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화갑 민주당 대표 | ||
실제 대표직 사퇴를 위한 결심은 오래 전에 굳힌 상태였다. 그런 한 대표가 사퇴를 미루고 있는 이유는 대체 무엇 때문일까.
“(대표직 사퇴를) 안하는 것이 아니라, 못하는 것이다.” 한 대표의 한 핵심측근은 최근 한 대표의 거취와 관련, 이같이 말했다. 한 대표 자신은 이미 마음을 비운 지 오래됐지만, 최근 돌아가는 모양새가 자꾸만 ‘대표직 사퇴’를 할 수 없는 상황으로 몰아가고 있다는 항변이었다.
그는 “한 대표가 대표직을 사퇴하기 위해서는 먼저 선행조건이 충족돼야 한다”며 “특대위에서 마련한 당 개혁 방안이 확정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그런데 특대위안을 둘러싸고 당내에서 이견이 있고, 신주류 내부에서도 진통이 계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지도부 공백상태를 가져올 ‘대표직 사퇴’를 결행하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고 한 대표의 난처한 처지를 대변했다.
민주당 일각에선 한 대표 거취와 관련, 외부적인 요인도 거론된다. 대북송금 의혹 등으로 김대중 대통령이 어려움에 처해 있는 상황에서 ‘나 몰라라’하고 대표직을 버리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란 얘기다. 특히 한나라당의 특검제 강행 움직임과 관련, ‘한 대표가 당의 구심점으로 남아 야당의 공세를 막아야 되지 않겠느냐’는 청와대측의 주문이 있었을 것이란 관측도 나오고 있다.
여기에 최근 민주당 부위원장단들이 결의문을 채택하고, 전통적 민주당원들이 ‘(대표라는) 짐을 벗어던지고, 혼자 도망치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라고 비난하고 나선 것도 한 대표의 거취 결정에 적잖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 대표의 다른 한 측근은 “대의원들로부터 선출된 대표가 당내 요구에 떠밀려 사퇴하는 것이 바람직한지 모르겠다”며 “조기 전당대회 일정이 확정되면, 전당대회를 통해 자연스럽게 지도부가 교체되는 게 순리가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그는 “전당대회를 통해 지도부를 교체해야만 정통성과 적법성을 인정받을 수 있다”며 “한 대표 사퇴 시한을 앞당겨, 노 당선자 취임에 맞춰 새 지도부를 구성하겠다는 것은 작위적이고 비민주적인 발상”이라고 말했다.
어차피 한 대표가 ‘차기 전당대회 불출마’를 선언한 만큼 끝까지 당 대표로 역할을 수행하고, 명예롭게 퇴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특대위 당 개혁안이 조기에 확정되지 못하고, 차기 전대 개최시기가 불투명한 현 상태가 지속될 경우 한 대표는 ‘쌍십자가’를 한동안 짊어지고 가야 할 형편이다.
한 대표는 대북송금 문제가 걸려 있는 김 대통령의 처지를 고려해 보면 ‘자신에 쏠린 비난을 감수하고서라도 당분간 당을 지켜야 하는 입장’인 반면, 노 당선자 취임에 맞춰 당의 면모를 일신하고자 하는 당선자 진영으로부터 ‘조기에 대표를 사퇴하고 길을 열어달라’는 요구에 시달려야 하는 딜레마에 빠져 있는 셈이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진퇴양난의 상황에 빠진 한화갑 대표가 어떤 ‘솔로몬의 지혜’를 선보일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