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나 아이스크림도 만들어 팔기 시작했어. 정말 좋은 거야. 한번 와서 먹어봐.”
육십 대 중반의 그는 커피숍을 하면서 아이스크림 코너를 만든 것 같았다. 아내는 친정어머니한테서 물려받은 80년된 제니스라디오를 친구가 하는 커피숍의 인테리어 소품으로 놓게 선물하자고 했다. 한 세대를 아내의 친정에서 살아온 제니스 라디오를 차에 싣고 세로수길 코너 연립주택 일층에 있는 친구의 커피숍으로 향했다. 가는 차 안에서 아내가 내게 말했다.
“내가 어렸을 때 몸이 약해서 항상 방에 누워 있으면서 이 제니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도 듣고 연속방송극도 들었어. 내게는 추억과 정이 가득 묻어있는 물건이지.”
“그런데 왜 남편친구에게 선물을 하려는 거야?”
“전번에 그 커피 점에 가보니까 벽의 선반에 ‘싱가미싱’이나 옛날 램프같은 소품들을 장식해 놨더라. 내 제니스 라디오가 집안 구석에 먼지 쓰고 박혀 있는 것 보다는 그 커피점 벽에 놓이는 게 더 좋을 것 같더라구. 그리구 우리부부도 환갑이 훌쩍 넘었는데 이제는 하나하나 집안 살림도 없애가면서 정리하는 게 좋을 것 같아. 젊어서부터 입던 옷도 너무 많아. 쓸 만한 것들은 기부하려고 해.”
환갑이 넘어서부터 아내의 마음이 변하는 것 같았다. 나는 아내의 제의에 흔쾌히 동의했다. 친구의 커피숍 구석 아이스크림 코너 앞에 도착했다. 예전 우리가 자라던 시절 길거리 문방구 앞 네모난 아이스크림 통이 놓여있듯 친구는 스테인 아이스크림통 들이 놓인 투명한 유리 진열장을 거리로 향하게 하고 있었다. 토요일 오후 세로수길 뒷골목을 지나가던 이십대쯤의 젊은 남녀가 진열장속의 아이스크림에 눈길을 던지는 것 같았다. 그걸 느낀 친구는 앞치마를 두른 단정한 차림으로 허리를 깊이 숙이면서 공손히 말했다.
“어서 오십시오. 특별히 만든 과일 아이스크림입니다.” 자식들보다도 훨씬 어려보이는 젊은 남녀는 시큰둥한 표정으로 골목 저쪽으로 가 버렸다. 친구는 개의치 않았다. 순간 그는 프로라는 생각이 들었다. 미술을 전공한 그는 이십대 무렵 돈 30만원을 가지고 동사무소에서 주는 현수막을 만드는 일을 하기 시작했다. 가난한데다가 어려서부터 소아마비라는 장애가 있었다. 다리는 불편하지만 인생길에서 그는 장거리마라톤 주자 같았다. 남에게 다가가는 적극적이고 다정다감한 구김살 없는 성격이었다. 그는 큰 광고회사의 사장으로 성공하고 많은 재산을 모았다. 육십대 중반이 되고나서는 회사경영을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커피와 함께 길거리모퉁이에 진열장을 놓은 아이스크림 코너를 만든 것이다. 그가 우리부부에게 방금 전에 만든 아이스 크림을 주면서 말했다.
“나 완전히 과일로만 만드는 아이스크림을 만들어 팔기 시작했어. 수박에서 씨를 다 없애고 수박자체만 갈아서 아이스크림을 만들었어. 키위도 망고도 과일을 짠 즙만으로 아이스크림을 만든 거야. 어려서 워낙 설탕을 많이 먹어서 그런지 요즘 젊은이들은 단맛을 싫어해. 과일즙만 가지고 즉석에서 아이스크림을 만들면 과일 자체의 자연스런 향이 그대로 인거지.”
그는 가지고 있는 돈과는 상관없이 끝없이 생각하고 실천에 옮기는 친구였다. 그가 이렇게 말했다.
“중소기업청에서 나보고 강연을 하라고 해서 몇몇 대학에 가서 강연을 했어. 우리나라에서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보면 그냥 남에게 의지하려고 하는 경우가 많아. 구청 같은 데 가서 드러누워서 데모하면서 떼를 쓰는 거야. 납품도 경쟁력으로 하지 않고 나는 장애다 하면서 사달라고 떼를 쓰는 거지. 나도 어려서부터 장애가 있는 사람이지만 그렇게 해서는 안 될 것 같아. 몸이 조금 불편할 뿐이지 인간자체나 능력이 장애는 아니잖아? 나는 장애를 가진 사람들남에게 의지하지 않고 당당하게 살게 하고 싶어.”
어려서부터 그랬다. 그는 장애를 극복하고 인생 장거리 마라톤에서 결승점에 도달했다. 그는 내 도움을 받지 않고 가져온 무거운 제니스라디오를 번쩍 들어 벽의 제일 위쪽 선반에 올려놓았다. 한쪽 다리로도 그는 괴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것 같았다. 친구가 만든 과일아이스크림을 얻어먹고 돌아오는 즐거운 토요일 저녁이었다.
엄상익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