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
그동안 검찰이 보강수사를 세 차례나 지시하는 등 6개월이 지났기 때문이다.
복수의 경찰 관계자는 “교통사고 사건을 반년씩 수사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입을 모았다.
통상적으로 교통사고의 경우, CCTV 확보가 용이하기 때문에 증거수집이 쉬워 가장 빨리 처리할 수 있는 사건이라는 게 경찰 측 관계자의 설명이었다.
수사 결과, 이 취객을 잇달아 친 차량 3대 중 사고를 신고한 운전자는 단 1명뿐이었고, 나머지 2명은 사고 후 구호조치도 하지 않고 도주한 것으로 드러났다.
안산상록경찰서는 취객을 마구 폭행하고 도로에 버려 사고로 숨지게 한 혐의(폭행 및 유기치사)로 택시기사 이 아무개 씨(43)를 형사입건해 조사하고 있다고 지난 1월 26일 밝혔다.
또 취객을 처음 차로 친 운전자 노 아무개 씨(50)를 교통사고특례법 위반 혐의로, 취객을 친 뒤 도주한 조 아무개 씨(56)와 정 아무개 씨(51)를 특정범죄가중처벌법(도주차량) 혐의로 당시 각각 형사 입건했다.
이 씨는 지난 1월 21일 오전 4시 55분부터 10여 분간 수인산업도로(42번 국도) 반월육교 인근 도로(편도 4차로)변에서 술에 취한 A 씨(24)를 10여 차례 폭행한 뒤 도로변에 유기한 채 현장을 떠나 뒤이은 교통사고로 A 씨를 숨지게 한 혐의를 받았다.
노 씨는 오전 5시 30분께 A 씨를 차로 치는 사고를 낸 혐의로, 조 씨와 정 씨는 A 씨를 잇따라 친 뒤 도주한 혐의로 각각 입건됐다. 전날 밤 친구들과 안산 중앙동에서 술을 마신 A 씨는 당일 오전 4시 45분께 수원역 인근의 집에 가기 위해 이 씨가 모는 택시에 탔다.
당시 한 언론사가 입수한 사고현장 인근 한 사설 CCTV 영상을 보면, A 씨를 태우고 10여 분 뒤 사고현장에 도착한 택시기사 이 씨는 무슨 이유에선지 도로변에 차를 세우곤 내렸다.
곧이어 뒷좌석에 탄 A 씨의 멱살을 잡고 밖으로 끌어낸 뒤 도로변 한 점포로 A 씨를 끌고 가 CCTV 사각지대에서 폭행했다. 이후 택시에 탔다가 내리길 수차례 되풀이하면서 A 씨를 10여 차례 폭행했다.
A 씨는 이 씨의 거침없는 폭행에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한 채 맞고만 있었고, 이 씨는 팔에 온힘을 실어 A 씨의 뺨을 때리고 휴대전화로 머리를 때리는 등 폭행을 이어갔다.
폭행을 끝낸 택시기사 이 씨가 대로변에 A 씨를 두고 현장을 떠나자 A 씨는 택시를 다시 잡기 위해 도로로 나와 손을 들었다가 내리기를 반복하다가 결국 노 씨의 승용차에 치였다.
사고 장면은 이 사설 CCTV에 찍히지 않았지만, 이후 몇 분간에 걸쳐 잇따라 A 씨를 친 조 씨와 정 씨는 구호조치 없이 현장에서 도주한 것으로 파악됐다. 3차례 차에 치인 A 씨는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끝내 숨졌다.
1차 사고를 낸 노 씨는 스스로 신고했고, 3차 사고를 낸 정 씨는 경찰에 자수했다. 경찰은 뺑소니 행각을 벌인 조 씨를 검거하기 위해 방범용 CCTV 영상에 찍힌 차량 2만 대를 분석했다.
그러던 중 현장 인근에 설치된 사설 CCTV 영상에서 택시기사 이 씨의 폭행 및 유기 사실까지 확인, 사고 발생 이틀 만에 피의자 4명을 모두 특정하고 형사 입건했다.
택시기사 이 씨는 경찰에서 “만취한 A 씨가 택시 안에서 소란을 피우고 택시비가 없다고 해 화가 나서 폭행했다”라고 주장했지만, 경찰은 피해자가 사망한 상태여서 피의자의 일방적인 주장만으론 범행동기를 신뢰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택시 블랙박스를 수거한 경찰은 사고 12시간 이후부터 녹화된 점으로 미뤄, 이 씨가 의도적으로 블랙박스 영상을 지웠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영상 복원을 의뢰했다.
이에 대해 이 씨는 “다음 근무자가 블랙박스 영상을 포맷한 것으로 안다”라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경찰은 “국과수를 통해 A 씨 부검결과와 사고 차량 3대의 감정결과를 전달받는 대로 피의자들에 대한 구속영장 신청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경찰 관계자는 “택시기사 이 씨가 만취한 손님을 대로변에 버리고 간 ‘유기’ 행위는 교통사고로 인한 ‘사망’과 인과관계가 있다고 판단해 유기치사 혐의를 적용했다”며 “조만간 관련 수사자료가 전달되는 대로 구속수사 여부를 판단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A 씨의 한 지인은 “사고 사실이 알려지는 것도 마음이 아프지만, 이런 택시기사가 계속 택시를 몰 수 있게 된다면 또 다른 피해자가 생길까봐 우려돼 언론사에 제보하기로 마음 먹었다”며 “경찰에서 엄정한 수사를 해주길 바란다”라고 전했다.
최근 택시기사 이 씨는 ‘유기치사죄’로 재판에 넘겨졌다.
수원지검 안산지청 형사2부(부장검사 이기선)는 유기치사·폭행 혐의로 택시기사 이 씨를 구속기소했다고 지난 3월 31일 밝혔다. 수사 초기 경찰에 통보된 부검 소견상 직접 사인은 비장 파열로 추정됐으나 정확한 부검 결과는 나오지 않았다.
검찰은 만취한 승객에게 휴대전화를 빼앗아 집으로 돌아갈 방법이 없는 피해자가 택시를 잡기 위해 사고 위험이 큰 도로에 서 있다가 교통사고로 사망한 점 등을 고려하면 취객을 하차시켜 대로변에 버리고 간 유기 행위는 교통사고로 인한 사망과 인과관계가 있다고 판단해 유기치사죄를 적용했다.
이어 “택시기사는 ‘승객의 안전을 책임지는 전문직업인’이라는 전제로 법원이 택시기사의 의무를 적극적으로 인정해 도로변에 승객을 하차시켰다가 사망한 경우 유기치사죄로 택시기사를 처벌한 사례가 많다”며 주의를 당부했다.
검찰은 야간에 택시를 이용하는 승객의 상당수가 취객인 현실에서 국민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택시기사에게 이같이 엄격한 책임을 물을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만취한 승객의 폭력 등으로 정상적인 운행이 어려운 경우에 택시기사는 112신고 등을 통해 승객안전을 확보한 상태에서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당부했다.
이런 상황에서 유기치사죄 적용 여부는 피해자 상태, 범행 장소 상황, 피고인 행동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택시기사의 책임을 물을 수 있다고 검찰은 설명했다.
한편, A 씨를 차로 친 운전자 3명에 대해서는 지난 8월 3일에서야 검찰에 송치됐다.
당시 사고를 낸 차량 3대 중 사고 사실을 신고한 운전자는 처음 A 씨를 친 노 씨 1명밖에 없었고, 2명은 구호조치 없이 현장에서 도주했다.
A 씨의 아버지 김 아무개 씨(54)는 6개월 동안 검찰이 피의자들을 기소하지 않은 것에 대해 분개했다. 김 씨는 “경찰에서는 너무나 명백한 사건이어서 더 이상 수사할 게 없다고 하는데, 검찰에서 수개월째 보강수사 지시만 했다”며 “심지어 검찰로 송치할 때 의견서에 정 씨를 제외한 나머지 피의자들에게 공소권이 없다고 기재됐다”고 주장했다.
검찰 측은 이에 대해 “최대한 명백하게 하기 위해 수사가 미뤄졌다”며 “경찰 측 기소의견만 가지고 영장을 청구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어 “교통사고도 쟁점이 많은 사건이다”며 “객관적인 증거가 없기 때문에 기소가 미뤄진 것“이라고 밝혔다.
송승환 기자 ilyo2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