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단번에 결론을 내시네, 역시 대단하셔”
보고 있던 다른 과 의사가 그 의학적 지식에 감탄했다. 옆에 있던 수련의들이 탄복을 하는 표정이었다. 내가 수첩을 꺼내들고 기록을 하려고 피부과 교수에게 물었다.
“지금 진단명이 뭐라고 하셨습니까?”
“네? 적으시려구요?”
그는 당황한 표정이 완연했다.
“저 직업이 뭐죠?”
그가 경계하는 눈초리로 내게 물었다. 절실한 심정으로 찾아간 환자인 나에 대한 의대교수의 태도는 의학지식의 자랑과 철저한 경계였다. 의대교수는 나를 특수한 피부과 증세를 전공하는 의사에게 돌리면서 한마디 내뱉었다.
“그 선생님은 청와대하고도 잘 통하고 있어요.”
나는 도대체 그 말이 왜 필요한지 이해할 수 없었다. 아픈 사람에게는 치료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나는 조직검사를 한 후 며칠 후 특수한 피부병을 연구하는 담당교수를 찾아갔다. 팔과 다리에 난 상처가 점점 더 커지면서 깊이 패이고 있었다. 담당교수가 나의 상처를 보더니 마치 문둥병환자라도 보듯이 얼굴을 찡그리면서 뒤로 피했다. 나의 병을 치료해 주려고 하는 의사의 마음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저 이 증상이 어떤 병인지 전혀 모르겠습니다. 안다고 해도 중동 쪽에 있는 증상이라면 약이 없습니다. 희귀한 환자 몇 명을 위해서 약을 생산할 제약회사가 없으니까요. 일단 내가 할 수 있는 건 혈액속의 진균을 없애는 독한 약을 사용해 보는 방법 밖에 없는데 상당한 부작용이 있을 겁니다.”
그는 사무적으로 얘기하고 처방전을 써 주면서 갑자기 호기심이 이는 표정으로 덧붙였다.
“이런 증상은 희귀한데 제가 연구에 쓰려고 하는데 촬영해도 될까요?”
치료보다 연구 쪽으로 관심의 방향이 돌아가자 갑자기 활기차고 열정적인 표정이 되었다. 나는 그를 믿을 수가 없었다. 나는 당황한 상태에서 방황했다. 주위에 내 사정을 얘기했다. 미국에 가서 치료를 받으라는 조언도 받았다. 증세를 사진을 찍어 중동에 보내고 그곳 의사들의 의견을 들어보기도 했다. 어느 날 내 소식을 전해 들어서 아는 의사한테서 연락이 왔다.
“내가 그 증상에 대해 세계보건기구에 제출된 논문들을 살펴봤어요. 리슈마니아시스라는 중동 쪽의 독충입니다. 찾아가신 그 대학의 교수들은 금세 찾을 수 있는 논문을 들춰보지도 않는 모양이예요. 인터넷으로 우리나라에서 치료경험이 있는 의사를 찾아보니까 성모병원의 조백기 선생님이 치료를 한 유일한 의사 선생님이예요. 한번 찾아가 보세요.”
어둠 속에서 빛을 찾은 느낌이었다. 말을 해 준 의사는 30년 전 군법무관 시절 군법회의에 회부된 그를 도와준 적이 있었다. 그 보답인 것 같았다. 당장 여의도 성모병원을 찾아갔다. 노 의사가 소박한 진료실에 앉아 있었다. 그가 팔다리에 붙인 거즈를 떼고 얼굴을 바짝 들이대고 누런 진물이 흐르는 상처부위를 유심히 봤다. 처음에 갔던 대학병원의 교수인 의사들과 다른 태도였다. 그는 거의 상처에 닿을 듯 코를 대고 냄새를 맡았다. 환자에 대한 애정과 따뜻한 마음이 느껴졌다. 그는 내가 가져온 조직검사의 표본을 현미경에 대고 한참을 보더니 그 옆의 피부과 교과서의 한 페이지를 펼쳐 내게 보여주면서 말했다.
“이거 리슈마니아시스 맞아요. 저는 필리핀에 의료봉사를 갔다가 이 유사한 독충에 물린 환자를 치료해 본 경험이 한번 있습니다. 그 환자는 이렇게 상처가 크지는 않았습니다. 중동쪽 과는 다른 점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일단 제가 열심히 치료해 보고 싶은데 어떠십니까? 그게 안되면 미국에 연락해서 특수치료제를 공급받도록 하겠습니다.”
그는 환자인 나의 마음을 알아주는 것 같았다. 내가 두려워하고 힘들어 하는 보면서 가여워했다. 자신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 다른 전공의들과 협력해 치료를 해 주려고 노력했다. 의학지식과 교수자리를 자랑하는 메마른 다른 대학병원의 교수들보다 그에게서는 풍부한 인간성이 느껴졌다. 치료하는 순간순간도 겸손했다. 그 의사에 의해 나는 완치됐다. 그런 분이 진짜 좋은 의사가 아닐까. 전문직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가져야 할 첫째 덕목은 그 지식이 아니라 찾아오는 사람과 공감하고 그 고통을 이해해 주는 것이다. 모든 전문가의 제1의 덕목은 인성(人性)인 것 같다.
엄상익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