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에 따르면 노건평 씨의 딸과 사위, 사돈 등은 2005년 6월부터 2006년 1월 사이에 세종증권 주식을 사고팔아 총 6억여 원의 시세차익을 올렸다. 검찰은 노 씨가 세종증권 매각 로비 과정에서 농협 측으로부터 얻은 미공개 정보를 박 회장 측과 주변 인물들에게 흘린 것으로 판단하고 보강 수사를 계속하고 있다.
로비 자금의 사용처도 일부 밝혀졌다. 정대근 전 농협중앙회장이 받은 50억 원은 대부분 남경우 전 대표가 관리한 것으로 드러났다. 남 전 대표는 3억 6000만 원을 자신이 운영하는 금융자문회사 IFK의 부가가치세나 법인세 등으로 냈고 19억 원은 양산시 아파트 사업 지분인수 비용으로 사용했으며 27억 4000만 원은 울산시 아파트 사업부지 매입비 등으로 사용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처럼 검찰은 이번 사건과 관련해 새로운 혐의 사실을 추가로 밝혀내는 등 상당한 성과를 올렸지만 국민적 의혹을 완전히 해소하기에는 미흡한 수사 결과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사정당국 주변에서 끊임없이 나돌았던 ‘박연차·정대근 리스트’와 맞물린 정·관계 로비 의혹, 미공개 정보를 이용한 세종증권 주식거래 의혹, 휴켐스 헐값 매매 의혹 등에 대한 실체는 명백히 규명하지 못해 또 다른 궁금증과 숱한 억측을 양산하고 있다. 특히 박 회장과 정 전 회장이 여야를 망라한 정·관계에 마당발 인맥을 구축하고 있다는 점과 수사로 드러난 비자금 규모 등을 감안하면 ‘리스트’ 실체를 둘러싼 의혹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정치권 주변에선 검찰이 본격적인 정치권 사정을 위한 ‘숨 고르기’ 수순을 밟고 있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는가 하면 야권 일각에선 여권 핵심부와 검찰 수뇌부간의 밀약설도 나돌고 있는 실정이다.
이와 관련해 12월 24일 기자와 만난 사정당국의 한 관계자는 “‘박연차·정대근 리스트’에는 구 정권 실세들뿐만 아니라 현 여권 일부 실세들도 대거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여권 핵심부와 검찰 수뇌부가 ‘리스트’의 파괴력을 감안해 수위조절 등 ‘숨 고르기’에 돌입한 게 아니냐는 의구심을 감출 수 없다”고 전했다.
야권 주변에선 여권과 검찰 간의 밀약설이 나돌고 있다. ‘참여정부 게이트’라는 대형 호재를 여권이 그냥 방치할 리 만무하다는 논리다. 예산안과 법안 정국으로 연말연초 극한 대치 상황을 피할 수 없었던 여권이 검찰과의 은밀한 교감하에 세종증권 사건을 잠시 수면 아래로 잠복시켰다가 신년 정국 주도권 장악 전략으로 활용하려 할 것이란 의혹이 증폭되고 있다. 민주당의 한 중진 의원은 12월 22일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경기침체 장기화 등 총체적 난국에 직면한 여권 핵심부가 2월경에 세종증권 뇌관을 다시 터뜨려 4월 재·보선 정국까지 끌고 가려 한다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고 말했다.
검찰은 “박 회장과 정 전 회장의 정·관계 로비 의혹에 대해 혐의점을 발견하지 못했다”며 리스트 실체를 거듭 부인하면서도 “로비 단서를 찾으면 실체적 진실을 반드시 밝히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어 ‘리스트’ 불씨는 완전히 소멸되지 않은 상황이다. 신년 정국을 뒤흔들 핵뇌관으로 다시 부상할지도 모를 세종증권 사건을 놓고 정치권에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