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씨의 좌충우돌 행보는 참여정부가 출범하기 직전부터 시작됐다. 그는 노 전 대통령이 취임하기 직전인 2003년 초 한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전직 국세청 고위 간부를 차기 국세청장감으로 지지하는 발언을 해 정치권에 파문을 던졌다. 노 씨는 발언 취지가 왜곡됐다고 해명했지만 당시 한나라당은 ‘형님 인사’ 의혹을 제기하며 정치 공세를 퍼부었다. 노 씨가 ‘봉하대군’이란 별칭을 얻게 된 계기가 된 사건이었다. ‘봉하’는 노 씨의 집이 있는 경남 김해 진영읍의 마을 이름이다.
노 씨는 참여정부가 들어서자마자 권력형 비리 사건으로 부상했던 장수천 사건 등 각종 부동산 투기 의혹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우선 노 씨가 실제 거주 목적이 아니면 허가가 나지 않는 경남 거제시 한려해상국립공원 내 토지에 주택 두 채와 커피숍을 소유한 사실이 드러나자 당시 한나라당은 노 전 대통령의 위장 재산 의혹을 제기하는 동시에 노 씨의 부동산 투기 의혹을 강력히 제기했다.
2003년 5월 당시 장수천 사건을 집중적으로 폭로했던 김문수 경기지사는 노 씨가 거제시 구조라리에 지어 매각했던 주택 및 땅 12필지와 관련해 “노무현 후보가 장수천에 대한 보증채무를 회피할 목적으로 노 씨 명의로 되어 있던 이 땅을 친척에게 이전 관리하다가 민주당 경선 도중 박연차 씨에게 넘기고 정치자금을 지원받았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해 파문을 일으켰다.
김 지사의 이 같은 주장에 대해 당시 청와대와 노 씨는 “근거 없는 주장”이라고 일축한 바 있다.
노 씨는 2003년 중반에 발생한 대우건설 비자금 및 남상국 전 대우건설 사장 자살 사건에도 연루된 바 있다. 당시 검찰은 남 전 사장을 상대로 대우건설 비자금 내역을 추궁하는 과정에서 노 씨가 남 전 사장으로부터 사장직을 연임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청탁과 함께 3000만 원을 받았다가 석 달 뒤 돌려준 사실을 밝혀냈다.
이 사건과 관련해 3개월 정도 검찰의 강도 높은 수사를 받아 온 남 전 사장은 2004년 3월 11일 돌연 한강에 투신자살해 충격을 던져줬다. 남 전 사장이 갑자기 자살이란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진짜 이유가 무엇인지는 지금까지도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법원은 2004년 7월 21일 남 전 사장으로부터 인사청탁과 함께 3000만 원을 받은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노 씨에게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 추징금 600만 원을 선고했다.
노 씨는 지난 10월 국회 국정감사장을 뜨겁게 달궜던 이른바 ‘노방궁’(노무현+아방궁) 논란과 관련해서도 구설수에 오르내린 바 있다.
▲ 검찰이 노건평 씨의 몫으로 추정하고 있는 김해시 내동에 위치한 상가 건물.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
한나라당은 박 회장과 노 씨가 사저 주변 땅을 매입해 노 전 대통령에게 편의를 제공하거나 일부를 매각한 배경에는 말 못한 속사정이 있거나 세 사람 간의 검은 뒷거래 의혹을 감출 수 없다며 봉하마을에 대한 방문조사도 불사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처럼 참여정부 출범 직전부터 노 전 대통령 퇴임 후까지 잦은 구설수에 오르내렸던 노 씨가 참여정부 게이트 사건으로 비화될 조짐이 일고 있는 세종증권 매각 비리 사건에 또 다시 그 이름을 올려놓고 있다. 검찰이 이 사건 수사 과정에서 “노 씨 몫으로 김해 상가를 샀다”는 관련자 진술을 확보하고 조만간 노 씨를 소환 조사할 방침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이 상가는 김해 시내에 위치한 지하 2층, 지상 10층 건물의 1층으로 정화삼 씨 형제가 세종캐피탈 홍기옥 사장으로부터 30억 원을 받은 지 석 달 뒤인 2006년 5월 29일 사위인 이 아무개 씨 명의로 9억 2000만 원에 사들인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은 이 씨 명의로 등기를 마친(6월 21일) 뒤 불과 한 달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홍 사장 명의로 채권최고액 5억 원의 근저당을 설정(7월 7일)했다가 올해 3월 3일 해지한 점에 주목하고 있다.
현직 대통령의 형인 노 씨에게 직접 사례비를 건네기가 껄끄러워 정 씨 형제가 노 씨 몫으로 상가를 매입하고 홍 사장이 보증인 역할을 맡은 게 아니냐는 게 검찰의 시각이다. 상가 1층에 대형 성인오락실이 자리 잡았던 점으로 보아 노 씨가 오락실 일정 지분을 소유하고 ‘경제적 이익’을 취한 정황도 포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정 씨 형제와 홍 사장 등을 상대로 근저당권 설정 경위와 사례비 30억 원의 할당 여부, 상가의 실제 소유자가 누구인지 등을 집중 추궁하는 동시에 노 씨에 대해서도 조만간 소환 조사할 방침이다.
하지만 검찰이 노 씨의 혐의를 입증할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무엇보다 검찰이 확보한 ‘진술’이 당사자가 아닌 관련자의 전언인 것으로 알려졌고 ‘진술’을 뒷받침할 입증 자료를 확보하는 것도 쉽지 않을 것으로 관측되고 있기 때문이다. 노 씨의 혐의를 입증하기 위해서는 임대수익이 노 씨에게 들어간 단서를 잡거나 상가를 일정 기간 이후에 노 씨에게 넘기기로 약속하는 내용의 문서 등 구체적인 물증을 확보해야 한다.
노 씨도 혐의를 완강히 부인하고 있다. 노 씨는 11월 24일 “바다낚시를 간다”며 집을 나선 뒤 30일까지 귀가하지 않고 지인의 집에서 머물면서 검찰 소환에 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5일부터 노 씨의 봉하 집 주변은 그를 만나기 위한 취재진으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하지만 노 씨의 행적은 여전히 오리무중이고 간간히 언론과의 휴대폰 통화로 자신의 억울함을 하소연하고 있는 상황이다. 노 씨는 26일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억울하다. 지금은 아무런 말을 하고 싶지 않지만 검찰이 부르면 출두해 모든 진실을 밝힐 것”이라고 항변하기도 했다.
검찰 관계자들은 세종증권 매각 비리 과정에 노 씨가 연루된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는 만큼 이번에는 검찰의 사정 칼날을 피해갈 수 없을 것이란 관측을 내놓고 있다.
노 씨측은 검찰의 사전영장청구 방침이 알려지자 노 씨의 조카 사위인 법무법인 ‘부산’의 정재성 변호사를 변호인으로 선임하고 법적 투쟁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참여정부 출범 직전부터 ‘봉하대군’이란 별칭을 얻으면서 숱한 잡음과 구설수에 오르내린 바 있는 노 씨가 서슬 퍼런 검찰의 칼날을 피해갈지 아니면 측근 게이트의 ‘몸통’으로 지목받게 될지 검찰의 수사 추이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