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통령 취임 이틀 전 사퇴한 한화갑 전 민주당 대표. | ||
한 대표가 사퇴함으로써 노무현 대통령 당선 이후 신주류를 중심으로 두 달여를 끌어온 민주당 개혁은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게 됐다.
한때 신주류를 가리켜 ‘개혁독재’라고 비판하며 ‘제 자리 찾기’에 나섰던 한 대표가 전격 사퇴를 결심하게 된 배경은 무엇이었을까.
일단 한 대표는 사퇴 기자회견에서 “새롭게 등장하는 역사의 주역들에게 당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주고자 한다”고 공식적인 사퇴 이유를 밝혔다.
실제 노무현 대통령 당선 이후 신주류로부터 사퇴압력을 받아온 한 대표는 2월 초 노 대통령의 정치고문인 김원기 당개혁특위 위원장에게 대통령 취임식 이전에 물러나겠다는 뜻을 전한 바 있다.
‘취임전 사퇴’라는 자신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대표직에서 사퇴했다는 한 대표측의 설명이 설득력을 얻는 대목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한화갑 대표의 전격적인 사퇴 배경을 노무현 대통령 취임 이후 진행된 정치 일정과 맞물려 해석하는 인사가 적지 않다.
지난달 25일 국회에서 통과된 ‘대북송금 특검법안’과 26일 통과된 ‘고건 총리 인준’이 그것이다.
한 대표는 대표직 사퇴 이전, 야당이 주장해 온 ‘대북송금 특검법안’ 저지를 위해 다각도로 노력해 왔다.
대표직 사퇴 기자회견에서도 한 대표는 한나라당에 대해 “과거의 걸림돌 때문에 국가의 이익이 훼손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될 것”이라며 대북 송금문제에 대한 협조를 촉구했다. 그간 한 대표의 대표직 사퇴를 만류해온 측도 대부분 동교동계 출신 인사들이었다.
▲ 권노갑 전 고문 | ||
즉 대표직을 유지한 상태에서 ‘특검법 통과’를 저지하지 못할 경우, 동교동으로부터는 ‘DJ를 보호하지 못했다’는 비난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았고, ‘특검 법안 저지에 매달리다 고건 총리 인준’이 불투명해질 경우에는 신주류로부터 더욱 거센 사퇴압력에 직면할 상황에 놓여 있었던 것이다.
결국 ‘특검법’ 국회 통과가 유력시된 상황에서 한화갑 대표가 대표직 사퇴를 결행함으로써, 동교동과 신주류 양측으로부터 쏟아질 비난의 화살을 피해갔다는 분석이다.
한 대표 사퇴와 관련, 또 다른 해석으로 권노갑 전 고문의 정치활동 재개에서 그 이유를 찾는 인사도 적지 않다.
권노갑 전 고문은 2월 중순 각종 언론 인터뷰를 통해 2004년 총선 출마를 시사하며 사실상 ‘정치 재개’를 선언했다.
당내 신주류로부터 이미 사퇴압력을 받고 있던 한화갑 대표는 권 전 고문의 ‘등장’으로 적지 않은 부담을 느꼈다고 한다. 신주류로부터 구태 정치의 표본으로 권노갑, 한화갑 두 사람이 싸잡아 공격받을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었다.
한화갑 대표는 권노갑 전 고문으로 대표되는 동교동 구파를 대체할 ‘동교동 신주류’ 대표주자로 지난해 국민경선을 통해 당권을 잡았다.
그러나 노무현 정권 탄생 이후 새롭게 부상한 신주류측으로부터 ‘구주류’로 내몰렸다. 이러한 상황에서 권 전 고문과 같은 ‘반열’에 몰려, 사퇴압력을 받을 경우 재기가 불가능할 수도 있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즉, 권 전 고문이 정치 전면에 나서려는 상황에 한 대표 자신이 대표직을 고수할 경우, 자칫 ‘패키지’로 묶여 ‘구 정치인’으로 내몰릴 가능성이 높아졌던 것.
권노갑 전 고문에 비해 상대적으로 참신성을 유지해온 한 대표로서는 권 전 고문과 패키지로 묶이기 이전에 조기에 대표직에서 물러나는 것이 향후 정치 재개를 위해 더 낫다는 판단을 했다는 분석이다.
이밖에도 정가에선 ‘사퇴’를 거부하고 있는 한화갑 대표에게 신주류측 한 인사가 ‘의혹 자료’를 들이대며 ‘협박’했다는 설도 나돌았다.
그러나 한 대표의 최측근 인사는 “협박당한 사실도, 당할 이유도 없다”며 “오히려 우리가 ‘자료’를 갖고 있으면 있었지”라고 ‘협박설’ 자체를 부인했다.
한 대표는 곧 미국으로 여행을 떠나 상당 기간 머물게 될 것으로 알려졌다. 대선에서 패배한 야당 후보와 승리한 여당 전 대표의 묘한 해외 조우가 이루어질지도 관심거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