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박스권에 묶였다. 안 전 대표가 ‘문재인 대항마’로 급부상한 셈이다. 6년 전 한국 정치를 강타한 안풍에 비견될 정도다. 이 추세대로라면 9회 말 역전 투아웃 홈런을 치기 위한 ‘안철수의 쇼 타임’이 현실화될 수도 있다. ‘안철수 대망론’의 신호탄과 함께 대선 승리 전략은 가동됐다. 그러나 ‘안풍’이 풀어야 할 숙제도 적지 않다.
국민의당 대선후보로 선출된 안철수 전 대표가 5일 오전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 참석한 모습. 사진=박은숙 기자
“안철수의 시간이 오니 문재인의 시간이 가고 있다.” 안 전 대표 당 대선 후보 수락 연설이다. 거대한 산성으로 여겨졌던 ‘문재인 대세론’이 흔들렸다. 진원지는 ‘안철수 대망론’. 호남에서 64.60%로 압승한 안 전 대표는 거침없이 달렸다. 경선 직전 경쟁자였던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의 경선 룰 압박에 수세에 몰렸던 안 전 대표는 선거인단 없는 현장투표 80%(나머지는 여론조사 20%) 룰의 최대 수혜자가 됐다. 일각에선 손 전 대표 측 조직력에 당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됐다. 기우에 불과했다. 누적 선거인단 18만 4184명이 참여한 경선 흥행은 덤이었다.
안풍과 경선 흥행은 ‘컨벤션효과’(정치적 이벤트를 통해 정당이나 정치인의 지지율이 상승하는 현상)로 이어졌다. 문 전 대표 측이 “상상 속에서나 가능한 구도”라고 평가 절하했지만, 일부 여론조사 양자대결에서는 문 전 대표를 꺾었다. 여론조사기관 <조원씨앤아이>가 쿠키뉴스 의뢰로 4월 1일∼4월 3일 전국 성인 1031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4일 공표)에 따르면 양자 가상대결에서 안 전 대표는 48.1%, 문 전 대표는 43.7%를 기록했다. ‘지지후보 없음’은 6.7%였다. 하지만 다자구도에선 문 전 대표(35.3%)가 안 전 대표(21.6%)를 여전히 앞섰다. 이는 ARS 여론조사(유선전화 45%+휴대전화 55% RDD 방식) 방식으로 한 조사다.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 ±3.1%포인트, 응답률은 4.9%다.
<YTN>과 <서울신문>이 4월 5일 공개한 긴급 여론조사도 비슷했다. 안 전 대표는 문 전 대표(40.8%)와의 양자대결에서 47.0%로 6.2%포인트 앞섰다. 안 후보는 문 전 대표(39.0%)와 유승민 바른정당 의원(4.0%), 심상정 정의당 상임대표(3.1%)와의 4자 구도에서도 39.0%로 1위를 차지했다. 유 의원 대신 자유한국당 대선후보인 홍준표 경남지사(11.4%)를 포함한 조사에서는 문 전 대표 38.0%, 안 전 대표 36.2%, 심 대표 4.0%로 집계됐다.
이 조사는 두 언론사가 <엠브레인>에 의뢰해 공표 당일 전국 만 19세 이상 남녀 1042명(가중 후 1000명)을 대상으로 RDD에 따른 유·무선 전화면접(유선 39.2%, 무선 60.8%)을 통해 실시한 결과다.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 ±3.1%포인트, 응답률은 14.1%다. 두 여론조사의 그 밖의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여론조사의 결론은 ‘안풍’의 재점화다. 이로써 안 전 대표는 지난 2015년 말 새정치민주연합(현 민주당)을 탈당한 직후 ‘창당→4·13 총선→대선 후보’ 등의 정치적 변곡점마다 독자 세력화에 성공했다.
두 가지 주목할 대목이 있다. 아직 ‘상상 속 구도’에 불과하지만, 구도에 따라 ‘문재인 대세론’ 위력은 반감될 수도 있다. 특히 대세론 균열과 복원력은 ‘반비례’다. 균열이 크면 클수록 복원력은 떨어진다. 2002년 ‘이인제 대세론’도, 공고한 산성이었던 ‘이회창 대세론’도 노풍(노무현 바람)에 일격을 당한 뒤 회복력을 상실했다. 정치권 한 분석가는 “대세론은 한 번 무너지면 끝”이라고 잘라 말했다.
다른 하나는 지난 3개월의 탄핵 국면에서 안 전 대표가 일관성 있는 행보를 보였다는 점이다. “이번 대선은 안철수와 문재인의 대결이 될 것이다. 이 대결에서 승리할 자신이 있다.” 지난 1월부터 안 전 대표가 입에 달고 다닌 말이다. 일종의 ‘예언’이었다. 당시 민주당 친문(친문재인)계 관계자들은 “한마디로 꿈”이라며 안 전 대표의 전망을 폄훼했다.
그러나 꿈은 현실이 됐다. 5·9 장미 대선은 최대 6자(민주당-국민의당-자유한국당-바른정당-정의당-비패권지대) 구도지만, 사실상 ‘문재인 vs 안철수’의 양자구도다. 19대 대선에 출마하는 후보 중 재수생은 둘뿐이다. 국민의당 한 관계자는 “결국 우리의 예상대로 판이 만들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안 전 대표는 그간 당 내부 여론조사에 양자 대결 시 우위를 점한다는 결과를 보고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지난해 4·13 총선 당시 국민의당 의석수 최소 35석∼최대 40석을 맞힌 여론조사다. 이언주 의원이 4월 5일 민주당을 탈당에 안 전 대표 지지를 선언하면서 국민의당은 40석이 됐다.
이제는 본선이다. 문제는 구도다. 안 전 대표는 다자구도에서 열세다. 양자 대결에서는 앞서는 지표도 나오지만, 어디까지나 가상이다. 수직 상승 중인 지지도를 바탕으로 ‘반문(반문재인) 구심점’ 역할을 할 수 있지만, 다자구도가 현실화될 경우 안 전 대표도 박스권에 갇힐 수밖에 없다.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문 전 대표와의 차별화 이외에 범보수진영 후보인 홍준표 자유한국당·유승민 바른정당 후보의 지지율을 최소화하는 제약조건을 만드는 것이다. 인위적인 단일화 대신 ‘홍준표 15% 안팎-유승민 3% 안팎’으로 묶어 보수층에 전략적 선택을 강요하는 전략이다. 자강론의 안 전 대표가 역설한 ‘국민에 의한 단일화’다.
박지원 국민의당 대표는 “이제 지켜보시라. 안철수가 이긴다”라고 말했다. 양순필 부대변인도 “시간은 우리 편”이라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안 전 대표 뒤집기는 시간문제라는 얘기다. 실제 문 전 대표는 아들 문준용 씨 취업 특혜 의혹 등으로 지지도가 계속 하락하고 있다. 안 전 대표 지지도가 파죽지세를 이어간다면, 국민의당은 이 카드를 선택할 것으로 보인다.
문 전 대표와의 ‘선명한 대립각’을 통해 반문 정서에 불을 지피는 방안도 유력한 시나리오로 거론된다. 5·9 장미 대선이 ‘문재인 vs 반문재인’ 구도로 고착된다면, 보수층과 중도층에서 ‘안철수-유승민-홍준표’ 단일화를 수용할 공간이 생긴다. 여기에 ‘비토 문재인’ 특명을 안고 4월 5일 대선판에 출격한 김종인 전 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의 비패권지대까지 합세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실질적인 ‘문재인 vs 반문재인’ 구도다.
송영길 문재인 캠프 총괄본부장은 안 전 대표 양자 구도 지지도에 대해 “질소포장 과자”라고 말했지만, 상상이 현실이 될 가능성은 유효한 카드다. 자강론이 안 전 대표 지지도 상승 추세가 전제된 시나리오라면, 이는 안 전 대표가 박스권에 갇혔을 때 시도할 수 있는 돌파구다. 반문 진영의 총궐기를 촉구하는 연합작전군인 셈이다.
김 전 대표와 함께 비패권지대에 나선 정운찬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과 홍석현 전 중앙일보·JTBC 회장은 통합정부·공동정부를 명분으로 힘을 합쳤다. 이들은 통합정부준비위원장을 맡아 금명간 3인 중 단일 후보를 선출한 뒤 ‘유승민→안철수’ 등의 단계적 연대론에 시동을 걸 것으로 보인다. 비패권지대 관계자는 “이들이 원샷 경선을 하는 게 가장 좋은 시나리오”라면서도 “최소 단계적 연대론은 실현해낼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 중 정 이사장과 홍 전 회장의 경우 ‘안철수 옹립’에 문을 열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역할 분담도 이뤄졌다. 김 전 대표는 유 의원을 설득하고, 정 이사장은 안 전 대표와 내부 통신망을 가동키로 했다.
문제는 이 지점에서 발생하는 필연적인 안 전 대표의 딜레마다. 안 전 대표가 반문 연대 카드를 택하는 순간, 대망론은 즉각 ‘한계론’에 직면할 수도 있다. 호남 지지층과 보수적인 반문 지지층이 상충할 수밖에 없다. 반문 연대가 명분으로 내건 ‘영남(유승민)-호남(안철수)-충청(반기문·정운찬)’의 통합은 온데간데없이 시너지효과가 반감될 가능성이 크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안 전 대표가 영남 보수세력의 손을 잡는 것은 호남에 대한 배신”이라며 “호남이 문 전 대표로 전략적 선택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때 ‘청년 멘토’였던 안 전 대표가 박근혜 정권 부역자 논란에 시달리는 바른정당과 노회한 김 전 대표 등을 업고 나서는 것 자체가 자책골이라는 지적도 있다. 지지도가 정체되더라도 180도 턴하는 전략적 변화가 쉽지 않다는 의미다. 답은 하나다. ‘강철수’를 넘어 ‘루이 안스트롱’으로 변신한 안 전 대표가 1∼2주 안에 ‘문재인 산성’을 무너뜨리는 전략에 나서야 한다. 파죽지세 과정에서 멈칫할 경우 보수와 중도, 영남과 호남 지지층의 원심력이 언제 폭발할지 모른다. 그래서 ‘대망론’과 ‘한계론’은 한끗 차이다.
윤지상 언론인
안철수-김종인의 질긴 인연…갈라선 멘티·멘토 재회할까 한때 멘토 관계였다. 그러나 결별을 택했다. 다시 접점을 모색할 조짐이다. 광야에 선 이들이 전략적 동거 체제를 유지할지 정치권의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안철수 전 국민의당 상임 공동대표와 김종인 전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 얘기다. 현재 이들은 반문(반문재인) 빅텐트를 고리로 교집합을 형성한 상태다. 이들은 두 번의 선거를 거치면서 관계가 틀어졌다. ‘안풍(안철수 바람)’이 정치권을 집어삼킨 2011년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 당시 김 전 대표는 안 전 대표의 멘토로 알려졌었다. 하지만 2012년 대선을 앞두고 이들의 관계는 깨졌다. 당시 김 전 대표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누가 나더러 (안철수의) 멘토라고 하는데 생각해 본 적이 없다”고 일축했다. 김 전 대표는 대선 때 ‘박근혜 캠프’의 국민행복추진단장을 맡았다. 18대 대선에 출마한 안 전 대표가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대선 후보의 경제민주화 공약을 비판하자, 김 전 대표는 “경제민주화에 대한 이해가 완전히 부족한 사람”이라고 응수했다. 지난해 4·13 총선을 앞두고 또다시 각자의 길을 갔다. 안 전 대표는 당시 새정치민주연합(현 민주당)을 탈당해 국민의당을 창당했다. 반면, 김 전 대표는 민주당 구원투수로 영입됐다. 민주당은 제1당, 국민의당은 제3당이 됐다. 사실상 친문(친문재인)계에 ‘팽’당한 김 전 대표는 4월 5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위기돌파 통합정부’를 보여드리겠다”며 5·9 장미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그간 정치권 안팎에서 김 전 대표가 대권에 직접 도전장을 낸 뒤 반문 연대의 ‘막후 조정자’를 맡을 것이란 전망이 끊이지 않았다. 이른바 ‘안철수 페이스메이커’ 역할론이다. 이에 대해 김 전 대표는 “킹메이커 노릇은 안 하겠다고 했는데, 페이스메이커를 왜 하나”라고 일축했다. 정치권 복수의 관계자에 따르면 현재 이들은 소원한 관계다. 안 전 대표가 김 전 대표의 만남이나 전화통화 등을 거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관계 복원의 변수는 있다. 김 전 대표 대선 출마 날 민주당을 탈당 의사를 밝힌 이언주 의원이다. 이 의원은 대표적인 ‘김종인계’다. 이 의원은 탈당 이유에 대해 “한국 정치의 새 페이지를 여는 데 함께해야 하지 않느냐는 생각”이라고 말했지만, 정치권 안팎에선 ‘안철수-김종인’의 관계 복원을 위한 메신저 역할을 자임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본다. ‘김종인계’ 중 탈당한 최명길 의원은 김 전 대표, 이 의원은 안 전 대표 지원에 나섰다. 비례대표인 최운열 민주당 의원도 ‘김종인 대통령’ 만들기에 나섰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문재인 vs 반문재인 구도를 만들기 위한 역할 분담 같다”고 말했다. [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