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관적인 체험이지만 살인범의 눈에서는 몸을 얼어붙게 만드는 기분 나쁜 푸른빛이 흘러나오는 것 같은 때가 있었다. 어떤 살인범의 눈동자의 바퀴살 중심은 엷은 커튼이 쳐져 있는 듯 하기도 했다. 그 커튼 뒤로 순간 어떤 존재의 실루엣이 스쳐가기도 했다. 그의 내면에 악령이 들어와 그를 움직이는 것 같았다.
박수무당의 살인죄를 변호한 적이 있다. 그는 십대시절 무덤가에서 벼농사를 지었다고 했다. 비가 내리는 어둠침침한 저녁이면 무덤 쪽에서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고 했다. 그는 어쩌면 죽은 혼령과 본능적으로 교통을 하는 것 같았다. 그는 이후 태백산의 굿당에서 일하면서 신내림을 받았다고 했다.
나는 무당인 그에게 귀신이 씌우면 어떠냐고 물어보았다. 그가 자신의 독특한 체험을 내게 얘기했었다. 길을 걸어가는데 일곱 여덟살 정도의 계집아이가 혼자서 불쌍한 모습으로 있더라는 것이다. 그 계집아이의 손을 잡고 걷기 시작했다. 잠시 후 길가에 떡을 파는 아주머니가 보였다. 떡을 하나 사서 계집아이의 손에 쥐어 주고 계속 길을 걸었다. 한참을 걷다보니까 옆에 있던 아이는 없어지고 그만 혼자서 맛있게 떡을 먹으며 가고 있더라는 것이다. 그는 절대 살인을 저지르지 않았다고 내게 하소연했다.
나는 그의 얘기를 들으면서 그의 안에 있는 또 다른 어떤 존재가 살인을 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또 다른 잔인한 살인범이 있었다. 그는 어떤 날은 밤이 되면 밤하늘의 별이 쏟아지는 것 같은 쇳소리가 옆에서 굉음을 일으키면서 온몸이 괴로움에 휩싸인다고 했다. 그럴 때면 자신도 모르게 밖으로 나가 낯선 동네의 골목을 다니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갑자기 앞에 가는 남자에게 분노가 폭발해 길바닥에 있던 벽돌장을 들어 그 뒤통수를 갈겨 쓰러뜨리고 바닥에 늘어진 그의 머리통을 수없이 내리쳐 곤죽같이 만들어 버리고 도망친 적이 있다고 했다. 그런 사건은 수 십 년이 지나도 걸리지를 않고 무사하다고 했다. 그는 자신의 속에 또 다른 존재가 들어있는 것 같다고 했다.
그들은 형을 감경받기 위해 내게 그런 말을 하는 것은 아니었다. 변호사에게 자신의 독특한 체험을 은밀히 얘기하는 것이었다. 그런 사람에 대해 정신감정을 신청한 적도 더러 있다. 대부분 인지능력에 별다른 문제가 없다는 진단이 내렸다. 영적인 세계는 정신의학과는 또 다른 차원의 영역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예수는 인간의 내부에 존재하는 여러 악령을 쫓아냈다. 인간의 내면에 있던 귀신이 나가 돌아다니다가 일곱 귀신을 데리고 다시 전에 있던 사람의 속에 다시 들어가는 걸 얘기하기도 했다. 그 제자들에게 귀신을 쫓는 퇴마권능을 부여하기도 했다. 인간의 마음이라는 공간은 그런 귀신들이 지나가는 길이기도 하고 또 몰래 들어와 숨어있는 곳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인간의 내면에 들어와야 하는 것은 악령이 아니라 성령이어야 할 것 같다. 그런 성령을 받아들여야 하는 게 종교의 본질이 아닐까. 의뢰인으로 강남에서 유명하다는 무당이 온 적이 있다. 그녀는 귀신 점을 잘 쳐서 선거를 앞둔 철이면 정치인들이 줄을 선다고 한다. 무당인 그녀는 돈을 잘 벌어 빌딩도 소유하고 있었다.
“어떻게 귀신 점을 쳐요?”
내가 호기심에 그녀에게 물었다.
“손님들이 가지고 온 사진을 물에 넣으면 그 손님의 앞날의 한 장면이 얼핏 보여요. 그걸 나름대로 해석해 주는 거죠.”
“찾아오는 사람마다 앞날이 그렇게 다 보여요?”
내가 신기해서 다시 물었다.
“아니죠. 신기가 오른 이른 아침에 한 두 명 정도 그런 게 보이고 나머지는 안보여요. 그럴 때는 대충 둘러대고 거짓말도 해요.”
“나는 크리스챤이라 매일 성경보고 기도하면서 내 마음에 성령이 내려오시라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해요?”
“영 중에 제일 큰 영은 하나님의 영인 성령이죠. 나도 그건 알아요. 그런데 나한테는 다른 신이 내려 이렇게 무당으로 살고 있어요. 이 무당 팔자가 우선은 돈을 벌고 그러는 것 같아도 귀신이 나중까지 좋게 해 주지는 않아요. 비참하게 내 던져 질 수 있죠. 동자귀신이 든 다른 무당들은 나보다 더 애를 먹는다니까. 아이들 죽은 귀신이니까 하는 말도 아이 같고 무슨 뜻인지 몰라 애를 먹기도 한다니까. 더러 놀리기도 하고 말이예요.”
2017년3월 인천 연수구의 한 공원에서 초등학생을 집으로 데려다 살해하고 시신을 훼손한 17세의 소녀가 있었다. 그 소녀는 수사관에게 “내가 아니라 내 안에 있는 다른 애가 그랬다”고 말했다는 보도를 보았다. 어쩌면 그 소녀의 영혼에 엑소시스트처럼 악령이 들어왔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엄상익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