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소장파들의 ‘권력 사유화’ 논란으로 촉발된 파워게임은 이명박 대통령의 경고 메시지로 일단락되는 분위기다. 사진은 이명박 대통령과 친형인 이상득 의원. | ||
벼랑 끝 싸움으로 치닫던 여권의 권력 갈등이 이상득 의원의 ‘판정승’으로 막을 내리는 분위기다. 정두언 의원의 ‘권력 사유화’ 주장으로 촉발된 여권의 권력투쟁은 박영준 전 청와대 기획조정비서관의 사퇴로 잠시 주춤하는 듯했다. 하지만 정 의원을 위시한 소장파가 “이번에는 (인적 쇄신 문제에 대해) 끝장을 볼 것이다”라며 이명박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의원의 ‘2선 퇴진’까지 요구하며 거세게 몰아붙인 바 있다. 그런데 이상득 의원이 일본방문을 하며 확전을 피하고, 이명박 대통령도 정두언 의원을 겨냥한 듯 “일부 의원의 ‘묻지마’식 인신공격 행위와 발언이 걱정스럽다”라는 반응을 보이자 정 의원 측도 일보 후퇴의 뜻을 보이며 꼬리를 내려버리는 모습이다.
결국 며칠간 끝을 모르고 이어지던 여권의 권력 투쟁은 조기 수습에 성공한 이명박 대통령과 자신의 지위를 지킨 이상득 의원 등 ‘형제간의 승리’로 막을 내릴 조짐을 보이고 있다. 박영준 전 비서관 사퇴로 끝난 1차 전투에 이어 벌어지고 있는 여권 내부의 당쟁 2라운드를 정밀 조명해봤다.
지난 6월 7일 오전. 정두언 의원의 <조선일보> 인터뷰가 보도되자 정치권은 발칵 뒤집혔다. 특히 정 의원은 자신의 발언이 여권의 권력투쟁으로 비쳐 인사 문제를 지적하는 본래 의도가 왜곡될 것을 우려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그래서 보도 전날까지만 해도 자신의 인터뷰가 기사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녔던 것으로 알려진다. 하지만 그 노력은 수포로 돌아갔고 인터뷰가 보도된 지난 6월 7일 오전 정 의원의 측근들은 시내 모 호텔에 모여 향후 대책을 숙의했다는 후문이다.
이때 측근들 대부분의 의견은 “이왕 일이 이렇게 된 이상 그동안 묻어두었던 문제들을 적극적으로 제기하며 공격적으로 맞서자”라는 강경론이 대세였던 것으로 알려진다. “정 의원이 갑작스런 인터뷰로 ‘사고를 쳤지만’(정 의원 측근의 표현) 어차피 한 번은 넘어야 할 ‘전쟁’으로 받아들이자”라는 생각이었다는 것이다. 당시 정 의원은 인터뷰 기사 때문에 친이(친 이명박 대통령)그룹 일각으로부터 “권력에서 멀어진 사람의 금단 현상”이라는 맹비난을 받는 등 고전했지만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측근들과 함께 “우리는 끝까지 간다. 세게 붙을 것이다”라며 결의를 다졌다는 후문이다.
그 결과 정 의원 측은 ‘대통령 주변 사람을 이간질시키고 음해하고 모략하는 명수’(정 의원 인터뷰 표현)로 지목했던 박영준 전 기획조정비서관을 물러나게 하는 1차 성과를 거두었다. 하지만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정 의원은 발언 파문이 있은 뒤 잠시 잠적했지만 김용태 의원을 통해 “(인적쇄신 문제는) 끝을 볼 것”이라며 ‘끝장 전투’를 선언했다. 이상득 의원이 인사 파동의 핵심적인 배후이기 때문에 2선 퇴진을 하든지, 잠시 해외에 체류하는 등의 방법으로 뒤로 물러날 것을 강력하게 요구했던 것이다.
일각에선 “박영준 전 비서관의 퇴진으로 1차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정 의원이 너무 앞서 나가는 게 아니냐”라며 그의 투쟁지향적인 행보를 비판하기도 했다. 하지만 정 의원 측도 생존을 위해 그만큼 절박했다. 그동안 정 의원을 위시한 소장파는 조각-총선 공천파동-55인 회동-안상수 대표 옹립 등의 수차례 전투에서 이상득 의원에게 패퇴했다. 소장파의 한 의원은 이와 관련해 “최근의 촛불 정국을 보면서 내부적으로 ‘한나라당 주류의 아날로그적 문제의식이 디지털 여론을 절대 따라갈 수 없다. 따라서 주류에 비해 상대적으로 유연하고 진보·개혁 성향이 강한 소장파의 입지가 넓어져야 한다’라는 생각이 더욱 강해졌다. 현재의 싸움은 ‘소 분파주의’에 매몰된 권력투쟁이 아니다. 소장파의 존재는 한나라당과 보수세력의 미래를 위해서도 꼭 필요하다는 나름대로의 명분이 있기 때문에 이번 전쟁에서 꼭 이길 것”이라며 강한 자신감을 보인 바 있다.
그래서 정 의원 측은 ‘공격만이 최선의 방어’라는 적극적인 전략으로 이상득 의원과의 전쟁을 준비하고 있었다. 특히 지난 6월 11일 밤 이상득 의원이 안경률 의원을 비롯해 공성진 진수희 차명진 의원 등 ‘친 이명박계’ 의원 10여 명과 저녁을 함께한 자리에서 소장파들의 퇴진 압박에 대해 매우 강한 어조로 우려와 불만을 표출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정 의원 측도 전의를 다졌다고 한다.
정두언 의원 측 사정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당시 이상득 의원이 ‘이제부터 나도 본격적으로 움직이겠다’라고 선언한 것으로 안다. 소장파 공격에 더 이상 당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맞서겠다는 뜻 아니겠느냐”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한 “우리 싸움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일각에서 정면으로 싸우지 말고 물밑 교섭을 통해 타협을 해보라는 조언을 한다. 하지만 그것은 나이브(naive·순진하고 어리석은)한 생각이다. 우리도 그렇게 하려고 했지만 잘 안 됐다. 오히려 이상득 의원은 주변 사람들에게 ‘정두언 만나지 마라’고 말하며 다닌다고 한다. 이렇게 뒤에서 공격하는데 우리도 최선의 방어는 공격이라는 생각에서 앞으로 계속 싸울 것이다”라고 말했다.
▲ (왼쪽부터) 남경필, 정두언, 원희룡 의원 | ||
그렇다면 소장파의 공격을 받고 있었던 이상득 의원은 과연 어떤 ‘방패’를 준비하고 있었을까. 일단 그의 최근 심경부터 알아보자. 지난 6월 11일 모임에 참석했던 A 의원은 이에 대해 “이상득 의원은 인사 문제에 관한 한 일관되게 자신은 한 번도 관여한 적이 없다고 하더라. 일부 의원이 ‘정권을 만든 사람이 누군데 엄한 놈들을 (청와대 등의 핵심 요직에) 데려다 놓고 그러시느냐’라고 지적했다. 이에 이 의원이 ‘아, 그러면 좀 챙기겠다’라며 한 발 물러섰다”라고 말했다. A 의원은 또한 “이상득 의원이 최근 소장파와의 전투에서 굉장히 힘들어하고 있는 것 같았다”라고 전하면서 “이 의원이 최근 갈등에 대해 갈팡질팡하면서 얼이 빠져 있는 듯했다. 기자들 때문에 며칠 동안 집에도 못 들어가고 하니까 스트레스가 이만 저만이 아닌 것 같더라”고 말했다.
올해 73세의 노령인 이상득 의원이 최근의 권력투쟁 파동을 견뎌내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6월 17일쯤 일본으로 잠시 몸을 ‘숨기며’ 사태가 수그러들기를 기다릴 계획이다. 당내 분란을 의식해 낮은 포복으로 일관하고 있는 이상득 의원이지만 그렇다고 그의 영향력이 줄어든 것은 아니다. 오히려 앞으로 정두언 의원 측이 제2의 도발을 한다고 해도 그를 든든하게 지켜줄 방패막을 이번 전투에서 다수 확보했다고 보는 게 맞다. 이 의원은 먼저 ‘고공전’에서 우위를 확보했다. ‘원로그룹’ 멤버로서 차기 당 대표가 유력시되는 박희태 전 의원에 홍준표-임태희 의원 라인으로 형성된 여권 ‘신 주류’가 그를 지켜줄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홍준표 의원은 원내대표 경선 당시 이상득 의원의 지원을 받았고, 앞으로 정치적인 위상을 높이기 위해 주류와 손발을 맞추어야 한다는 점에서 ‘정두언 쿠데타’를 막는 수비대장으로서 적임자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일각에서는 홍 대표가 사석에서 정 의원과 관련된 구설수를 거론하며 “가만있지 않겠다”는 등의 격한 반응을 보이며 그를 압박했다는 얘기도 흘러나오고 있다. 이상득 의원이 가장 아끼는 것으로 알려진 임태희 의원도 집권 여당의 정책위 의장으로서 그 영향력이 적지 않기 때문에 향후 다시 있을지도 모르는 ‘정두언 거사’를 ‘합리적으로’ 막을 방패로 꼽히고 있다.
이상득 의원은 현 여권 지도부를 자신의 테두리 아래로 묶은 데 이어 이번 전투에서 자신의 입지를 유지시켜 주는 데 일정한 역할을 했던 친 이상득 계열 초선 의원들도 다수 확보하는 수확을 거두었다. 이 의원은 이번 싸움으로 지도부-영남권-초선 등으로 이어지는 ‘방패’의 수직계열화를 이뤄내 여권의 확실한 2인자로 자리매김하는 성과도 얻었다는 게 정치권의 대체적 분석이다.
그런데 이상득 의원의 마지막 ‘방패’는 역시 동생인 이명박 대통령이다. 이 대통령은 정두언 의원 측이 이상득 의원의 2선 퇴진 공론화를 위한 의총 개최를 요구하는 등 압박 수위를 높인 시점에서 친이 성향 안경률 의원을 청와대로 불러 정두언 의원 측에 강력한 경고 메시지를 보냈다. 이 대통령은 그 자리에서 “시국이 어렵고 엄중해 우리가 힘을 합쳐 난국을 헤쳐가야 할 텐데, 일부 의원의 묻지마식 인신공격 행위와 발언들이 걱정스럽다”며 정 의원 측의 권력투쟁 지향 행보에 제동을 걸었다. 이를 두고 정치권에선 “역시 피는 물보다 진하고 형제는 용감했다”라는 말들이 회자되고 있다.
또한 정치권에선 그동안 이상득 의원에게 대립각을 세워온 ‘친 이재오’ 그룹이 이 대통령에게 대부분 무릎을 꿇고 ‘친 이상득’ 계보로 편입된 것으로 보고 있다. 이재오 전 의원은 미국행 비행기를 타기 전 이 대통령과의 독대에서 ‘더 이상 권력에 저항하기는 힘들다’는 분위기를 직감했고 그것을 자신의 영향력 아래 있던 의원들에게 그대로 전달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그래서 최근 친 이재오 그룹이 정두언 의원 측 주장에 더 이상 동조하지 않는 등 권력 향배를 주시하다가 대거 친 이상득 계보로 흡수되었다는 것이다. 이를 토대로 보면 한나라당의 1차 권력 투쟁이 이명박-이상득 형제의 승리로 서서히 막을 내릴 조짐을 보인다. 그러나 정두언 의원을 비롯한 당내 소장파는 이 대통령의 엄명에 잠시 칼집에 칼을 넣어둔 상태지만 언제라도 그 칼끝이 이상득 의원을 다시 겨눌 수도 있을 것이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