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총선 승리의 견인차 역할을 했던 뉴타운 공약이 이젠 정몽준 최고위원을 법정에 세우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당초 검찰은 선거법상 허위사실 공표 혐의로 고발된 정 최고위원을 수사했지만 지난해 9월 무혐의 처분을 내리고 불기소 처리했다. 그러나 민주당이 즉각 서울고법에 재정신청을 냈고 최근 법원이 이를 받아들여 사건을 다시 서울중앙지검 공안 1부로 돌려보낸 것이다. 재정신청 인용 자체가 이례적인 데다 재판결과에 따라 100만 원 이상의 벌금형이 확정될 경우 정 최고위원의 의원직 상실은 물론 차기 대선구도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어 정치권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서울고법 형사11부(이기택 부장판사)는 정 최고위원 사건 관련 재정신청을 받아들인 이유에 대해 “오세훈 서울시장은 뉴타운 추가지정에 대해 부동산이 안정화되면 고려할 수 있다는 입장을 일관되게 설명했을 뿐 뉴타운 사업에 명시적, 묵시적으로 동의한 것으로 볼 수 없다”며 “정 의원은 마치 오 시장이 동작·사당 뉴타운 지정에 동의한 것처럼 허위사실을 유포한 점이 인정된다”고 설명했다.
재정신청은 검사가 불기소 처분을 할 경우 고소·고발인이 고등법원에 기소 여부를 결정해 달라고 제기하는 절차다. 법원이 재정신청을 받아들이면 검찰은 무조건 기소해야 한다. 물론 검찰이 다시 무죄 판단을 내릴 수도 있지만 서울고법은 재정신청 인용 사유문에서 정 최고위원의 유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한 것으로 볼 수 있어 향후 재판 결과를 예측하기는 힘들다.
정 최고위원은 이에 대해 “지난해 3월 서울로 지역구를 옮긴 뒤 만난 자리에서 오세훈 서울시장은 ‘뉴타운을 지정하면 집값이 올라 신중하게 추진하겠다’고 했고, 저는 ‘현재 경제 문제의 원인인 미국의 서브프라임 사태는 집값 하락 때문’이라며 ‘뉴타운을 지정하면 집값이 올라간다는 것은 서울에 구매력이 있는 유효수요가 충분하다는 증거이므로 뉴타운을 하는 것이 오히려 경제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명한 적이 있다”면서 “오 시장은 이에 대해 ‘그런 설명은 처음 들었는데 그렇게 볼 수도 있겠다’며 ‘긍정적으로 검토해보겠다’고 답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재판부가 ‘오 시장이 어떠한 동의도 한 사실이 없다’고 판단한 것은 사실과 다르고 향후 재판 과정에서 바로잡아질 것으로 믿는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정 최고위원은 “요즘 국회도 어지러운 와중에 ‘뉴타운’ 문제로 국민 여러분과 지역 주민께 심려를 끼쳐드려 송구스럽다. 법원의 결정을 존중하며 재판에 성실히 임하겠다”고 밝혔다.
정 최고위원은 지난 18대 총선에서 차기 대권 도전의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 위험을 감수하고 자신의 오랜 지역구인 울산 동구 대신 서울 동작 을에 도전한 바 있다. 당시 그에게 승리를 안겨줬던 일등 공약인 뉴타운 공약이 이제 무거운 부메랑이 돼 돌아온 셈이다.
정 최고위원 측은 겉으로는 무혐의 입증을 자신하며 덤덤한 반응을 보이고 있지만 재정신청 인용 자체가 이례적인 일인 데다 예상치 못한 법원의 판단에 내부적으로는 상당히 곤혹스런 눈치다. 한 측근은 “전혀 예상치 못한 결과라 뭐라 할 말이 없다”고 즉답을 피했다. 최근 보폭을 넓히면서 대권준비를 해온 터라 정 최고위원 측이 받아들이는 충격은 더욱 큰 듯하다. 한나라당이 친이(친 이명박 대통령)와 친박(친 박근혜 전 대표) 진영으로 양분된 상황에서 자신의 공간 찾기에 주력해 온 정 최고위원은 당내 강력한 대권주자인 박근혜 전 대표를 의식, 그간 당 소속 의원들과의 접촉면을 늘리면서 스킨십 강화와 당내 연착륙에 공을 들여왔다.
총선 직후부터 정 최고위원이 의원들과 가진 골프회동은 이런저런 에피소드를 낳으며 한때 정치권에 흥밋거리를 제공하기도 했다. 그가 골프를 마치고 소주와 맥주를 섞은 폭탄주를 의원들과 함께 팔을 걸어 러브샷으로 마시며 “안주는 ‘뽀뽀’다”며 팔 등에 ‘입맞춤’을 한 것으로 알려지자 주변에서는 “정몽준이 많이 변했다” “재벌 황태자 이미지를 벗어나기 위해 많이 노력한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특히 정 최고위원은 친이 진영에 대해 남다른 정성을 쏟고 있다는 후문이다. 박 전 대표를 중심으로 똘똘 뭉쳐 있는 친박 쪽보다는 구심력이 옅은 친이 진영에 다가가는 것이 당내에 뿌리를 내리는 데 더 유리하다는 판단 때문이다. 또 주류인 친이 그룹에서 차기 대선주자로 나설 ‘대표선수’를 찾지 못하고 있는 점도 정 최고위원이 친이 쪽에 공을 들이고 있는 이유 중 하나다.
한 측근 의원은 “MJ가 한나라당의 대선후보가 되기 위해서는 박근혜 전 대표와 한판 승부를 벌여야 하는데 결국 기댈 곳은 친이 아니겠느냐. MJ가 살길은 친이와의 ‘빅딜’ 뿐이다”면서 “MJ도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 최고위원이 지난해 10월 미국 워싱턴에 머물고 있는 이재오 전 의원과 만난 것도 이런 맥락이다. 당시 정 최고위원은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 위원 자격으로 미국대사관 국정감사를 위해 미국을 방문, 이 전 의원과 저녁을 함께 했다. 정 최고위원 측은 “정치적 얘기는 없었다”고 했지만 정계복귀와 주류 핵심 진입을 노리고 있는 이 전 의원과의 만남이라는 점에서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정 최고위원은 주류 내 비주류로 전락한 이재오계를 향해 “언젠간 함께 일하고 싶다”는 메시지를 꾸준히 보내고 있는 것으로도 알려졌다. 이재오계도 정 최고위원에 대해 우호적인 관심을 가지고 있다. 이재오계의 한 의원은 “정 최고위원도 한나라당의 정치적 자산 아니냐. 우리와 함께 못할 이유는 없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한편 정 최고위원은 어눌한 말투와 좌충우돌식의 어법도 전여옥 의원의 조언으로 많이 다듬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오랜 기간 무소속으로 머물며 공식적인 정치 무대에서의 발언 기회가 적었던 그에게 주마다 3~4회 열리는 한나라당 최고위원회의는 그의 정치적 식견을 보여줄 수 있는 좋은 기회다. 하지만 그가 효과적인 주제 전달을 못하고 있다고 본 전 의원이 ‘메시지 관리’를 해줌으로써 정 최고위원의 발언도 이전보다 세련되고 명확해졌다는 후문이다.
최근 당내 친이 일부 강경파들이 민주당과의 법안처리 협상을 실패했다며 반발, 계파갈등의 양상을 보이자 정 최고위원은 지난 8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두나라당’ ‘웰빙정당’의 근본체계를 바꿔야 한다”거나 “우리 당도 민주당 의원들처럼 사퇴를 불사한다는 결연한 각오로 임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도 메시지 전달에 공을 들이는 것을 보여준 사례였다.
이밖에도 정 최고위원은 최근 자신의 ‘싱크탱크’격인 아산정책연구원을 확대 강화하고, 별도로 정책 분석·평가·개발하는 기능을 수행하는 정책연구소 설립 등을 고려하며 대권 예비주자로서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아산정책연구원은 정 최고위원이 ‘정치적 스승’으로 모시는 한승주 전 외무장관이 맡아 운영 중이다.
이처럼 기축년을 맞아 야심차게 진행되던 정 최고위원의 대권 프로젝트가 법원의 재정신청 인용으로 암초를 만난 격이다.
이정기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