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금원으로 일하다가 오십대 감옥에 들어간 세르반테스는 거기서 명작인 돈키호테를 썼다. 수백 년 전 감옥안에서 집필된 걸작 고전이 많다. 그러나 황석영씨는 글을 쓰지 못하게 하는 감옥 안에서 작가의 고통을 얘기하고 있었다. 몸은 감옥에 갇혀도 인간의 영혼을 가두기는 쉽지 않은 것 같다.
십년 전 쯤 일로 있어 산속의 외딴집에 홀로 살던 도종환 시인을 찾아간 적이 있었다. 그는 몸이 아파 다른 사람이 사용하던 집을 빌려 휴양을 왔다고 했다. 텃밭에서 난 상치와 근처 야산에서 캔 취나물에 밥과 된장을 얹어 먹고 나서 이런저런 얘기를 했었다.
시인은 감옥에서도 역시 시를 쓰고 싶었다. 감옥에서 볼펜은 개인소지가 금지되는 물품이었다. 법원에 항소이유서같은 서류를 쓸 때 이외에는 회수해서 교도관의 책상에 일괄 보관하는 것 같았다. 시인은 어느 날 운동장에서 다른 사동에 있는 운동권 출신 수감자로부터 볼펜심 반 토막을 얻는 순간 얼마나 기뻤는지 몰랐다고 했다. 그 볼펜심을 사용해서 책의 위아래 여백에 시를 썼다고 했다.
그가 수감생활을 마치고 교도소를 나올 때 비닐 가방 안에 그동안 쓴 시가 위아래 여백에 가득 찬 책을 담아 나오려고 할 때였다. 조사를 하던 교도관이 책은 규정상 외부에 반출할 수가 없다고 했다. 감옥 안에서 쓴 작품이 모두 물거품이 되는 순간이었다. 시인은 실망한 표정으로 자기가 쓴 시가 담긴 책가방을 교도관에게 내주었다.
그가 교도소 철문을 열고 눈부신 햇볕을 받으며 몇 걸음 떼는 순간이었다. 뒤에서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조금 전의 수많은 시가 든 책을 압수한 담당교도관이었다. 그 교도관이 말없이 시인에게 그 가방을 건네주고는 안으로 들어갔다. 시인은 잃어버린 자식을 다시 찾은 듯 기뻤다고 했다.
구속되었던 가수 전인권의 변호를 한 적이 있었다. 감옥에 있으면서도 그는 노래 부르는 시인이었다. 비가 오는 날이면 가사를 만들어 편지에 써서 변호사인 내게 보내곤 했다. 자기가 만든 가사를 봐 달라는 것이었다. 그 안에서도 인간의 창작욕은 끝이 없는 것 같다.
요즈음은 교도소도 많이 바뀐 것 같다. 얼마 전 살인죄를 저지르고 십 여 년 이상 감옥에 있는 수감자에게 내가 요구한 사항이 있었다. 성경 속 시편 23장을 깨끗한 공책에 천 번을 써서 보내 달라고 해 봤다. 그렇게 성경을 필사하다보면 그의 영혼에 성령이 내려와 검은 구름에 가렸던 그의 영혼에 빛이 비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살인범은 상당히 비틀어진 인격을 가지고 있었다. 사회에 있을 때 아무도 그를 말릴 수 없을 정도의 포악한 성격이었다. 처음에 뜨뜻미지근한 태도를 보이던 그가 어느 날 시편23장을 천 번 쓴 공책들을 우편으로 보내왔다. 그걸 보고서 나는 약간의 영치금을 보냈다. 같은 감옥 안에서도 어떤 사람은 창살 밖의 하늘에 빛나는 별을 보고 어떤 사람은 바닥의 진흙탕 물을 본다. 십자가에 달린 예수의 옆에 있는 두 강도 중 한 사람은 예수를 조롱하고 다른 한 사람은 애원을 했다.
변호사를 하면서 감옥을 30년 드나들었다. 그곳에 있는 사람들이 책을 읽고 노동을 하고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꽃을 키우면서 새로운 영혼으로 태어났으면 좋겠다.
엄상익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