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나이에 연기를 시작한 10대 배우들이 대부분 겪는 슬럼프도 이들에겐 ‘남의 일’일 뿐이다. 출연작을 대부분 성공으로 이끈 덕분에 20대에 접어든 지금, 20대 스타로 확실히 자리매김했다.
그런 유승호와 여진구가 마침내 맞붙는다. 이들의 경쟁은 ‘왕자의 전쟁’으로 불린다. 이는 비단 상징적인 표현이 아니다. 각자 야심차게 준비해 내놓는 주연작에서 공교롭게도 ‘조선의 왕자’ 역을 나란히 맡았기 때문이다. 유승호는 MBC 드라마 <군주:가면의 주인>으로, 여진구는 영화 <대립군>으로 대중의 평가를 기다리고 있다.
# 연예계에 새로운 ‘배우 모델’ 제시
유승호와 여진구는 유년기부터 자신의 일을 담당해온 매니저와 지금껏 함께 일하고 있다. 각자 이름을 내세운 ‘1인 기획사’를 이끌고 있다. 비슷한 또래 스타들이 대개 여러 배우들이 소속된 대형기획사를 선호하면서 ‘세력화’를 꾀하지만 두 사람의 선택은 고집스럽게 몇 년 동안 이어지고 있다.
유승호. 사진출처=MBC 드라마 ‘군주:가면의 주인’ 인스타그램
연기 경력만 따지면 유승호와 여진구는 사실 ‘중견급’이다. 유승호는 벌써 데뷔 17년째에 접어들었다. 2000년 MBC 드라마 <가시고기>로 데뷔한 그는 초등학생 때인 2002년 주연한 영화 <집으로>의 성공으로 가장 유명한 아역스타가 됐다. 성장하는 과정에서 배우 소지섭을 닮은 외모로 더 화제를 모았고, 숱한 여성 팬으로부터 ‘이대로만 자라라’라는 열망을 한몸에 받은 특별한 과정도 거쳤다. 스무 살을 넘어서면서도 위기나 고비 없이 인기를 그대로 이어간 실력자이기도 하다.
여진구 역시 경력에서는 뒤지지 않는다. 2005년 영화 <새드무비>로 연기를 시작한 이후 적재적소 활동으로 특별한 고비 없이 소년에서 청년으로 성장했다. 특히 고교생으로는 이례적으로 영화 <화이:괴물을 삼킨 아이> 등 굵직한 작품의 타이틀롤로 활약했다. MBC <해를 품은 달> <보고 싶다> 등 드라마에서는 10대 연기자라는 사실이 무색하게 로맨스 연기까지 소화해 팬 층을 넓혔다.
비슷한 면이 상당하지만 유승호와 여진구는 정작 인연을 맺지 못했다. 다만 유승호에 이어 여진구까지 성공적인 행보를 걸으면서 줄곧 비교의 대상에 놓여왔을 뿐이다. 이런 세간의 시선은 두 사람에게도 상대방을 향한 호기심을 갖게 하기에 충분했다. 유승호는 한 방송에 출연한 기회를 빌어 여진구와 가깝게 지내고 싶다는 마음을 감추지 않았고, 이를 확인한 여진구가 공개적으로 화답한 일도 있었다.
# 왕자 VS 왕자
조선의 젊은 왕자로 나선 두 배우의 대결은 이달 말 본격화할 전망이다. 유승호는 이달 10일 방송을 시작한 MBC 수목드라마 <군주:가면의 주인>으로 시청자와 먼저 만나고 있다. 드라마는 유승호의 활약에 힘입어 시작과 동시에 같은 시간대 지상파 방송 3사 시청률 1위에 올랐다. 부조리한 세력에 맞선 왕세자의 사투와 그 안에서 피어나는 사랑을 그린 드라마로 유승호는 신분을 감춘 조선의 왕자 역할이다.
여진구는 영화 <대립군>을 31일 내놓는다. 임진왜란의 한복판으로 들어선 조선의 왕자 광해를 연기한다. 제작비 100억 원 규모 대작으로 여진구의 도전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혼돈 속에서 성장하는 젊은 왕자를 그리지만 이에 나선 두 배우의 각오는 조금씩 다르다. 시대만 조선으로 정했을 뿐 등장인물과 이야기는 허구로 차용한 <군주:가면의 주인>에서 유승호는 나라를 책임지는 진짜 군주의 모습을 보이는 데 주력한다는 각오다. 자신이 보기에도 “최근 시국은 어지러웠다”고 밝힌 유승호는 “지금 같은 상황에 필요한 군주가 아마 내가 연기하는 극 중 세자가 아닐까 하는 마음을 담아 연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여진구. 사진출처=영화 ‘대립군’ 홍보 스틸컷
여진구는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왕자 광해의 성장을 그린다. 물론 광해는 그동안 영화와 드라마의 주인공으로 자주 등장했던 인물. 여진구는 자신의 개성으로 새로운 광해를 완성하기 위해 치밀한 설계의 과정을 거쳤다. “범접할 수 없는 기운을 가진 왕이나 왕자와 달리 백성과 함께 고생하면서 현실을 두려워하는 인간미 넘치는 모습을 그리려 했다”며 “인간을 향한 믿음 속에 리더로 성장해 간다”고 밝혔다.
# 유승호 ‘원톱’ 추구, 여진구는 ‘호흡’ 주력
우위를 가리기 어려운 실력과 인기를 갖고 있지만 유승호와 여진구가 작품을 선택하는 방향은 차이가 확연하다. 유승호는 극을 혼자 이끄는 ‘원톱’에 주력한다면 여진구는 경험 많은 선배 배우들과 함께 어우러지는 ‘호흡’에 집중한다.
실제로 <대립군>에서 여진구는 이정재와 투톱으로 나선다. 이 밖에도 김무열, 박원상 등 배우들이 함께한다. 앞서 출연한 영화 <화이:괴물을 삼킨 아이>에서는 김윤석·조진웅과 함께했고, 참여하는 새 영화 <1987>에서도 역시 김윤석·하정우·강동원 등과 호흡을 맞추면서 자신의 실력을 끌어올리는 데 공을 들인다. 드라마 주연으로도 활동하지만 스크린에서 더 큰 성과를 거두는 것도 특징이다.
반면 유승호는 과감하게 원톱으로 활약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최근 주연한 사극영화 <조선마술사>와 <봉이 김선달>에 이어 <군주:가면의 주인>에서도 마찬가지다. 이를 통해 작품의 제작을 결정지을 수 있는 이름값을 연달아 증명하고 있다. 여진구와 달리 스크린보다 주로 드라마에 출연할 때 이름값을 높인다.
이해리 스포츠동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