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은 하나인데 법정에서는 가짜도 진실이라고 우긴다. 성경속의 솔로몬은 하나님의 지혜를 가지고 있지만 보통의 판사들은 그렇지 않았다. 법복을 입고 높은 곳에서 우아하게 있지만 그들 역시 월급을 받고 살아가는 평범한 사법공무원이기도 하다. 판단하기 곤란할 때 법원은 조정재판을 열어 강제로 타협시키기도 한다. 어떤 형태든 분쟁의 매듭은 지어야 하는 게 법원의 기능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나는 마지못해 조정재판에 끌려나왔다.
“양보하시고 타협하셔서 이 재판을 끝내시죠?”
사십대 중반쯤의 미끈하게 생긴 판사가 직업적인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면서 내게 권했다.
“일반의 거래라면 양보도 하고 서로 좋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건 그게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둘 중 하나는 정말 나쁜 놈이고 다른 한 사람은 바보 쪽에 가깝습니다. 저는 바보 쪽 변호사인 셈인데 불의와는 타협할 수가 없다는 생각입니다.”
많은 돈을 주고 사면서 계약서에 뭘 샀다는 걸 명확하게 하지 않은 건 바보짓이다. 그런 계약서가 종종있었다. 심지어 갑과 을을 거꾸로 적은 경우도 많이 보았다. “그러면 서로 권리를 반반씩 공유하는 것으로 하면 안 될까요?”
판사는 나를 달래는 어조로 말했다.
“그건 재판부의 입장이시지 한쪽 변호사인 저의 입장은 다릅니다. 물건을 팔아놓고 안 팔았다고 하는 놈에게 어떻게 공유하자고 타협하고 공존할 수 있겠습니까?”
나는 완강하게 버티고 있었다. 30년 변호사생활에서 여러 종류의 재판이 열릴 때마다 순간순간 촉각을 곤두세워야 한다. 좋은 게 좋다고 판사가 구슬리며 넘어가자고 할 때 넋놓고 그 말을 따랐다가 낭패를 당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뭘 팔았다는 내용이 적혀 있지 않은 계약서이기 때문에 저희 재판부에서 판단하기가 정말 힘든 사건이예요. 지실수도 있어요. 그러니 적당한 선에서 양보 하시는 게 어때요?”
재판에서 질 수도 있다는 판사의 말은 핵무기 같은 위력이 있는 겁을 주는 말이다. 판사의 말을 듣지 않으면 지게 하겠다는 협박으로 들릴 수도 있다. 의뢰인을 대신해서 나가 일하는 변호사는 이런 때 잘해야 한다. “서로의 이해관계의 차이라면 양보합니다. 그러나 이 사건은 선과 악의 싸움으로 봅니다. 정의가 양보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입니다. 변호사는 최선의 노력을 다해 입증하고 주장하는 게 임무입니다. 그리고 판결은 판사의 의무 아닌가요? 판단하기 힘들 것 같다고 정의가 고개를 숙이라고 하는 건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판결에 대해서는 판사가 책임을 져야지 변호사보고 질 수도 있으니까 양보하라고 하시면 곤란하죠.”
“알겠습니다. 그러시다면 2주후에 다시 조정 기일을 잡도록 하겠습니다.”
담당 판사가 그렇게 말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재판에서 양복 입은 검투사가 되어야 하는 변호사는 강한 자기 확신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자신 없는 표정을 짓고 진실에 대한 확신이 없으면 재판에서 질 확률이 많다. 그러나 확신의 전제가 되는 진실파악에 소홀히 하면 안 된다. 잘못하면 악마의 아바타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오늘도 입에서 나오는 검으로 한바탕의 싸움을 하고 법원을 나왔다. 변호사의 일상이다.
엄상익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