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한나라당 일각에서는 김형오 의장이 이번에 민주당과 친박그룹 ‘주화론자’의 손을 들어준 것과 관련해 그가 친이그룹에서 친박그룹으로 ‘월박’을 한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을 제기하고 있다. 사실 김 의장은 올해 원 구성 때 국회의장 자리를 놓고 친이 직계인 안상수 의원과 치열한 물밑 경쟁을 벌였다. 하지만 막판에 이상득 의원과 이명박 대통령의 신임 아래 국회의장직에 올랐다. 친이세력에 보은을 해야만 하는 그로서는 이번 입법 전쟁에서 좋은 기회를 맞았다. 하지만 그는 끝내 의사봉을 휘두르지 않아 친이세력으로부터 ‘배신자’ 소리를 들어야 했다.
그리고 그가 오히려 입법 전쟁 과정에서 친박세력 수장인 김무성 의원과 잦은 만남을 가진 것을 두고 ‘김 의장이 이번에는 친박으로 말을 갈아타려고 하는 것 아닌가’라는 의혹을 친이세력으로부터 받고 있다. 친이 그룹의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김 의장은 노태우 정권 때 청와대 정무비서관을 했는데 당시 유력한 대권 후보였던 김영삼 민자당 총재와도 좋은 관계를 유지해 정권이 바뀐 뒤 김 총재와의 인연으로 부산 영도에서 14대 국회의원(1992년)으로 정치권에 처음 입문했다. 이것은 김 의장의 타고난 정치력 덕분이겠지만 이명박 대통령과 가까운 그가 나중에 말을 다시 한 번 갈아타 박근혜 전 대표를 위해서도 일을 할지 누가 알겠느냐”라고 말했다.
정치권에선 김 의장을 두고 ‘화합의 정치력’을 가진 사람으로 평가한다. 하지만 그를 비판하는 측에서는 “그의 ‘무색무취’ 스타일은 계파들 사이에서 절묘한 줄타기를 한 흔적”이라고 낮게 평가한다.
한편 김 의장 측은 이번 입법 전쟁을 거치면서 친이세력으로부터 ‘배신자’ 공격을 받는 것에 대해 몹시 서운해 하고 있다. 그가 “여야의 협상 매개가 사라진 상황에서 내가 극한 대결을 막지 못했다면 누가 과연 막힌 정국을 뚫을 수 있었겠는가”라고 반문하는 것도 설득력이 있다는 게 정가의 평가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