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에 붙은 작은 메뉴판에는 그날 시장에서 사온 신선한 식자재로 만든 단품 하나가 적혀 있었다.‘청국장’,‘오징어 볶음’,‘돼지 불고기’‘서대구이’등이 매일 한가지씩 돌아가면서 제공됐다. 그걸 선택하면 풍성하고 맛있는 한 끼 식사가 해결됐다.
서너 개의 탁자가 놓인 미니 식당이지만 손님들이 밥을 먹을 때면 육십대 말쯤의 주인여자는 감사를 담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손님들의 입맛을 관찰했다. 입소문을 타고 손님들이 몰려 줄을 서서 기다렸다. 손님이 넘치는 데도 일요일이면 문을 열지 않았다. 예배를 드려야 하기 때문에 영업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신앙심까지 깊은 여자 같았다.
어느 날인가 밥집여자는 인근의 넓은 고급 식당자리를 빌려 음식점을 확장해서 개업했다. 개업하는 날 그동안 맛있게 밥을 먹었던 손님들의 축하화환이 문 앞에 줄을 지어 서 있었다. 손님들이 넓은 홀에 꽉 차서 웅성거렸다. 처음 온 듯한 손님 한 사람이 종업원에게 물어보는 소리가 들렸다.
“이 집이 밥과 반찬을 맛있게 한다는 소문이 나서 와 봤어요.”
시간이 흘렀다. 사무실근처의 단골 지압사한테 갔을 때였다. 지압사가 허리를 누르면서 내게 이렇게 말했다.
“제가 지압을 하면서 힘을 쓰니까 이 동네에서 맛있는 데를 다 찾아다니죠. 그런데 그 밥집 아주머니가 가게를 확장하고부터는 음식 맛이 확 달라졌어요. 식자재를 싼 걸 사니까 당연해요. 제가 혀가 예민해서 김치찌개 하나라도 이게 얼마짜리인가 당장 감별할 수 있어요. 종업원을 시켜 음식을 만드니까 맛도 없어진 게 사실이구요. 가게가 확장된 후 부터는 제가 가도 지압사라고 무시하는지 구석에 앉히고 시큰둥한 거예요. 그런 대접받고 갈 필요가 뭐 있겠어요? 그래서 다른 식당에 갔다 나오다가 그 아주머니한테 걸렸어요. 내가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했더니 얼굴을 확 돌려버리더라구요. 얼마나 무안했는지 몰라요. 그 아주머니가 점심시간만 되면 동네 식당을 돈다는 거예요. 다른 식당에 자기 단골이 있으면 견디지를 못한다는 겁니다.”
며칠 후 해가 어스름해지는 저녁 무렵이었다. 친구 몇 명과 그 식당으로 갔다. 주인은 없고 종업원이 주문을 받으러 왔다. 미소가 없는 뚱한 표정이었다.
“알탕하고 밥을 주세요.”
내가 주문했다.
“저녁에는 술과 안주감을 시켜야 하는 데요”
“우린 술을 먹으러 온 게 아니라 밥을 먹으러 왔는데?”
종업원이 떨떠름한 얼굴이 되어 다시 말했다.
“그래도 저녁에는 술안주감을 시키셔야 하는데요.”
순간 불쾌감이 피어올랐다. 돈독이 오른 것 같았다. 주인이 작은 탁자사이를 미소 짓고 다니던 얼마 전의 작은 밥집이 아니었다. 이제는 일요일에도 본격적으로 영업을 한다고 했다. 나는 그 음식점에 발길을 끊었다. 어느 날 길거리에서 우연히 그 밥집 여자와 마주쳤다.
“변호사님 요새 왜 우리 밥집에 안 오세요?”
밥집 주인여자가 가짜미소를 지으면서 물었다.
“예, 뭐, 그냥”
나는 어물거렸다. 그 얼마 후 가을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토요일 저녁 무렵이었다. 오랜만에 그 식당으로 갔다. 식당 입구 쪽에 주인여자가 서 있었다. 그의 얼굴을 보는 순간 섬뜩한 느낌이었다. 그 여자가 기분 나쁜 듯 퉁명한 목소리로 내뱉었다.
“우리 밥 안 팔아요.”
이튿날 그 식당 앞을 지나갈 때문에 작은 안내쪽지가 달려있는 걸 봤다. 거기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그동안 찾아주신 손님들에게 감사드립니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휴업합니다.’
그 개인적 사정이란 욕심과 독점욕 아니었을까. 작은 밥집에서 환한 미소로 계속 살았으면 그녀는 행복하지 않았을까. 세상의 모든 사람이 자기가 행복할 수 있는 배역이 있는데 말이다.
엄상익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