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도 한 마을로 돌아가 농사를 짓는 사람들의 얘기였다. 노인들만 살던 마을에서 하나씩 둘씩 노인들이 저세상으로 가고 빈집이 되면 도시에서 내려온 사람들이 그 빈집을 찾아 들어가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대부분 도시의 치열한 경쟁이 싫거나 그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사람들 같았다.
그러나 그들이 무심히 던지는 한마디 한 마디 속에 보석같은 진리가 박혀 있었다. 사학과를 졸업하고 대학원에서 논문을 쓰다가 내려왔다는 사십대 쯤의 남자가 나왔다. 햇볕에 색이 바랜 낡은 셔츠와 흙이 묻은 헐렁한 바지에 고무장화를 신고 있었다. 그가 이런 말을 했다.
“시골에 내려와 생활을 하면서 내가 특별한 존재가 아닌 걸 깨달았어요.”
학자가 꿈이었던 그는 많은 걸 내려놓은 얼굴이었다. 사람들은 모두 특별한 존재가 되고 싶어 한다. 관심의 대상이 되고 싶어 한다. 그래서 돈과 권력을 가지려고 한다. 귀촌을 한 또 다른 젊은 부부가 있었다. 남편이 이렇게 말했다.
“회사에 다닐 때 한 달마다 나오는 월급이 마약이었어요. 그걸 받아서 집대출금 갚고 신용카드 빚 갚고 그렇게 한 달한달 살아가는 거예요. 요즈음은 사십대 중반만 되도 퇴직을 하는데 그 다음이 막막했어요. 남들이 하는 치킨집이 될 리도 없고요 그래서 일찍이 농촌으로 내려왔어요. 수입은 적어도 여기 적응해서 살 수 있다면 푸른 하늘에 흘러가는 하얀 구름을 볼 수 있는 행복을 얻을 수 있다는 마음이었죠.”
그는 영혼의 눈을 뜬 것 같았다. 트랙을 도는 경주마는 그곳이 전부라고 생각한다. 그는 사료에 만족한다. 그러나 경주마가 가야 할 곳은 트랙을 벗어난 초원이다. 농부가 된 그의 아내가 말한다.
“정말 생활에 필요한 돈은 얼마 안 되는 것 같아요. 시골로 내려와서는 옷을 사 입어본 적이 없어요. 가족이 밭에 서 수확한 농작물로도 먹고 살아요. 아이들은 학원에 가지 않고 자연을 벗 삼아 마음대로 뛰어 놀아요. 남들과 비교하지 않고 그런대로 자유로운 인생 아닌가요?”
그들 옆에 있던 열다섯 먹은 아들이 이렇게 말한다.
“저는 커서 일을 잘하는 농부가 될 겁니다.”
엄마는 아들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덧붙였다.
“아이가 이해해 주니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요.”
행복해 질 수 있는 길은 욕심그릇을 작게 만드는 일이다. 작아질수록 행복이 넘치기 때문이다.
엄상익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