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몽준 의원(왼쪽)이 지난 7월 3일 한나라당 전당대회에서 2위로 최고위원에 선출된 뒤 박희태 대표최고위원과 함께 감사 연설을 하고 있다. 우태윤 기자 wdosa@ilyo.co.kr | ||
지난 3일 정 의원은 서울 송파구 방이동 올림픽공원체조경기장에서 열린 10차 전당대회에서 박희태 후보에 이어 2위로 최고위원에 선출됐다. 정 후보가 2위로 떠오른 것은 선거에 30%를 반영하는 여론조사 덕분이었다. 여론조사 결과 정 후보는 절반가량인 46.7%의 득표율을 기록해 2895표를 거머쥐었다. 박 후보가 얻은 30.1%의 지지도보다 17%포인트가량 높았다. 차기 대권주자로 거론되는 인물답게 한나라당 대의원보다 일반 국민들에게 높은 지지도를 보였던 것으로 풀이된다.
정 의원 측은 대체로 이 같은 성적에 만족하고 있는 모습이다. 내심 1위를 노렸지만 친이(친 이명박 대통령)계가 총동원된 상황에서 당 계보가 전혀 없는 정 의원으로선 800여 표차 2위는 만족할 만한 성적표라는 것이다. 특히 정 의원이 지난해 12월 초 입당한 후 7개월 만에 자력으로 2위의 득표로 최고위원에 선출돼 차기 대권주자로서의 행보에 힘이 실릴 전망이다.
그러나 정 의원은 대권주자로 부각되는 것에 부담감을 나타냈다. 당장 쇠고기 파동 및 고유가 등으로 당 지지도가 곤두박질하고 있는 상황에서 대권주자로 부각되는 것은 별 실익이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정 의원은 최고위원 당선 후 곧바로 한나라당 당사 맞은편인 대하빌딩 4층에 마련한 선거캠프 해단식에 착수했다. 당초 정 의원의 대선 행보를 위해 최소한의 인원을 남겨둘 것이라는 추측과는 상반된 행보였다.
정 의원이 이처럼 대권주자로서 부각되는 것을 꺼리는 것은 당내 그의 우군이 사실상 거의 전무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번 선거에서 정 의원을 도운 당내 인사는 그의 지역구였던 울산 동구 지역사무국장을 지내다 18대 의원이 된 안효대 의원을 비롯해 전여옥, 홍정욱 의원 등 채 10여 명이 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대권주자로 부각될 경우 당내 최대 계보인 친이 측이나 친박(친 박근혜) 측의 집중 견제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정 의원 측은 “이번 승리로 한나라당 뿌리내리기에는 성공했다”고 평가하면서 “이제는 잔뿌리 내리기에 집중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 의원은 이번 경선에서 ‘조직’의 쓴맛을 보기도 했다. 정 의원은 6월 20일까지 경선 여론조사에서 1위를 달리고 있었다. 그러나 친박계인 허태열 의원의 출마로 경선이 친이 대 친박 대결구도로 바뀌면서 표가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게다가 친이계인 공성진 의원이 1인2표제에서 두 번째 표를 공략하기 위해 정 의원에게 공격적으로 나서면서 정 의원을 곤란케 했다. 구설에 올랐던 ‘버스요금 70원’이라는 발언도 공 의원의 공격을 방어하다 나온 것이다.
친이 측의 이 같은 공세에 정 의원도 적극 대응했다는 후문이다. 특히 6월 30일 이재오 전 의원 계로 분류되는 안경률 의원이 서울 마포구 신수동 한 음식점에서 친이계 의원 및 당협위원장 150명이 모이는 대규모 행사를 마련한다고 하자 당 지도부에 가장 적극적으로 항의했었다. 결국 강재섭 당시 대표 등 지도부는 권영세 사무총장을 시켜서 모임 자제를 당부했다.
하지만 이들은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한 중식당에서 소규모 모임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친이 측의 표 결집으로 인해 정 의원은 대의원 투표에서 친박계인 허태열 후보에도 밀려 3위를 기록했다. 정 의원이 당내 ‘자기 사람들’의 필요성을 절감했던 순간이기도 했다.
그래서일까. 최근 정 의원은 주말이면 의원들과 골프를 치면서 ‘교류’를 확대하고 있다. 당내 인사들이 주최하는 행사에 얼굴을 비치는 일도 잦아졌다. 이밖에 당의 정책 기능강화를 위해 여의도연구소 등 정책기관에 대한 각종 지원도 계획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래를 염두에 두고 본격적인 외연 넓히기에 나선 모습이다.
향후 정 의원은 우선 최고위원으로서 당내 위상 강화에 전념할 것으로 보인다. 친박 측이 당외 의원들의 복당으로 정치적 힘을 키우고 있는 반면 친이 측에 마땅한 대표주자가 없다는 점도 정 의원에게는 유리한 국면이다.
정 의원도 이런 점을 의식해서인지 당내 ‘영향력 넓히기’에 전념하고 있다. 정 의원은 월·수·목요일 등 일주일에 세 번 열리는 최고위원회의에서 박희태 대표는 물론 당 지도부에게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고 있다.
정 의원은 4일 경선 후 처음 열린 최고위에서 박 대표의 ‘정치인 입각론’에 반론을 편 데 이어 7일에는 “최고위는 환담하는 곳이 아니라 의결하는 곳으로 권위를 가져야 한다”며 최고위 위상 재정립을 촉구하기도 했다. 또 9일에는 임태희 정책위의장에게 당이 쇠고기 관련 정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고 질책하기도 했다는 후문이다.
하지만 정 의원의 이 같은 행보에 대해 친이 및 친박 그룹 측은 곱지 않은 시선을 보이고 있다. 친이 측의 한 당 지도부 관계자는 “(정 최고위원이) 최고위 회의에서 왜 자꾸 앞뒤가 안 맞는 발언을 하는지 모르겠다”며 “의욕과잉인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당내에선 정 의원의 잦은 말실수와 ‘지도부 들이받기’는 차기 대권주자로서 마이너스라는 지적이 적지 않다. 한 중진 의원은 “정 의원이 대권주자가 되기 위해서는 친이계에 올라타야 한다”며 “최고위에서 쓴소리를 하기보다 선이 굵은 정치가라는 점을 당 안팎에 분명히 부각시켜야 한다”고 충고했다. 정 의원도 주변에서 이와 비슷한 얘기를 자주 듣는 것으로 전해졌다.
정 의원은 자신의 미니홈피 첫머리에 이런 글을 올려놓고 있다. ‘변화(를) 놓치는 게 가장 위험한 일이다.’ 그 의미 그대로 ‘대권주자 정몽준’에겐 지금이야말로 변화가 가장 필요한 시기인지도 모르겠다.
이정기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