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라고 그 설립자 선생님이 아파서 법률상담을 할 게 있다고? 알았어.”
전화를 끊은 아내가 내게 말했다.
“언니 병원의 오너인 선생님이 폐암이 발견됐대. 이미 폐 뿐만 아니라 췌장부터 시작해서 여러 곳으로 전이가 됐다는 거야. 앞으로 석 달 정도 남았대. 지난번 신체검사 때 발견을 못했대”
물고기가 그물에 걸려 당황하듯 죽음은 그렇게 갑자기 닥쳐왔다. 병원설립자인 그 의사선생은 부동산투자에도 탁월한 기질을 보여 많은 재산을 모아놓은 것 같았다. 이제 즐기려고 마음먹는 순간 죽음의 사신이 부르러 온 것이다.
그가 일구어 놓은 큰 병원은 완전히 한 사람의 개인적인 수완으로 운영되는 곳 같았다. 전혀 시스템화 되어 있지 않은 한 사람의 백색왕국이었다. 그만 사라지면 몇 백 명의 의사와 간호원들이 당장 떠나간다는 것이다. 그의 사업체를 물려받을 자식은 아직 제대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것 같았다. 물려받을 사람이 없는 상태인 것 같았다. 죽음을 얼마 앞둔 그는 이 세상에 남긴 재산처리를 놓고 고민하는 것 같았다. 그의 신용을 보고 거액의 대출을 한 은행은 자칫하면 원리금의 상환조치를 취할지도 모른다고 했다. 세상에 남긴 돈 때문에 저승으로 가지 못하고 괴로움을 당하는 부자들이 더러 있는 것 같다. 대한민국 최고재벌인 이건희 회장도 그룹의 상속문제 때문에 의식불명 상태로 아직도 자신이 세운 병원에 있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죽어야 할 때 죽지 못한다면 그자체가 지옥 같은 엄청난 고통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잠은 쏟아지는 데 기침 때문에 깰 때가 있었다. 괴로웠다. 영원하고 편안한 잠 인 죽음으로 가지 못하고 주사와 약물로 깨어있으면서 냉기서린 방에 혼자 있으면 얼마나 힘이 들까. 깊은 잠에 빠져들 듯 스르륵 그렇게 죽었으면 좋겠다. 아내와 함께 점심을 먹으면서 법률상담을 해 주었다. 후임이사장의 선임절차문제, 양도할 경우의 법적인 절차 등이었다. 돌아오는 길에 아내에게 말했다.
“이제 재산을 쌓아놓고 즐길 만하니까 하늘에서 오라고 하는구만 이제 막 칠십대가 됐는데 안됐어. 더 살 수 있잖아?”
“우리는 그렇게 생각해도 아이들은 안 그럴걸. 살만큼 살았다고 생각할 걸. 그 병원장님만 아니라 우리 부부가 지금 죽어도 아이들은 그렇게 생각할 거야.”
“그런가?”
인간은 죽는 건 맞지만 항상 지금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당신은 삶이 세달 밖에 남지 않았다면 그 시간을 어떻게 보낼 것 같아?”
내가 아내에게 물었다.
“석 달 남았다고 갑자기 뭐 특별한 일이야 하겠수? 평소 하던 대로 매일같이 말씀을 읽고 기도하고 남은 시간 한명이라도 복음을 전하는 일을 하겠지. 젊어서는 성경속의 마르다 같이 세상일을 보며 ‘바빠 바빠’하고 살았는데 이제는 안 그래요. 마르다의 동생 마리아 같이 주님 앞에서 그 말씀만 듣고 기도하는 생활로 삶은 충분한 것 같아. 그렇게 죽기 전날까지 생활하다가 부르시면 아멘하고 가면 되지 뭐.”
많은 재산은 천국 가는 길에 장애물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죽음을 순순히 받아들이는 연습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
엄상익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