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총리 후보자의 별명 ‘李주사’…“장관들 호되게 시달릴 것”
-‘호남 홀대론’ 불식 위한 다목적 카드
-‘근청원견(近聽遠見)’ 주사 리더십에 볼멘소리도
[일요신문] 정성환 기자 = 문재인 정부의 초대 국무총리로 내정된 이낙연 전 전남도지사가 내정됐다. 문재인 대통령이 10일 국무총리 후보자로 이낙연 전남지사를 지명한 것은 다목적 인선이다. 문 대통령이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 과정부터 ‘호남 총리’를 강조했던 만큼 이 후보자 내정은 ‘호남 홀대론’ 불식을 위한 카드다. 이번 대선에서 과반 이상의 전폭적 지지를 보내준 호남에 대한 문 대통령의 화답이기도 하다. 최근에는 ‘손학규계’로 분류돼 왔다. 동교동계와 손학규계 등 이른바 비문(비문재인) 진영 간 가교 역할도 이 후보자에게 기대하는 역할이다. 새정부 첫 총리에 오른 이 전 지사의 이력과 리더십이 새삼 재조명되고 있다.
이 후보자는 전남 영광 출신의 대표적인 ‘호남인사’로 중견 언론인에서 정치인으로 변신한 대표적인 성공 모델이다. 국무총리는 그의 네 번째 직업이다. 그는 광주 북중과 광주일고를 거쳐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뒤 동아일보에 입사했다. 이 후보자는 동아일보 기자 시절 옛 민주당을 출입하면서 김대중 전 대통령과 인연을 맺었다. 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천년민주당 후보로 전남 함평-영광 선거구에 출마해 당선된 뒤 19대 선거까지 내리 4선을 기록했다.
당 대변인을 다섯 차례나 맡으면서 ‘직업이 대변인’이라는 평도 얻었다. 대변인 시절 간결하고 절제된 논평으로 ‘대변인 문화’를 새로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 시절 논평을 모은 책 ‘이낙연의 낮은 목소리’는 훗날에도 여야 대변인실에서, 농식품위원장 시절의 축사 등을 모은 책 ‘농업은 죽지 않는다’는 지방의원 등에게 참고자료로 활용될 정도다.
2003년 2월 노무현 대통령 취임사 작성 때 일이다. 노대통령이 두세 차례 초안에 대해 마음에 들어 하지 않자 당시 대변인이었던 이 지사가 취임사를 썼는데 단 한 자도 수정하지 않고 극찬했다고 한다. 그의 예리한 통찰력과 뛰어난 감각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이 지사는 정치권 안팎에서 자신과 주변의 관리에 철저하다는 평을 듣고 있다. 특히 15년을 함께 한 보좌관이 있을 정도로 한번 믿는 사람은 끝까지 믿는 ‘의리파’로 통하고 보이지 않는 ‘잔정’도 있는 정치인으로 꼽힌다.
전남 도백에 오른 이 지사는 국회의원 시절부터 전남을 속속 누빈 경험을 바탕으로 준비된 도지사의 면모를 과시했다. 브랜드 시책으로 제시한 ‘가고 싶은 섬’과 ‘숲속의 전남’은 전남의 자산을 최대한 활용해 관광자원화 하면서 실제 거주하는 주민들의 삶의 질을 높인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100원 농어촌택시’도 전국적인 히트 시책이다.
인사도 비교적 무난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물의를 일으킬만한 측근을 위한 낙하산 인사도 거의 없고, 공무원들의 승진인사에서도 별다른 잡음이 들리지 않았다. 일부 공무원들이 ‘안방마님’에게 줄을 대려고 공관장을 찾는 모습이 눈에 띄지만 씨알도 먹히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후보자는 꼼꼼한 업무 스타일 때문에 ‘이 주사’로 불린다. ‘6급 공무원 같다’는 의미다. 본인도 ‘이 주사’라는 별명을 싫어하지 않는다고 한다. 여권 관계자는 “이 후보자는 평소 ‘주사처럼 꼼꼼하게 챙기지 않으면 일이 되지 않는다’고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다”고 전했다. 이 후보자의 꼼꼼한 일처리 스타일상 국무위원인 장관들이 호되게 시달릴 것이라는 전망이 벌써부터 나온다.
도백시절 그는 기자 출신답게 보도자료 문구 하나하나에도 신경을 썼다. 그의 적확한 단어 사용은 흡사 ‘한 사물을 표현하는 데는 한 단어밖에 없다’는 플로베르의 ‘일물일어설’(一物一語說)을 연상시킬 정도다. F1대회의 지속 여부와 관련한 전남도의 원칙에 대한 일부 언론 보도에 자신의 코멘트가 ‘재정 최소화’로 나가자 ‘재정부담 최소화’라고 바로잡아 달라고 한 것은 그 대표적인 사례다.
요즘도 경축사 등을 연설문 담당 비서관을 거치지 않고 이 지사 본인이 직접 써 화제가 되기도 했다. 더욱이 이 지사의 경축사가 회자되고 있는 것은 광역단체장의 의례적인 수준을 넘어 사안에 대한 총체적인 평가와 미래 한국이 나아가야할 방향까지 제시한다는 점이다. 사실 광역단체장의 경축사 메시지로 과하다고 할 수도 있지만 이 후보자의 시대를 통찰하는 폭넓은 식견과 비전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실국장 토론회 주재 보도자료를 한데 모으면 한 권의 훌륭한 평론집이 될 것이라는 도청 출입 기자들의 호평도 이어졌다. 한 전남도의원은 이 지사의 경축사가 너무나 가슴을 울려 원문을 직접 타이핑해 블로그에 올리기까지 했다는 소리도 들린다.
하지만 빛이 강하면 어둠이 짙은 법. 이 전 지사의 경직성 리더십을 둘러싸고 도청 내부의 곱지 않은 시선도 나온다. 결재를 위해 지사 집무실에 들어가는 것을 꺼리는 간부들이 많다는 소리가 들렸다. 들어가 봐야 칭찬보다는 질책이 많다 보니 자연스럽게 피한다는 것이다. 나서봐야 득 될 것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적극적으로 나섰다가 실수를 드러내 꾸중을 들을 바에야 몸을 사리는 게 낫다는 공무원들의 복지부동 탓이다.
이에 따라 도청 안팎에선 도지사는 디테일보다 큰 틀을 제시하고 조직원들을 한 방향으로 이끄는 리더십이 중요하다는 불만이 터져 나왔다. 기자와 국회의원이란 직업은 단독 플레이로도 능력 발휘가 가능하지만 도지사는 다르다는 것이다. 전남도의회 한 도의원은 “총리에 오른 만큼 새새한 홍보에 신경 쓰기 전에 민생 현안을 해결하는 콘텐츠가 먼저일 것이다”며 “아울러 조직원들을 다독여 성과를 내는 행정가의 모습을 보여줄 때다”고 지적했다.
이 후보자의 좌우명은 ‘근청원견(近聽遠見)’이다. ‘가까이 듣고 멀리 본다’는 뜻으로 도민의 말씀은 가까이 듣고 그 말을 정책에 반영할 때는 멀리 보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전남도청 안팎에서는 그의 좌우명과는 달리 ‘지나치게 가까이 듣고 가깝게 본다’는 볼멘소리가 터져 나왔었다. 그의 ‘깐깐한’ 리더십에 대한 불만이 고개를 들었던 것이다.
도백에서 국무총리 직에 오른 이낙연 후보자의 깐깐한 리더십이 시험대에 올랐다. 그가 재상으로서는 어떤 리더십을 보여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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