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미술인 “상식적이지 않다” vs 남원시 “‘김병종’ 브랜드가치 사업이다”
[남원=일요신문] 김택영 기자 = 전북 남원시가 오는 12월 개관할 예정인 ‘남원시립 김병종미술관’의 명칭을 놓고 전북지역 미술계에서 논란이 일고 있다. 지역 미술계는 남원시의 자존심과 정체성을 살려 지어야 할 시립미술관 명칭에 작품을 기증받는다고 해서 개인의 특정 작가의 이름을 붙이는 일은 부적절하다는 입장이다. 반면에 남원시는 ‘남원시립김병종미술관’의 명칭을 변경할 수 없다는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김병종’이라는 브랜드가 있었기에 국가 보조금을 지원받을 수 있었다는 논리를 앞세우면서 반대 의견과는 평행선을 달리고 있는 모양새다.
남원시청 전경
김병종 작가는 남원 송동면 출신으로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최연소 교수로 임용됐으며 주요 보직을 맡고 활발한 작품 활동을 펼쳤다. 남원시는 자연과 생명을 노래하는 화가로 널리 알려진 김 교수가 2013년 자신의 작품 수 백점을 기증하겠다는 뜻에 따라 어현동 함파우유원지 내 2,500㎡ 부지에 국비 14억원 포함 총 35억원을 투입해 미술관을 짓기로 하고 현재 막바지 공사 중이다.
‘김병종’이라는 브랜드를 활용해 외래관광객 유입을 통한 지역경제 활성화와 문화예술진흥, 지역미술인의 상생을 도모한다는 것이 남원시의 구상이다. 시는 미술관은 전시실 3곳 중 제1전시실은 김병종 교수의 기증 작품(그림 400점, 조각 1점, 화집 및 전적류 5,000점)을 위주로 상설 전시할 계획이다.
또 상황에 따라 대규모 기획전시 등 교체전시도 병행해 지역예술인들은 물론 전국의 유명작가들의 작품도 상시 관람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지역민들이 고급 문화예술을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로 했다.
제2전시실은 지역작가들과의 협업을 통한 기획전시실로 심수관 도예작품이나 옻칠공예 등을 활용해 남원미술의 역사적 특징을 재조명하고 현대미술의 트렌드를 보여 줄 국제교류전 같은 수준높은 기획전시실로 활용할 계획이다.
당초 관장실(60㎡)로 계획했던 제3전시실은 다양한 콘텐츠 확보 및 전시를 위해 적합한 전시실로 소형 위주 테마형 전시 및 관람객의 휴식공간 등으로 활용하기로 했다.
하지만 전북 미술인과 남원지역 시민단체 등을 중심으로 ‘미술관이 한 개인의 기념관으로 전락할 우려가 있다’는 반대 입장이 퍼지면서 시립미술관 명칭 재고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남원시립미술관’으로 명명이 타당하다는 게 지역 미술계의 중론이다.
한국미술협회 전라북도지회는 지난 7월27일 ‘남원시립김병종미술관 건립에 따른 전북미협의 성명서’를 통해 “현직에 있는 생존작가의 이름을 작품 기증을 이유로 시립미술관 명칭에 넣는다는 것은 개인미술관을 국민의 혈세로 지어주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비판했다.
그동안 수면 밑에서 비판이 지속돼 왔던 개인의 이름을 넣은 시립미술관 명칭 결정에 대한 부적절함을 전북미술협회가 공식적으로 제기하고 나선 것이다.
전북미협은 나아가 “운영조례를 보면 나중에 개인미술관처럼 운영될 소지가 있다”고 우려하며 “생존 작가의 이름이 들어가는 미술관 명칭은 제고 돼야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전북미협은 “한 개인의 지속적이고 고착화된 미술관보다는 살아있는 지역 작가들의 발표의 장이 더욱 바람직하며, 다양화되고 불특정적인 공간으로 활용되는 것이 옳다”면서 “남원시는 부끄럼 없는 시민의 미술관으로 정립해주길 바라며 ‘남원시립김병종미술관’에서 ‘남원시립미술관’으로 이름을 변경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전북의 시·군 미술협회 9개 지부 중에서 남원지부를 제외한 8개 지부의 대표자들이 ‘명칭에 대한 제고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분명히 하고 있다.
오병기 한국미술협회 전주지부장은 “혈세가 투입돼 지어진 공공건물이기 때문에 개인의 이름이 담겨진다는 것은 공공성에 심각한 훼손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소지가 다분하다”며 “보다 신중한 결정이 필요해 보인다”고 우려했다.
김철수 한국미술협회 순창지부장 또한 “개인의 작품을 기증받았다고 해서 개인의 이름을 명칭에 넣는 것은 결국 영원히 그 사람의 미술관이 되는 것인데, 후세에게 부담이 될 수 있는 만큼 명칭에 대한 부분은 고려할 부분이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동근 한국미술협회 군산지부장은 “이렇게 각 지역에서 작가의 유명세에 기대 공공미술관을 짓는 일들이 계속된다면 전업작가로 열심히 작업에만 매진하는 작가들의 상실감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며 “김병종 교수가 미술인들에게 알려져 있을지 모르지만 일반인이면 더욱 모를텐데 그 이름이 브랜드가 되고 영향력이 있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남원시는 지난 7월 30일 낸 보도자료를 통해 “시는 10년 전부터 김병종 작가를 브랜드로 한 미술관을 생각했고 5년 전부터 사업을 추진해오고 있다”면서 “그 당시와 최근 운영조례가 통과될 때 까지도 아무런 반대 이야기가 없다가 개관을 앞두고 명칭에 대한 논란이 불거지고 있는 것은 이해할 수가 없다. 이미 마무리가 되어가고 있는 시점인 만큼 남원시의 입장은 변함이 없다”고 밝혔다.
개관을 코앞에 두고 명칭을 변경하는 것은 행정의 신뢰성과 일관성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시는 또 ‘부산시립 이우환 갤러리’, ‘제주도립 김창렬 미술관’, ‘무안군립 오승우 미술관’ 등과 함께 ‘안동시립 하종현 미술관’, ‘예산군의 이종상 미술관’ 등 새로 건립중인 미술관를 소개하며 이에 대한 합당성을 주장했다.
그러나 지역 문화계는 남원시가 보도자료에서 예로 든 무안군립 오승우 미술관이나 제주도립 김창열 미술관 같은 경우 이번 시가 추진하는 남원시립 김병종미술관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다고 지적했다.
복수의 지역 문화예술인은 “무안군립 오승우 미술관은 해당 부지를 작가가 제공하였음에도 무안미협의 반대로 미협작가들 전시를 못하고 있다”며, “제주도립 김창열미술관의 경우는 물방울 작가로 세계적인 명성이 자자한 경우라서 상황이 다르다”고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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