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2월 26일 한나라당의 법안 단독처리를 저지하기 위해 민주당 의원들이 국회 본회의장을 기습점거했다 . 유장훈 기자 doculove@ilyo.co.kr | ||
연말연초 국회를 파행으로 몰고 갔던 ‘법안 전쟁 1차전’이 마침내 막을 내렸다. 여야는 그간 충돌을 빚어온 이른바 ‘쟁점법안’의 처리를 놓고 일단 합의문을 내놓는 데 ‘성공’했다. 한나라당 홍준표 원내대표, 민주당 원혜영 원내대표, 창조와 한국의 모임 문국현 원내대표 등은 지난 6일 쟁점법안 처리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한나라당이 지난해 말 연내 처리를 예고해 파란을 일으켰던 85개의 법안 가운데 쟁점이 없거나 논의 가능한 58개 법안은 1월 임시 국회에서 협의 처리하기로 합의했다. 결국 주요 쟁점법안들은 2월 임시국회로 처리시기가 늦춰지게 된 것.
하지만 쟁점법안에 대한 각 당의 시각차가 워낙 큰 데다 합의문의 문구를 두고도 여야가 각기 다른 해석을 내놓고 있어 2월 임시국회에서 파행이 다시 되풀이될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대체 어떤 법안들이기에 대화와 타협보다 갈등과 충돌이 빚어지고 있는 걸까. 문제가 되고 있는 주요 쟁점법안들의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봤다. 이번 법안 전쟁에서 가장 큰 논란이 되었던 것 중 하나는 미디어 관련법이다. 이 가운데 언론노조의 파업까지 불러왔던 방송법은 여전히 ‘뜨거운 감자’로 남아 있는 상황. 여야가 관련법의 처리시기를 늦추기로 합의한 이후 파업에 동참했던 기자들의 현장복귀가 이루어졌으나 이번과 같은 사태가 또다시 반복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
문제의 방송법은 ‘방송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말하는 것으로 지난 12월 3일 한나라당 나경원 의원(대표발의) 외에 정병국·진성호·이계진·한선교·손범규·이경재 의원 등 17인이 공동발의한 법률안이다. 이들 의원들은 신문 방송 통신 인터넷 등의 미디어에 대해 △현행법상의 1인 지분 소유 제한 완화 △대기업, 신문·뉴스 통신 및 외국자본의 종합 편성 또는 보도전문편성 콘텐츠 사업에 대한 겸영 또는 주식·지분 소유금지 완화 등의 목적으로 개정 법률안을 발의했다.
논쟁을 부르는 주된 내용을 살펴보면 이렇다. 대기업 또는 신문이나 뉴스통신을 경영하는 자는 ‘지상파 방송사업자의 주식 또는 지분을 소유할 수 없다’는 부분 대신 ‘지상파방송사업자의 주식 또는 지분 총수의 20%를 초과하여 소유할 수 없으며, 종합편성 또는 보도에 관한 전문편성을 행하는 방송채널사용사업자의 주식 또는 지분 총수의 49%를 초과하여 소유할 수 없다’는 수정안을 담고 있다. 사실상 대기업이나 신문 및 통신사의 방송사 소유를 허용하도록 바꾸는 셈이다. 이에 대해 한나라당은 급변하는 미디어환경에 대처하고 방송 진입의 문턱을 낮추는 법안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특히 MBC가 방송법 저지에 강력 대응하고 있는 배경은 이명박 정부가 결국 MBC의 민영화를 방송법 개정의 주된 목적으로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 때문. MBC 노조는 “정부 여당이 4월까지 MBC를 사영화하는 계획을 갖고 있다”며 2월 처리를 목표로 추진 중인 공영방송법안이 MBC를 공영방송에서 제외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고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한나라당 측은 이와 같은 의혹에 대해 “전혀 사실과 다르다”며 부인하고 있으나 방송법 개정에 대한 국민여론은 우호적이지 않다.
민주당 자체 여론조사를 살펴보면 ‘12월 임시국회 주요 쟁점법안 중 국민이 가장 우려하는 법안’으로 방송법이 1위(27.0%)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 인터넷 매체가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BNF리서치에 의뢰해 지난 6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방송법 개정에 대해 ‘적극반대’(33.0%)와 ‘반대하는 편’(28.7%) 등 반대 의견이 61.7%로 압도적으로 높게 나왔다.
방송법과 함께 미디어관련법으로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은 ‘신문법’(신문 등의 자유와 기능보장에 관한 법률)이다.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대목은 ‘신문·방송·뉴스통신 간의 겸영(교차 소유)을 원천적으로 금지하고 있는 것은 매체 간 융합추세 등의 언론환경에 부적합하고 신문 산업 활성화에 장애로 지적되고 있어 겸영(교차 소유) 규제를 완화한다’는 내용. 앞서 방송법개정안에 담겨 있는 신문사의 방송 소유 허용과 일맥상통하는 대목이다.
또한 이 법률안에는 ‘인터넷포털을 언론관계 법률의 규율대상으로 포함한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어 논란을 부추기고 있다. 인터넷포털 역시 언론으로 판단하고 관련 법률 적용대상으로 규정한다는 것이다.
여야는 쟁점법안 처리 합의문에서 ‘방송법을 비롯한 미디어 관련 법안은 빠른 시일 내에 합의 처리하도록 노력한다’고 합의했다. 처리 시기를 2월 임시국회로 ‘못 박지’ 않은 데다 합의문 문구에 대한 여야의 해석이 달라 향후 난항이 예고되고 있다.
주호영 한나라당 원내수석부대표는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끝까지 합의 처리할 것이라면 ‘합의’라는 표현을 썼지 ‘합의 처리를 위해 노력한다’고 쓰지는 않았을 것이다. 노력하다가도 되지 않을 경우가 있기 때문에 합의 노력을 하다가 되지 않을 경우는 국회법의 원리, 의회주의 원리에 따라서 가야 되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니겠느냐”고 밝힌 바 있다. 반면 민주당은 ‘합의처리’라는 부분을 강조하고 있어 미디어관련법 처리를 둘러싼 양측의 마찰은 향후 재연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국회의 파행사태를 불러온 직접적 원인이 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 역시 처리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 비준동의안은 상대국 원산지 상품에 대한 관세를 철폐하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전문가들은 FTA 협상이 관련 업계의 이해가 첨예하게 엇갈리는 만큼 충분한 토론과 의견수렴을 거쳐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하지만 여당인 한나라당의 입장에서는 지난해 촛불정국까지 몰고 갔던 FTA 문제를 조속히 끝내고 싶은 심정. 한나라당은 FTA 비준이 미 정부에 대한 압박이 될 수 있다는 논리와 함께 ‘경제 위기를 극복하고 미국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시급하다’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민주당은 ‘신중론’을 펴고 있고 야권 내부의 의견도 당마다 엇갈리는 상황이다.
한 여론조사에서 한미 FTA 비준동의안에 대해 ‘미국의 진행과정을 보면서 처리해야 한다’는 의견이 50.3%로 ‘가능한 빨리 처리하자’(34.6%)는 의견보다 15.7%p 높게 나타났다. 국민의 정서 역시 한나라당 입장과는 거리가 있는 셈이다.
이밖에 ‘사회개혁 관련 법안’도 논란을 부르는 내용이 다수 포함돼 있다. 특히 한나라당 권경석 의원이 대표발의한 ‘집회및시위에 관한 법’(집시법)은 ‘평화적인 집회 및 시위는 적극 보장’한다는 내용과 함께 ‘집회 및 시위 참가자들의 자가 가면 등 복면도구를 금지’하고 있어 찬반 논란이 뜨거운 상황. 또 경찰이 집회 또는 시위의 주최자에게 통보하고 영상촬영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조항이 신설돼 있다.
반대의견은 이 개정안대로라면 마스크를 착용하는 것만으로도 처벌을 받을 수 있는 데다 경찰의 자의적 해석으로 집회에 대한 통제가 커질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한나라당은 “복면을 쓰고 쇠파이프를 휘두르는 것은 시위가 아니라 테러다. 당당하게 얼굴을 드러내고 평화적으로 의사를 표현해야 한다”는 강경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뿐만 아니라 한나라당은 ‘비영리민간단체지원법’도 개정해 불법폭력집회 및 시위를 주최하거나 참여한 단체에 대해 보조금 지원을 제한하고 환수하는 규정을 신설했다. 신지호 의원이 대표발의한 개정법률안에는 ‘집시법 등을 위반해 벌금형 이상이 확정된 경우 (해당 단체에 대한) 지원을 중단하고 교부받은 지원금을 환수하고 비영리 민간단체의 등록을 말소하도록 한다’는 신설 조항이 담겨 있다. 시민단체들은 MB 정권이 집시법과 함께 비영리민간단체지원법 개정을 통해 집회 및 시위에 대한 통제를 더욱 강화하려는 의도를 지닌 것으로 보고 있다.
이밖에 일명 ‘떼법방지법’으로 불리는 ‘불법집단행위에 관한 집단소송법’도 논란거리다. 한나라당 손범규 의원이 대표발의한 이 법률안에는 ‘불법집단행위에 관한 집단소송을 불법집단행위로 인하여 다수인에게 피해가 발생한 경우 그 피해자 중의 1인 또는 수인이 대표당사자가 되어 수행하는 손해배상청구소송으로 정의함’이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
본래의 ‘집단소송제’는 국가나 대기업의 불법행위를 견제하고 다수의 소액피해자들을 구제하기 위한 제도다. 그러나 이 신설 조항이 비영리 민간단체 등의 집회 및 시위에도 적용될 경우 사회적 약자들의 ‘집회 시위의 자유’를 침해할 우려가 크다는 게 야당 측의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