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학규 | ||
민주당 당권 및 향후 주도권 향배를 가늠할 수 있는 또 다른 핵뇌관으로 부상하고 있는 ‘손학규-정세균 밀약설’의 실체를 들여다봤다.
손 대표와 정 후보 간의 밀약설은 두 사람이 처한 정치적 상황과 깊은 관계가 있다. 7월 6일 한시적 당 대표 임기를 마치면 정치 2선 후퇴가 불가피한 손 대표는 차기 대권을 겨냥한 중장기 전략을 구상하고 있다. 자신이 다시 정치 일선으로 복귀할 때까지 대권에 욕심이 없는 관리형 당 대표가 필요하고 정동영 전 장관 등 차기 경쟁자 계파에 밀리지 않는 탄탄한 자파 세력을 당내에 구축해야 하는 당면 과제를 안고 있다.
실제로 손 대표는 4·9 총선에 출마했던 서울 종로 지역위원장직을 수락한 상태다. 정치 2선으로 물러나더라도 지역위원장을 매개로 현실 정치권과 소통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셈이다. 손 대표는 또 자신의 싱크탱크 역할을 맡고 있는 ‘동아시아 미래재단’ 사무실을 서대문구에서 종로구 견지동으로 옮긴 상태다. 정치 1번지인 종로를 기반으로 언제든 기회가 되면 정치 일선에 뛰어들겠다는 중장기 플랜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정세균 후보 입장에서는 당장 발등에 떨어진 당 대표 경선에서 승리하기 위해서 당내 최대 계파로 자리매김한 손 대표 중심의 신주류의 지원이 절실한 상태다. 가뜩이나 경쟁자인 추미애·정대철 후보가 단일화 가능성을 열어 놓고 자신을 ‘공공의 적’으로 몰아붙이고 있는 상황을 감안하면 ‘대세론’이 경선 당일까지 이어질지 또한 불투명한 게 현실이다.
당 주변에서 ‘손학규-정세균 밀월설’이 나돌고 있는 것도 두 사람이 처한 정치 현실 및 중장기 정치구상과 무관치 않은 것으로 풀이된다. 2선 후퇴 후 절치부심 차기 대권을 기약할 수밖에 없는 손 대표는 믿을 수 있는 정 후보를 당 대표로 적극 지원하고 정 후보는 당권을 담보로 손 대표의 대망론에 힘을 실어준다는 게 밀월설의 골자다.
▲ 정세균 | ||
이와 관련, 손 대표 계보인 수도권의 한 재선 의원은 “차기 대권을 겨냥하고 있는 손 대표가 후일을 기약하는 차원에서 정세균 후보를 적극 지원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대권에 욕심이 없는 정 후보 역시 신주류와 소장파의 지원에 힘입어 당권을 장악할 경우 향후 ‘손학규 대망론’에 힘을 실어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해 두 사람이 ‘밀월 관계’까지는 아니어도 상호 정치적 교감은 나누고 있음을 시사했다.
손 대표와 정 후보 간의 밀월설이 나돌자 또 다른 당권주자인 추·정 후보와 각 계파 대표주자로 출전한 최고위원 후보자들은 자파의 이해득실을 따지면서 본격적인 합종연횡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특히 추·정 후보는 ‘손-정 연합’ 세력에 맞서기 위해서는 힘을 모아야 한다는 위기감에 공감하고 막판 후보단일화와 대의원 30%를 확보한 구 민주계와의 합종연횡을 통해 대역전극을 연출하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다. 추·정 후보 간 단일화가 성사되고 당권주자를 배출하지 못한 구 민주계의 전폭적인 지지를 이끌어낼 수 있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19일 기자와 만난 추 후보 측의 한 관계자는 “동교동계와 영남권에서 지지를 받고 있는 추 후보와 열린우리당과 구 민주당 중진그룹의 지원을 받고 있는 정 후보의 세력이 힘을 합치고 구 민주계가 동참하면 ‘정세균 대세론’을 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전제한 뒤 “차기 대권을 놓고 또다시 손 대표와 진검승부를 펼쳐야 하는 정동영 전 장관과 천정배 의원, 김근태 전 의원 등도 손 대표의 지원을 받고 있는 정세균 후보보다 추·정 단일후보를 지원할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지난 6월 12일 ‘전대 연기론’과 ‘비대위 전환’을 주장한 개혁성향 전·현직 의원 명단에 천정배 의원을 비롯한 정동영·김근태계 인사들이 다수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손-정 밀월설’을 감지한 상대 계파들의 위기감과 함께 당내 반감 분위기가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따라서 민주당 당권 경쟁은 대세론을 구축하고 있는 ‘손학규-정세균 연합 세력’ 대 ‘추미애-정대철 단일후보’ 간의 진검승부로 결정 날 가능성이 높아졌고 구 민주계를 비롯한 계파들의 합종연횡 여부가 핵심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또 민주당 주변에서 나돌고 있는 ‘손학규-정세균 밀월설’도 경선전이 종반으로 치닫는 과정에서 어느 정도 그 실체가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사실 유무를 떠나 두 사람의 밀월설이 과연 ‘정세균 대세론’을 굳히는 ‘약’이 될지 아니면 상대 계파들에게 위기감을 부추기는 ‘독’으로 작용할지가 계파 간 생존게임 양상으로 치닫고 있는 민주당 전대를 지켜보는 또 다른 관전포인트로 부상하고 있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