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강화위 책임론 속 차기 감독 선임 난항, 축구협회장 직선제 전환도 변수…아시안게임·아시안컵 준비 차질 우려
[일요신문] 다시 한 번 한국 축구가 흔들린다. 4년에 한 번 열리는 축구계 최대 이벤트인 월드컵에서 국가대표팀이 최악의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팀을 이끌던 홍명보 감독은 지휘봉을 내려놨다. 앞서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도 사퇴를 예고했다. 국내 축구 안팎의 혼란에 안정을 찾을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축구계 시간은 쉼 없이 흐르고 있다.
월드컵 일정을 마친 홍명보 감독이 귀국 전 사퇴를 발표했다.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 역시 사퇴를 예고한 바 있어 한국 축구는 중요한 두 자리가 당분간 비게 됐다. 사진=최준필 기자대한축구협회, 국가대표팀은 혼란 속에 흘러왔다. 대표팀의 상처는 4년 전, 2022 카타르 월드컵 직후부터 곪기 시작했다.
월드컵 16강 진출로 성공적이었던 파울루 벤투 감독 체제 이후 축구협회는 후임으로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을 선택했다. 슈퍼스타 출신이지만 감독으로서는 의문 부호가 따라붙는 인물이었다.
대표팀은 감독 선임 과정부터 어긋나기 시작했다. 정몽규 회장 독단에 의해 클린스만 감독이 선택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감독 선임 과정을 진행해야 할 전력강화위원회는 사실상 허수아비 조직이었다.
클린스만 체제는 아시안컵 4강에서 탈락하며 실패했다. 대회 이후에는 선수단 내 불화가 있었다는 폭로가 이어졌다. 대표팀은 큰 상처를 안았다. 아시안컵 직후 6만 4000여 관중이 운집한 국내 A매치에서는 일부 관중들이 '정몽규 나가'라는 구호를 외치기도 했다.
수습 과정은 늦어졌다. 월드컵 예선 과정이 진행 중이었으나 감독 공석 상황이 이어졌다. 황선홍, 김도훈 감독이 임시로 지휘봉을 잡고 각각 두 경기씩을 치렀다. 뒤늦게 축구협회가 내세운 인물은 홍명보 감독이었다.
홍 감독 체제의 시작 역시 불안했다. 선임 과정에서 갖가지 의혹이 뒤따랐다. 전력강화위원이 직접 나서 감독 선임 과정에서의 불합리함을 폭로했다. 작업을 진두지휘하던 위원장이 자리에서 스스로 물러나기도 했다.
수많은 외국인 감독들이 후보로 거론됐으나 최종 선택은 홍명보 감독이었다. 이임생 기술발전위원장의 독단으로 알려졌다. 자연스레 거센 반발이 이어졌다. 적극적으로 프레젠테이션까지 진행한 일부 외국인 감독 후보와 달리 홍 감독은 이 위원장 측의 '간청'을 받고 수락했다.
결국 홍 감독을 포함해 이임생 위원장, 정몽규 축구협회장은 현안질의 참석을 위해 국회에 불려가야 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주관한 축구협회 특정감사에서도 국가대표 감독 선임 절차 위반이 지적됐다.
소란 속에 시작한 홍 감독의 감독 커리어 두 번째 월드컵은 실패로 돌아갔다. 월드컵이 48개국 체제로 확대됐고 조 편성에서 비교적 쉬운 상대를 만났다는 평가 속에 난이도가 과거에 비해 내려갔다. 그럼에도 홍 감독은 12년 전의 실패와 다를 바 없는 결과를 냈다.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은 갖가지 실책으로 국정감사 등에 직접 나서 정치권의 공세를 받아내야 했다. 사진=박은숙 기자혼란은 A대표팀에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대표팀이 임시 감독 체제로 표류하던 시기, U-23 대표팀은 올림픽 본선 티켓을 놓쳤다. 한국 축구가 올림픽에 나서지 못하게 된 것은 1984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이후 40년 만의 일이었다.
이 과정에서 축구협회의 대처가 질타를 받았다. 올림픽 예선이 열리는 시기는 2024년 4월이었다. 이에 앞서 3월 A매치에서 U-23 대표팀 사령탑을 본업으로 맡고 있던 황선홍 감독을 A대표팀 임시 감독으로 앉힌 것이다. 이에 황 감독이 본업에 집중하기 힘들었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이 와중에도 정몽규 회장은 자신의 축구협회장 임기를 늘렸다. 2025년 2월 열린 협회장 선거에서 투표 수 183표 중 156표를 얻는 압도적인 득표율로 4선에 성공했다. 새 얼굴을 희망했던 축구팬들은 절망했다.
하지만 정 회장은 이번 월드컵을 앞두고 사퇴를 선언했다. 지난 5월 29일 성명서를 내며 "자리에서 물러나고자 한다"고 밝혔다. "대표팀이 월드컵 본선에서 성과를 내도록 지원하는 것이 협회장으로서 마지막 소임이라 생각하고 최선을 다하겠다"는 말을 덧붙였으나 그의 재임 중 마지막 월드컵은 실패로 끝났다. 현재 진행 중인 월드컵이 폐막하면 정 회장은 사직서를 제출할 계획이다.
한국 축구는 이전에 보기 힘들었던 혼란을 이어갈 가능성이 높다. 월드컵이라는 대형 이벤트가 끝났지만 축구계 시계는 지속해서 돌아간다. 다가오는 9월과 10월 등 A매치 기간은 이어진다. 2026년 1월에는 아시안컵이 막을 올린다. 축구협회는 매 대회마다 '우승'을 목표로 외친다.
하지만 현재로선 감독 선임 여부조차 불투명한 상황이다. 회장의 사임이 예정된 축구협회가 어떤 대처를 보일지 내다보기 어렵다. 홍명보 감독 선임 논란 이후, 당시 협회는 새로운 전력강화위원회를 꾸렸다. 현영민 위원장 체제에서 이민성 감독(U-23 대표팀), 김은중 감독(U-21 대표팀), 김정수 감독(U-20 대표팀)을 선임했다.
하지만 출범 1년이 막 지난 상황에서 현영민 위원장 체제의 전력강화위원회 또한 불안한 행보를 보인다. 이들의 첫 결과였던 이민성 감독을 향한 불신은 이미 축구계 내외에 팽배하다. U-23 아시안컵과 친선전 등에서 저조한 결과를 내며 리더십이 흔들린다. 결국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결과를 보고 향후 올림픽까지 내다봤던 이민성 감독은 아시안게임까지로 임기가 제한됐다. 올림픽은 김은중 감독이 맡는 것으로 수정됐다.
전력강화위원회의 역할은 감독 선임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각급 대표팀의 '전력강화'를 위해 평소 경기를 리뷰하고 상대 팀을 분석하는 등의 업무를 수행한다. 그럼에도 최근 열린 A대표팀의 친선전에 대한 분석은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또한 대표팀이 월드컵에서 최악의 성적표를 받으면서 전력강화위원회도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게 됐다.
이어지는 불안한 행보에 축구협회의 앞날을 알 수 없게 됐다. 이전과 같은 상황이라면 임기 중 회장 자리에 공석이 생길 경우 2개월 내 보궐 선거를 치러야 한다. 하지만 보궐 선거마저 이 기간에 이뤄질지 확신할 수 없다. 정부와 대한체육회가 축구협회장 선거를 직선제로 바꾸려는 의지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변수는 축구협회의 특수성이다. 대한체육회라는 상위 기관이 있지만 국제축구연맹(FIFA)의 힘도 무시할 수 없다. 한 축구계 관계자는 "'축구와 정치가 분리돼야 한다'는 FIFA의 슬로건이 때때로 대한축구협회의 '방패'가 돼왔다. 실제로 정치권에서 영향력을 행사한 국가의 축구협회가 FIFA로부터 징계를 받는 경우가 있어 조심스럽다"고 말했다. 문체부의 감사 결과, 정몽규 회장을 향해 직접적인 징계가 내려지지 않고 '징계 권고'에 그친 이유 역시 FIFA의 존재감 탓이다.
직선제 실행 여부에 따라 선거 판도가 달라질 수 있어 향후 상황을 예상하기는 더 어려워진다. 현재 축구계에는 근거가 빈약한 추측만이 난무하는 상황이다. '내가 해보겠다'며 도전장을 내미는 인사 또한 나타나지 않고 있다. 거론되는 후보들은 대부분이 제3자의 입에서 오르내리는 인물이다. 축구인과 비축구인으로 분류된다.
정 회장의 사퇴 발표 직후부터 한 기업인이 유력 주자로 떠올랐다. 오랜 기간 축구계 후원을 지속해 온 기업을 맡고 있고 축구인들과의 유대 관계도 있다. 하지만 그는 주변 지인들에게 나서지 않겠다는 뜻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장기간 축구계와 밀접한 관계를 형성한 또 다른 기업의 총수 또한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다. 하지만 일부의 바람이 수면 위로 떠오른 수준일 뿐, 출마 가능성이 높지 않은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한 축구계 인사는 '정몽규 세력'이 향후에도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를 표했다. 그는 "정몽규 회장 체제에서 일을 했던 인물이 선거 출마하고 정 회장이 뒤에서 도울 것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실제 '출마설'이 도는 인물이기에 가능성은 있다고 본다"고 전했다.
축구계 일부에서는 '축구인이 회장 할 때가 됐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축구협회는 1980년대 후반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체제 이래 51대 집행부(2009년~2012년)를 제외하면 기업인이 회장을 맡았다.
그라운드를 떠난 지 비교적 오래되지 않은 40대 연령대의 젊은 축구인 또한 후보로 거론된다. 다만 기성세대 축구인들의 지지가 많지 않고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어 실제 출마로 이어질지는 의문이 뒤따른다.
쓴소리는 쉽고 현장 참여는 어렵나…미디어로 쏠리는 은퇴 축구 스타들
스포츠 스타가 은퇴 후 마이크 앞에 서는 일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해설가, 예능 출연자, 유튜브 진행자 등으로 활동 영역도 넓어졌다. 스포츠 산업과 플랫폼 미디어의 발달은 스타들에게 또 다른 무대를 열어줬다.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레전드들의 모습에 일부에서는 볼멘소리가 나오기도 한다. 사진=연합뉴스잉글랜드의 축구 스타 리오 퍼디난드는 기존 레거시 미디어에서 해설자로 활약하다 직접 콘텐츠 사업에 뛰어들었다. 전·현직 선수들을 초대해 진행하는 방송은 때때로 국내에서도 화제가 된다.
미국 NBA에서는 선수들이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팟캐스트를 진행하는 것이 새삼스럽지 않은 일이 됐다. 현 NBA 최고 스타 르브론 제임스는 은퇴한 레전드 스티브 내시와 공동 진행자로 나선다. 이외에도 은퇴 선수 카멜로 앤서니부터 최근 파이널 우승을 합작한 제일런 브런슨, 조시 하트까지 자신들만의 콘텐츠를 만들어 팬들과 직접 만난다.
이 같은 흐름은 국내 또한 예외가 아니다. 종목을 막론하고 유니폼을 벗은 스타들이 방송계 진출, 유튜브 채널 개설에 나선다. 이 같은 활동으로 팬들은 선수 시절보다 스타를 더 가깝게 느낀다. 플랫폼의 다양화는 더 많은 해설가가 나올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축구계에선 볼멘소리가 나오기도 한다. 주요 이벤트마다 각급 국가대표팀을 향한 강한 비판이 나오면서다. 2026 북중미 월드컵에서 실망스러운 결과를 낳은 이번 대표팀을 향해서도 갖가지 평론이 이어졌다.
축구계 원로들은 '선'을 이야기한다. 한 인사는 "도가 지나치다. 적정한 선에서, 건설적인 비판이 돼야 하는데 선수나 감독을 향해 원색적인 비난을 하는 경우가 있다"면서 "현장과 팬들 사이에서 가교 역할을 잘 해야 하는데 무분별하게 비난을 하니까 팬들이 그 의견에 동조할 수밖에 없다. 한국 축구에 과연 그게 도움이 될지 의문이다"라고 꼬집었다.
다른 축구계 관계자는 미디어 활동에 적극 나서는 이들의 태도에 대한 아쉬움을 말했다. 그는 "현장에서는 일할 사람이 없다는 말이 나온다. 지도자든 행정가든 크게 다르지 않다"면서 "명성 있는 분들이 움직여주면 쉽게 풀릴 수 있는 일들이 있다. 같이 일을 하자고 제안하면 '육아 때문에 어렵다'는 답을 들은 적이 있다. 그동안 축구로 인해 많은 것을 얻은 분들이다. 우리 축구가 위기라고 하는데 그런 분들이 적극 나섰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우리나라가 월드컵에서 실패한 것이 이번이 처음인가. 비슷한 상황은 이전에도 있었다. 지금 쓴소리를 하시는 분들이 그동안 무엇을 하셨는지 묻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최근 몇 년간 일본 축구와 비교가 많이 된다. 좋은 결과가 나오고 있고 그 배경에는 탄탄한 뒷받침도 있다고 본다"면서 "레전드 출신 선수들이 지도자나 행정으로 축구계에 남는 경우가 많다. 이번 월드컵에도 얼마 전까지 유럽에서 뛰던 선수들이 지도자로 합류했다. 일본축구협회장은 2002년 월드컵에 뛰었던 인물이다. 아직 40대 나이다. 선수 은퇴 이후 코치와 감독을 거쳤고 협회에서 일을 이어갔다. 그런데 우리는 지난 협회장 선거 때 어땠나. 1980년대에 뛰던 분들이 나왔다"고 설명했다.
축구협회와 대표팀의 연이은 실책, 월드컵에서의 실패로 이들을 향한 시선은 더욱 싸늘해졌다. 축구계 내부에서도 혼란은 이어진다. 카메라를 앞에 놓고 벌어지는 비판은 어느 때보다 뜨겁지만 현장 안에서 책임을 지려는 이들은 많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흉흉한 분위기 속 표류하는 한국 축구가 결국 어디에 닿게 될지 궁금증을 자아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