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몸을 피해 있으려니까 공안당국에서 고향을 온통 쑥대밭으로 만들어 놨더라구요. 고향사람들에게 나에게 빨갱이새끼라고 모함을 해 놔서 어디 발붙일 데가 없더라구요.”
감옥 안에도 또 다른 지옥이 있었던 것 같다. 그가 말을 계속했다.
“감옥에 가니까 처음에 나를 주눅 들게 하려고 잡범들 방에 넣더라구요. 별별 놈이 다 있어요. 마루 쪽을 뜯어 날카롭게 해서 자기 몸을 막 찔러 자해하는 놈도 있고 어떤 놈은 칫솔대를 뾰족하게 간 걸 내게 들이밀면서 내 성기를 보자는 거예요. 싫다고 피해도 강제로 덤벼들더라구요. 한번은 자는데 장기수인 놈이 뒤에서 씩씩거리면서 들이 미는 거예요. 깜짝 놀라서 일어나 나도 덤벼들었죠. 그 다음은 빛이 없는 먹방에서 징벌을 받기도 했어요.”
정치범으로 복역을 했지만 그는 온유한 성격이었다. 징역을 사는 동안 교도관들에게 영어와 일어를 가르쳤다. 나는 그의 다음 말을 조용히 기다렸다.
“만기출소할 때가 되니까 저를 군대 보내서 전방 골짜기로 보낸다고 하더라구요. 그 때 발이 퉁퉁 부어서 걸을 수도 없었어요. 그때 우연히 박정희 대통령이 죽었어요. 그러니까 더 이상 군대 가라는 조치가 없더라구요. 사회에 나와도 취직할 곳이 없었어요. 그래서 비슷한 처지의 친구들과 출판사를 했죠.”
그는 비정규직으로 외신기자 일을 잠시 하다가 그 무렵 새로 창간한 일간지의 기자가 됐다. 그는 정치부 기자로 한 단계 한 단계 올라갔다. 그는 북한 취재를 다녀와서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곳은 이미 사회주의와는 한참 멀리 가 있다는 것이다. 수많은 야당 출입기자들이 김영삼 총재 앞에 무릎을 꿇을 때였다.
어떤 면을 봤는지 그는 공개적으로 김영삼은 절대로 대통령이 되면 나라가 망한다고 예언했다. 김영삼 대통령은 “니 마음대로 써”라고 하며 그를 노골적으로 공격하기도 했다. 어느 날 그가 절망의 구렁텅이로 빠졌다. 양쪽 신장이 기능을 잃어 죽음직전까지 갔다. 그는 하루 종일 어둠침침한 방에 혼자 앉아 있었다. 시력까지 나빠졌다. 그는 찾아간 내게 활자를 보지 못하는 하루가 왜 그렇게 긴 지 모르겠다고 호소했다.
그는 이미 사회적으로 죽은 상태였다. 생리적 죽음까지 남은 시간을 기다리는 존재라고 할까. 그를 보면서 그의 정치적 투쟁과 삶이 무슨 의미였을까 회의가 일었다. 그는 죽지 않았다. 동생이 주는 한쪽 신장을 받고 살아났다. 그는 다시 신문사로 나갔다. 그는 주필까지 올라가 세상을 향해 바른 글을 써댔다. 그가 주필인 신문은 좌파성향의 대변지였다. 그는 내게 좌파 쪽에 워낙 단체도 많고 종파도 나뉘기 때문에 골치가 아프다고 호소했다.
그는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이어야 한다고 했다. 동시에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복지를 잊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아프리카의 빈곤을 동정한다면 굶는 북한주민들에 대해서도 배려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어떤 주의보다는 인간위주로 세상은 나아가야 한다고 했다. 그는 좌파라는 인물들이 쓰고 있는 탈고 내면의 권력욕을 지적했다. 내가 대한변협 이사로 있을 때 그를 초청해 강연하게 했었다. 어느 날 그는 신문사 주필자리를 훌훌 털고 나왔다. 사무실로 놀러온 그에게 물었다.
“요즈음 어떻게 먹고 살아?”
“국민연금이 백이십 만원 쯤 나와요. 집사람도 얼마쯤 나오고 거기다 한 달에 원고료 오십 만원쯤 들어오고 그걸로 죽을 때까지 그럭저럭 살 것 같아요.”
“요즈음은 어떤 걸 공부해?”
그의 큰 머리통 속에는 엄청난 지식이 입력되어 있었다.
“세계 전쟁사를 읽었는데 재미있는 게 많아요. 1937년에 이미 일본이 미국과 태평양을 가운데 놓고 패권다툼을 하고 있었어요. 일본의 군사력도 막강했죠. 일본은 미국을 견제하기 위해 영일동맹을 맺고 국제적으로 동남아시아의 패권을 인정받았어요. 일본이 만주와 중국을 칠 때 영국이 뒤에서 여러모로 카바를 해 줬어요. 미국은 그런 영일동맹을 깨 버리려고 외교적으로 노력했어요.”
얼핏 일제시대 시사 잡지에서 보았던 국제관계의 토론기사내용이 떠올랐다. 일본이 만주를 침략했을 대 국제적으로 여론이 들끓었다. 미국이 그걸 그냥 보고 있을까 아니면 전쟁이 일어날까가 그 당시 초미의 관심사였다. 그때 미국은 침묵했다.
“일본이 다시 중국을 쳐 들어가 점령할 때 미국은 왜 또 가만히 있었지?”
내가 물어보았다.
“미국의 루즈벨트는 대통령선거공약에서 외국과의 전쟁은 하지 않겠다고 했어. 그게 미국의 대외정책이었기 때문이지. 그 무렵 사실상 희생을 치르면서 히틀러와 일본과 싸운 건 러시아야. 그런데 그 것에 대해 우리는 잘 모르고 있었어요.”
“그게 어떤 건데?”
“당시 히틀러는 슬라브족인 러시아를 식민지로 하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어. 유럽의 나라들은 다른 대륙에 식민지를 만들어도 같은 유럽국가에 대해서는 그런 생각이 없었는데 히틀러는 슬라브 족을 천하게 본 거야. 독일군이 모스크바를 포위하고 공격할 때 스탈린은 절대 후퇴하지 말자고 하면서 버텼어. 그때 러시아가 당한 게 실상이 발표되지 않아서 그렇지 참담한 것 같더라구. 러시아인 서너명이 독일군 한명 죽이고 죽자는 각오로 싸워 모스크바를 지켰지. 스탈린이 그런 지도자인 면이 있더라구요. 희생자 수가 비밀이라서 그렇지 수천만명이라는 추정도 있어요. 그때 전쟁영웅이 슈코프 장군이라는 인물이야.”
“슈코프가 누군데?”
“일본군과 대치하던 몽고 에서 전투를 지휘하던 러시아 장군인데 몽고전투에서 일본의 관동군을 꺽었지. 관동군이 북으로 가지 못하고 남으로 방향을 돌리게 된 건 노몽한 전투에서 슈코프에게 지고 겁을 먹었기 때문이더구만. 슈코프는 그 다음에 유럽전선에 가서 독일군과의 전투를 지휘했지. 전쟁이 끝난 후 스탈린이 다른 정적을 다 숙청했어도 슈코프는 그렇게 하지 못했죠.”
오늘도 그에게 역사에 대한 지식 한 토막을 전해 들었다. 이제 우리사회가 문화적으로 한발 더 전진하려면 후배 같은 인재의 경험과 지식이 세상을 위해 써졌으면 좋겠다.
엄상익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