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2년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를 관람하며 눈물을 흘린 문재인 대통령. 사진출처=문재인 캠프 페이스북
문 대통령의 영화계 데뷔(?)를 이야기하자면 고 노무현 전 대통령과의 관계를 떼어놓을 수 없다. 노 전 대통령과 관련한 다큐멘터리 영화로 지난해 개봉한 첫 영화 <무현, 두 도시 이야기>에 이어 오는 25일 두 번째 다큐멘터리 영화 <노무현입니다>가 개봉을 앞두고 있다.
제작 계획이 철저히 비밀리에 부쳐졌던 <노무현입니다>는 지지율 2%의 꼴찌후보였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2년 새천년민주당 국민참여경선에서 대선후보로 선출되는 드라마틱한 과정을 되짚는다. 여기에 노 전 대통령 주변의 39명의 인물들이 한 명씩 자신들이 알고 있던 ‘인간 노무현’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 인물 가운데 문재인 대통령이 있다.
문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인터뷰에 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영화 속에서 문 대통령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유서를 읽어내려가며 “제가 그분의 글 쓰는 스타일을 아는데, 처음부터 (이렇게) 정제된 글을 쓰지 않는다. 처음에 많은 생각을 담았다가 점차 간략하게 다듬는 편”이라며 “머릿속에 오랫동안 유서를 생각하고 계셨는데 우리는 그(노무현)를 아주 외롭게 두었다. 제가 유서를 읽을 때마다 느끼는 아픔”이라며 말을 잇지 못하고 눈물을 삼키는 모습을 보였다.
한 인물을 오롯이 비추는 다큐멘터리 영화는 그 인물의 주변인들에 대해서도 비중 있게 다루지 않을 수가 없다. 문 대통령은 노 전 대통령의 측근이자 친우였던 만큼 노 전 대통령과 관련한 영화에서 문 대통령은 떼려야 뗄 수 없는 등장인물이 된다. 실제로 문 대통령은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직전까지 그와 관련한 국내 주요 언론들의 왜곡보도 실상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슬기로운 해법>(2013)에도 인터뷰이로 참여한 바 있다.
앞선 <무현, 두 도시 이야기>에서도 문 대통령이 짧게나마 출연은 하지만 큰 비중은 없다. 다만, 노 전 대통령과 고 백무현 전 서울신문 시사만화가라는 2명의 ‘무현’들과 문 대통령의 접점을 찾아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역시 문 대통령과 관련이 아주 없다고는 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고 백무현 전 서울신문 시사만화가는 2012년 대선에서 당시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 캠프에 합류해 공식 만평을 그리기도 했다.
아예 문 대통령과 어떤 관련도 없는 사건이지만, 스토리의 주된 모티브가 노 전 대통령이라는 이유만으로 문 대통령으로 추정되는 캐릭터가 삽입된 영화도 있다. 1000만 관객을 달성한 영화 <변호인>의 이야기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변호사 시절을 모티브로 한 영화 ‘변호인’.
대통령 노무현이 아니라 변호사 노무현이 맞섰던 ‘부림사건’을 다루고 있는 이 영화에는 ‘미스 문’이라는 변호사사무소 종업원이 등장한다. ‘부림사건’과 문 대통령은 직접적인 연관이 없기 때문에 영화에서 문 대통령을 빗댄 캐릭터는 등장하지 않지만, 감초 같은 역할을 하는 캐릭터에 ‘문’이라는 성씨가 붙여지면서 “문재인의 이름을 반영한 것이 아니냐”는 얘기가 돌기도 했다. 다만 실제로 윤현호 시나리오 작가는 초기 시나리오 집필 과정에서 문 대통령의 캐릭터를 실명 그대로 등장시켰지만 영화화하는 과정에서 삭제됐다고 밝힌 바 있다.
직접 출연하지는 않았지만 문 대통령이 큰 관심을 보였던 영화도 눈길을 끈다. 2000년 익산 약촌 오거리 택시기사 살인 사건을 모티브로 한 영화 <재심>이다. 익산 약촌 오거리 택시기사 살인 사건은 문 대통령의 변호사 시절 “가장 한이 남는 사건”이라고 지목했던 엄궁동 2인조 살인 사건과 비슷하다. 힘도 없고 ‘빽’도 없는 무고한 사람에게 사법기관이 억울하게 죄를 뒤집어 씌워 유죄를 이끌어냈다는 의혹을 받았기 때문이다.
지난 2월 문 대통령은 CGV여의도에서 열린 영화대담에 참석해 “<재심> 속 억울한 사건들은 과거의 역사가 아니고 현재도 되풀이되고 있는 오랜 사법의 적폐”라고 지적하며 영화 관람을 독려하기도 했다. <재심>의 변호사로 이름을 알린 실존 인물인 박준영 변호사는 문 대통령의 뒤를 이어 지난 8일 엄궁동 2인조 살인사건의 재심을 청구했다. 이 때문에 <재심>을 다시 보며 문 대통령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다는 후문이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
박근혜·이명박 영화는 지금부터 시작이다 대통령의 퇴임만을 기다리며 칼을 갈아온 사람들도 있다. 재임 기간 동안 일체의 비판이나 비난을 받지 않으려 했던 정부라면 더욱 그렇다. 어느 나라에서든 안전하게 대통령을 비판하기 위해서는 임기 말기에서 정권 교체 사이의 시기가 적기일 것이다. 여기에 더해 재임 기간 동안 역사적으로 씻을 수 없는 족적을 남긴 대통령이라면 퇴임이나 사망 이후에도 지속적인 소재가 돼 후임 대통령들의 본보기가 되기 마련이다. 몇 십 년에 걸쳐 다양한 미디어믹스로 비난과 비판의 목소리를 한 몸에 받아왔던 고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은 차치하더라도 바로 직전 대통령이었던 박근혜 전 대통령,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영화는 지금부터 시작이다. 이 전 대통령에 대한 비판이 주로 그의 정책과 공약 이행에 초점을 맞췄다면, 박 전 대통령의 경우는 국정농단 사태에서부터 ‘태극기 부대’라는 맹목적인 지지자들을 만들어 낸 ‘박(朴)씨 신화’까지 폭넓게 다룰 예정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 관한 영화 ‘미스 프레지던트’. 당시 맥쿼리자산운용 측은 <맥코리아>의 김형렬 감독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예고편의 일부 내용이 왜곡됐고 내용을 뒷받침할 만한 구체적인 증거도 없는 만큼 법적 대응을 고려하고 있다”고 경고했던 바 있다. 맥쿼리 측이 지적한 예고편의 내용은 송경순 맥쿼리인프라투융자회사 감독이사가 “이명박 대통령이 1990년대 말 워싱턴에 체류하면서 매주 우리 사무실에서 세미나를 했다”는 2009년 국정감사 당시 발언 등이다. 다만 개봉 전 강경한 모습을 보였던 것과는 달리 개봉 이후에는 맥쿼리 측에서 소송을 제기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MB의 추억>을 제작한 김재환 감독은 “5년에 한 번씩 현직 대통령에 대해 이야기를 하겠다”고 밝혔고, 지금 그 약속을 지키려하고 있다. 김 감독은 박근혜 전 대통령을 타깃으로 한 영화 <미스 프레지던트>를 제작해 오는 10월 26일 개봉할 예정이다. 그는 이 영화를 통해 박 전 대통령의 ‘대통령’ 당선 과정에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의 신격화가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는 사실을 조명한다. 그들에 대한 맹목적인 사랑이 잘못된 선택임을 알면서도 열성 지지자들이 그들의 딸을 대통령의 자리에까지 올렸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영화 제목 <미스 프레지던트>의 ‘미스’는 여성을 뜻하는 호칭 ‘Miss’일 수도, 신화를 뜻하는 ‘Myth’일 수도, 지지자들의 잘못된 선택을 뜻하는 ‘Mis-’일 수도 있다. <미스 프레지던트>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과거와 탄핵 당해 재판을 기다리고 있는 현재까지 한 사람의 인생사를 보여줌과 동시에 그를 아버지와 동일시하고 사랑했던 지지자들의 유일신앙과도 같은 추앙을 온전히 담아냈다. 대통령 한 사람에 대한 비판 영화가 아니라 그 지지세력의 근간을 흔드는 영화인 만큼 개봉 전부터 포스터가 찢겨나가는 등 험난한 앞날을 예고하고 있다. <미스 프레지던트>의 개봉일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암살 사건이 일어난 날이기도 하다. [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