 전원 사퇴 등) 중대결심을 할 수 있다”며 강하게 반발한 것. 그리고 이날 정규재TV를 통해 박 전 대통령의 단독 인터뷰 영상이 공개됐다.
2월 14일 13차 변론에서 대통령 대리인단 서석구 변호사의 소위 ‘태극기 소동’이 벌어졌다. 서석구 변호사는 영화 〈변호인〉으로 유명한 ‘부림사건’ 담당 판사였다. 1981년 당시 대구지법 단독 판사이던 그는 22명 가운데 3명에 대한 재판을 맡아 두 명에게 선고유예와 집행유예를 선고하고 한 명에게만 징역 1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부림사건에서 비교적 가벼운 형량을 선고한 뒤 좌천된 서 변호사는 1983년부터 변호사 개업을 하고 시민단체 활동에도 참여했다.
대통령 탄핵심판 변론기일을 앞두고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 입장하고 있는 서석구 변호사. 사진공동취재단
다소 진보적인 성향으로 보이던 서 변호사는 1990년대 중반부터 보수단체에서 활동하기 시작했으며 현재 어버이연합 법률고문을 맡고 있다. 이후 ‘부림사건’ 판결을 후회한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지난 2014년 정미홍 전 아나운서의 법률대리인을 맡아 막말 수준의 답변서를 제출해 변협으로부터 300만 원 과태료 징계를 받은 바 있다. 당시 정 전 아나운서는 이재명 성남시장을 ‘종북성향’이라고 비난해 손해배상 소송을 당했었다. 한 종합편성채널에 출연해 “5·18 광주민주화 운동 때 북한군이 개입했다”고 주장했는데 이날 방송은 방송통신심의위원회로부터 ‘경고 및 관계자 징계’라는 중징계를 받았다.
헌재에서도 “소크라테스도 배심재판에서 사형선고를 받았고 예수도 십자가를 졌다”며 “박 대통령은 여론의 모함으로 사형장에 가는 소크라테스와 같다”는 궤변을 해 화제가 된 바 있다.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최종변론에 참석한 김평우 변호사. 사진공동취재단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 당시 미국에 거주 중이던 김 변호사는 1월 말 귀국해 <탄핵을 탄핵하다>라는 책을 낸 뒤 대통령 대리인단에 합류했다. 기본적으로 김 변호사는 국회의원을 야쿠자에 비유하고 국회의 탄핵소추 사유에 대해 ‘섞어찌개’라며 폄하했으며 탄핵소추는 ‘북한에서나 있을 수 있는 정치탄압’으로 규정했다.
대리인단이 된 뒤 막말 퍼레이드가 시작됐다. 주심 강일원 재판관을 향해 “청구인(국회)의 수석대리인이다. 법관이 아니다” “개인적 지식 말고 법에 근거해 재판해라” 등의 모욕성 발언을 했으며 이정미 헌재소장 권한대행에겐 “이정미라는 일개 재판관의 임기 때문에 재판이 졸속 진행됐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 권한대행이 뒷목을 잡는 장면이 카메라에 잡힌 것도 바로 이 즈음이다. 김 변호사의 변론에 이 권한대행이 “모욕적인 언사를 참고 진행 중”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하이라이트는 “밥 먹고 합시다” 논란이다. 2월 20일 15차 변론 기일 당시 이 권한대행이 정오 무렵 재판을 마치려 하자 김 변호사가 “당뇨가 있어서 음식을 먹어야 한다”며 점심 식사 이후 심리를 이어가자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이 권한대행이 발언권을 주지 않고 재판을 끝내자 “12시에 변론을 끝내야 하는 법칙이 있냐? 함부로 재판을 진행하는가?” “그럴 거면 왜 헌법재판관씩이나 하냐” 등의 막말을 퍼부었다. 재판부를 향해 삿대질과 고함도 불사했다.
헌재의 선고가 임박하자 협박성 경고의 메시지를 보내기 시작했다. “이런 식이면 헌재는 존재할 수 없게 된다” “헌재 자멸의 길” 등의 발언으로 시작해 “자칫 내란 상태로 들어간다” “탄핵 인용시 시가전이 벌어지고 아스팔트길이 피와 눈물로 덮일 것”이라는 발언까지 했다.
3·1절 탄핵기각 총궐기 국민대회에서 연설하는 김평우 변호사.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김 변호사는 법정뿐 아니라 탄기국 시위에도 직접 참석해 이런 발언을 쏟아내며 탄핵 무효를 주장하기 시작했다. 또한 탄핵 인용이 결정된 다음 날인 3월 11일에 열린 ‘제1차 탄핵무효 국민저항 총궐기 국민대회’에도 연사로 참석했다. 이 자리에는 서석구 변호사도 함께했다.
지난 10일 헌재가 탄핵심판을 선고할 당시 심판정에 나오지 않았던 김 변호사는 11일자 주요 일간지에 ‘오늘부터 우리는 제2건국의 행군을 시작합시다’라는 제목의 광고를 냈다. 여기서 “헌재가 8인으로 탄핵소추를 심판해 결정하는 것은 명백한 위헌이라 원천 무효”라며 ‘탄핵 무효론’을 펼친 그는 “다 같이 손잡고 일어나 애국집회에서 태극기를 힘차게 흔들자” “반 헌법적인 판결로서 원천 무효임을 선언하고 제2의 건국을 향한 행군을 시작하자”고 주장했다.
항간에선 서 변호사와 김 변호사 등 일부 대리인단이 막말 변론에 이어 탄핵 무효론을 주장하는 것이 최근 ‘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박사모)’가 주도하는 독자적인 정치세력화와 연관돼 있는 게 아니냐는 시선도 있다. 박사모는 최근 새누리 당명을 확보했으며 11일 ‘제1차 탄핵무효 국민저항 총궐기 국민대회’에선 참여 시민들에게 새누리당 입당원서까지 받았다.
제2의 친박연대를 시도하려 하려는 것으로 볼 수 있지만 아직까지는 국회의원이 단 한 명도 없는 상황이라 정치적 의미는 크지 않아 보인다. 다만 자유한국당이 박 전 대통령 징계 절차에 돌입해 ‘출당’시키고 이에 반발한 친박 의원들이 탈당해 박사모의 새누리당에 입당한다면 정치적 상황은 달라질 수도 있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