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단어 하나가 중요한 게 아니야. 경쟁에서 한발자국이라도 먼저 달려가고 일등을 하는 게 좋은 게 아니야. 너희들은 계산하지 말고 정을 나누고 살아. 다음에 내가 선생을 그만두고 늙어 지팡이를 짚고 너희들을 찾아가 볼 거야. 어떻게 살았나. 꼭 찾아가 볼 거야.”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첫 수업시간에 선생님으로부터 들은 말이었다. 특이한 선생이었다. 그 시절 영어선생으로 저녁에 과외를 하면 별도의 큰 수입이었다. 그러나 선생은 개인의 수입을 위한 과외지도를 거절했다. 대신 나 같은 열등생들을 방과 후에 따로 불러놓고 말했다.
“나는 너희한테 공부를 가르치는 게 아니야. 혼자 공부할 수 있는 그 방법을 알려줘야겠어. 집에 돈이 있어 그때그때 과외를 하거나 학원에 다니는 건 일시적일 뿐이야. 끝까지 성공하려면 혼자서 공부할 수 있는 그 방법을 가르쳐 주는 거야.”
선생님은 주변을 돌아다니면서 심혈을 기울여 좋은 영어참고서를 구했다. 그리고 우리들에게 그 책에 나와 있는 수많은 문장들을 스스로 암기하고 음미하게 했다. 교무실에서 교사들 회의 때 선생은 모순점이 있으면 바로 교장교감 앞에서 직격탄을 날렸다.
“학생 하나하나가 모두 그 누군가의 귀한 자식들입니다. 교사위주가 아니라 그리고 서울대에 몇 명이나 합격 했나 그런 실적위주가 아니라 제대로 된 인간을 만들어 내는 교육을 해야 합니다. 선생들은 학교에서 적당히 수업하고 저녁때 있는 집 아이들 과외를 해서 주머니나 채우는 그런 짓을 하지 맙시다.”
선생은 돈키호테 같이 나서서 다른 교사들의 양심을 쿡쿡 찌르는 발언을 대차게 했었다. 그런 열정적인 선생이었다. 몰래 체육복을 사서 가난해서 그걸 구입하지 못하는 학생의 가방에 몰래 넣어주기도 했다. 대학 입시 무렵이었다. 나는 성적이 모자라 원하는 대학에 입학원서를 넣을 수가 없었다. 그때는 대학이 인생의 전부로 보이던 어린 시절이기도 했다. 어떤 대학에 들어가느냐로 인생의 승부가 이미 나 버린 느낌이었다. 선생은 내게 이렇게 말했다.
“괜찮아, 괜찮아. 인생은 장거리 마라톤이야. 앞에 장애물이 있으면 돌아가는 거야. 꼭 일류가 아니더라도 자기에게 주어진 일을 꾸준히 마지막까지 하면 그게 좋은 인생이야”
그 말에 나는 위로를 얻고 힘을 얻었다. 그 분은 타고난 선생이었다. 십년이 흐르고 이십년이 지나고 어느새 오십년이란 세월이 훌쩍 지났다. 팔십의 노스승은 이따금씩 기억에 남는 제자들에게 전화를 걸어 만나자고 했다. 그 나이에도 꼭 가지고 있는 돈으로 제자들에게 베풀려고 한다.
“삶에서 어떤 때가 기쁘세요?”
내가 물었다.
“반듯하게 된 제자들이 있는 게 기쁨이지. 대통령권한대행을 한 황교안이는 내가 담임을 할 때 반장이었지. 제자중에 총리가 세 명이 나왔는데 모두당당하고 바른 길을 갔다고 생각해. 서울시장을 하는 박원순이도 제자고. 왕규창이도 서울의대 학장을 지냈지. 그래도 잊지들 않고 나한테 얼마나 잘해주는 줄 몰라. 그런 세상에서의 돈이나 직책보다 더 기쁜 건 영혼이 자유롭게 된 제자들이 많다는 거야. 평생 변호사를 하면서 글을 쓰는 자네도 자유인 아닌가? 그 글을 통해 다른 사람들의 영혼을 바꾸어 주려는 것도 보람 있는 훌륭한 일이라고 생각해.”
토요일 오후 팔각정 레스트랑 창을 통해 내려다보이는 인왕산 자락의 푸른 숲으로 안개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노인이 되어 방문하겠다는 50년 전 교실에서의 젊은 선생의 얘기가 불쑥 떠올랐다. 한 사람의 선생님이 밀알이 되어 썩으면 수많은 좋은 제자들이 나오는 것 같다.
엄상익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