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체들이 귀농 정책은 쏟아내는 반면 역귀농 대책에 대해서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있다. 사진은 귀농귀촌박람회 모습으로 기사의 특정 사실과 관련없음. 연합뉴스
지난 2015년 도시를 떠나 전북의 한 마을에 정착했던 A 씨(여‧48)가 꿈꾸던 풍경이다. 하지만 그의 꿈은 2년도 채 지나지 않아 산산조각 났다. 귀농인이 늘어나는 추세인 데다 다양한 지원 정책이 많아 정착이 쉬울 것이라는 지자체의 홍보나 관계자의 설명과는 딴판이었다. 앞서 정착했다는 귀농인 대부분은 도시로 돌아간 지 오래였고,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농사는 교육을 받아도 익숙해지지 않았다. A 씨는 다시 도시로 돌아가는 ‘역귀농’을 준비하고 있다.
A 씨는 단순한 적응 실패 때문만은 아니라고 말한다. 익숙하지 않은 삶에 대한 각오는 충분히 하고 도시를 떠났고, 1, 2년 만에 익숙해지지 않을 것도 잘 알고 있었다고 했다. 그는 “이곳을 떠나야겠다고 생각한 이유는 다른 데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지난 2016년부터 시작됐다. 어린 시절부터 이 동네에서 홀로 지내던 한 남성이 A 씨에게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이후부터다. 농사를 돕고 짐을 옮겨주는 등 호의라고 생각했던 일들이 점차 부담스럽게 변하기 시작했다. 매일 집 앞에 찾아와 만나줄 것을 요구했고 거절하면 하루 종일 집 앞에 트럭을 주차해 놓고 기다리더니, 얼마 뒤에는 동의도 구하지 않고 집 안까지 무작정 들어왔다.
A 씨를 더욱 힘들게 했던 건 동네 어르신들의 반응이었다. 하소연이라도 하면 “저 정도면 받아줘야 하는 거 아니냐” “도시 여자라 콧대만 높다”는 등의 대답이 돌아 왔다. A 씨는 “아무리 노력해도 섞일 수가 없었다. 작은 일이라도 주민들과 생각이 다르면 ‘도시 여자라 그렇다’는 말이 먼저 나왔다”며 “작은 마을이라 오히려 혼자 조용히 지내는 일이 더 쉽지 않다”고 말했다.
A 씨와 비슷한 사례는 더 있다. <일요신문> 취재 과정에서 만난 ‘역귀농‧귀촌인’들 대부분 현지 주민들과의 마찰을 가장 큰 이유로 꼽았다. B 씨의 경우, 주민들의 냉랭한 반응에 마음고생이 심했다. 대화에도 끼워주지도 않았고, 이후부터는 마주치더라도 인사도 나누지 않게 됐다. 결국 생활반경이 완전히 나뉘자 마을사람들은 ‘주민들을 무시한다’는 말로 수군거렸다. 이후 정체를 알 수 없는 이상한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또한 점심 식사자리에서 벌어지는 마을 어르신의 상습적인 폭행, 주거침입에 가까운 불시 방문 등 ‘오해’와 ‘범죄’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드는 상황들도 적지 않았다. 유독 외부에서 온 귀농‧귀촌인들에게 마을의 각종 행사부터 시설 보수비용 등을 과도하게 요구한 사례도 있다.
반면 현지 주민들도 할 말은 있다는 입장이다. 지역마다 특색이 있는데, 어울리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 외부인들도 많다는 지적이다. 비료 냄새가 심하다며 신고를 한다거나, 귀농‧귀촌인들끼리만 어울려 역으로 ‘왕따’를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한다. 여기에 상대적으로 고학력인 귀농‧귀촌인들이 많아 ‘무시한다’는 이유로 갈등이 발생하기도 한다.
문제는 이런 경우 지자체나 경찰 등이 개입하는 게 쉽지 않다는 점이다. 섣불리 개입했다가 또 다른 갈등이 빚어질 수도 있어 신중하다는 입장이다. 익명을 요구한 경기도의 한 지자체 관계자는 “현지 주민들과 소통 문제로 어려움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지만 지자체가 직접 나서 민원을 해결하거나 도움을 주기가 쉽지 않다. 상황이 심각할 경우 중재를 서는 일도 있지만 이후 이 일로 또 다른 갈등이 빚어져 조심스럽다”고 말했다.
앞서의 A 씨가 머물던 마을 인근의 경찰 관계자 역시 “당시 A 씨가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고 해 마을 총각에게 주의를 준 기억이 있다”면서도 “다시 도시로 돌아간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안타깝다”고 말했다.
지난 6월 29일, 통계청과 농림축산식품부, 해양수산부는 공동으로 ‘2016년 귀농어·귀촌인 통계’를 발표했다. 통계를 보면 2016년 한 해 동안 도시를 떠나 농촌으로 이동한 인구는 약 50만 명에 육박했다. 귀농·귀촌가구는 최근 연평균 5% 수준으로 증가하는 추세다.
각 지자체들은 귀농‧귀촌인 증가 추세에 맞춰 앞다퉈 홍보와 지원 정책에 열을 올리고 있다. 귀농인들이 몰리는 지역의 지자체들은 지난 4월 귀농 관련 부서를 신설하고 각종 정책을 쏟아내는 중이다. 농림식품부는 귀농인들에게 저리로 대출을 해주는 제도도 마련했다.
하지만 앞서의 ‘역귀농’ 사례들에 대한 대책은 거의 전무하다. 이에 대한 통계 역시 지난해 농림축산식품부가 2012∼2015년 귀농·귀촌한 1000가구씩을 대상으로 조사한 내용이 유일하다. 매년 발표되는 귀농‧귀촌인 증가와 관련한 통계와는 대조적이다. 앞서의 ‘역귀농’ 사례 관련 통계를 보면, 10명 중 1명은 다시 농촌을 등지고 역귀농했다. 역귀농 사유로 현지 주민들과의 갈등‧고립감은 소득 부족, 농업노동 부적응에 이어 세 번째였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귀농‧귀촌인들을 위한 센터를 운영하고 있으며 수시로 교육과 지원을 하고 있다”면서도 “주민들과의 갈등 부분에 대해서는 특별한 정책이나 제도는 없다. 관심을 갖고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지자체 관계자는 “특히 혈연관계가 있는 집성촌의 경우, 귀농‧귀촌인들의 이주는 집에 낯선 사람을 들이는 것과 같은 불편함을 느끼는 것 같다. 게다가 농촌경제가 악화되는 상황에서 ‘경쟁자’로 받아들여 경계부터 하는 경우도 있다”며 “서로 다른 환경에서 살아온 사람들이 짧은 시간에 결합하기가 쉽지 않은 점은 충분히 알고 있다. 전담 상생팀을 구성하는 등 구체적인 갈등 해결 방안을 마련 중이다”라고 말했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