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주변의 변호사 친구들을 보면 정말 맹탕인 것 같아. 인생의 굴곡이나 자극이 없이 살아왔어. 그래서 그런지 늙어서도 마작이나 하고 소일을 하는 거야. 내가 기자를 하면서 보면 변호사의 일이라는 게 말이야 정말 선행을 하려면 많은 일을 할 수 있는데 그걸 모르는 것 같아. 늙어서 할 일이 없으면 공짜로라도 그들의 아픔을 공감하고 그걸 변론서에 써서 법원에 내 주면 얼마나 고마워하겠어?”
그의 말이 맞았다. 내가 아는 여성 대법관을 지낸 한 분은 변호사 개업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구청에 가서 법률상담을 해 주고 있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다. 그녀가 대법관출신인 걸 모른 채 민원인들이 평범한 할머니 타입의 그녀를 어떻게 대할까 생각하면 피식 웃음이 나온다. 대법관을 그만둔 뒤 전관을 근거로 돈에 혈안이 되거나 로펌으로 가서 재벌의 머슴이 되는 쪽 보다는 훨씬 향기를 풍기는 인생이다. 선배가 말을 계속했다.
“내가 사회부 기자생활을 할 때를 생각하면 만나는 사람들의 고통을 이해하려고 하는 노력이 부족했어. 사람들의 아픔을 공감하는 것도 단번에 되는 게 아니야. 훈련을 통해 얻어지는 스킬이기도 하지. 노력을 하다보면 정말 남의 고통을 가슴에 공감하면서 아파하는 순간이 다가와 그때 기사를 쓰면 남들과는 다른 촉촉한 게 배어 나오는 거야. 일상생활에서 그 단계가 되면 예수를 따라 성화되는 게 아닐까?”
변호사를 하면서 만난 사람들 대부분은 숨이 막힐 정도로 아픔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나는 그들의 아픔에 과연 얼마나 공감을 했을까. 오히려 그 반대였다. 그들은 물에 빠져 허우적대는 사람처럼 변호사가 다가가면 정신없이 매달렸다.
고통의 검은 물속에서 변호사의 목을 끌어안고 다리를 잡고 늘어지는 것 같았다. 그들의 고민을 함께 하면서 같이 할 것을 요구했다. 그 스트레스들이 고스란히 전해지곤 했다. 내가 곧 쓰러질 것 같은 경우도 많았다. 나는 변호사는 사건을 맡는 것이지 고통을 위임받는 게 아니라고 나의 논리를 만들어 스스로를 지키기도 했다.
내가 잘 아는 착한 변호사는 감옥에 들어간 친구의 변호를 맡았었다. 그 어머니가 매일같이 변호사사무실에 찾아와 고통을 호소했다. 그 스트레스가 여과 없이 변호사에게 전달됐다. 어느 날 변호사가 쓰러져 입원했다. 아픔을 이해하고 공감해 준다고 하더라도 의사같이 적절한 거리가 필요했다. 늙은 변호사가 된 나는 요즈음 변호의 새로운 면을 하나 발견한 것 같다.
아픔을 공감해 주고 그걸 글로 형상화해서 법관에게 전달해 주는 것이다. 일반적 변호는 공허한 관념적인 언어의 나열일 때가 많다. 거기는 종이 씹는 것 같이 아무 맛도 없을 때가 없다. 판례와 법률이론은 판사가 더 잘 알기 때문이다. 그러면 변호사는 무엇을 해야 할까. 당사자의 삶과 아픔을 공감하고 그걸 바늘 끝 같은 섬세한 필치로 묘사하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엄상익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