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대중 생가 전남 신안(위), 김영삼 생가 경남 거제(가운데), 박정희 생가 경북 구미(아래) | ||
대통령을 배출한 ‘생가’는 역사적 의미도 없지 않고 관광자원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퇴임 후 대통령에 대한 평가에 따라 그들의 생가도 명암을 달리한다. 역대 대통령들의 생가 중에는 대대적인 공사와 보수로 거듭난 곳이 있는가 하면 흉가처럼 방치되고 있는 곳도 있다. 과연 역대 대통령들의 생가는 우리 국민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 ‘대통령들’의 생가에 얽힌 다양한 뒷이야기와 함께 그 현주소를 짚어봤다.
역대 대통령의 생가 중 아직까지도 많은 방문객을 불러 모으고 있는 곳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생가다. 이는 유력 정치인인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영향 때문이기도 하지만 최근엔 박 전 대통령의 ‘새마을운동’을 배우기 위해 아시아권 일대의 국가에서 방문객이 잇따르고 있다고 한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생가는 경북 구미시 상모동 171번지에 있다. 이곳은 박 전 대통령이 1937년 대구사범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20여 년간 살았던 집으로 대구사범학교 시절 쓰던 책상과 책꽂이 등이 전시돼 있다. 집은 그다지 크지 않은데 58㎡(약 18평)의 초가집과 114㎡(약 34평)의 안채로 이루어져 있다. 1993년 2월에 경북도기념물 86호로 지정됐다.
10·26 직후인 1979년 이 집에 분향소가 설치되면서 사람들이 많이 찾기 시작했는데 요즘에도 연 48만 명 가까운 이들이 다녀간다고 한다. 이 분향소는 현재 ‘추모관’으로 이름이 바뀐 상태. 유족이 구미시청에 기부채납을 한 이후 시청 직원 두 명이 상주하며 관리하고 있다고 한다. 구미시청 관계자는 “요즘엔 인도네시아, 필리핀, 인도, 중국 등 아시아권 나라의 정부 공무원들이 새마을운동을 배우기 위해 많이 다녀간다”고 전했다. 박 전 대통령의 생가는 역대 대통령의 생가 중 가장 관리가 잘 되고 있는 편이다. 또 박근혜 전 대표 및 TK 지역 정치인들이 중요 선거가 있을 때마다 이곳을 찾는 등 ‘정치적 상징성’도 큰 장소다.
지난해 3월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보존회 김재학 회장 피살 사건으로 이곳이 세간의 관심을 모으기도 했는데 이 사건은 피의자의 뚜렷한 범행동기를 찾지 못한 채 여전히 ‘우발적 단독범행’으로 남아 있다. 김 회장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고향 후배로 1987년부터 아무런 보수 없이 생가 관리를 도맡아 해왔었다. 김 회장의 사망 이후에는 구미시에서 전적으로 관리하고 있는 상황. 장조카인 박재홍 씨가 갖고 있던 생가의 소유권은 1996년 박정희대통령생가보존회로 이전되었다가 2003년 2월 구미시로 넘어왔다. 구미시는 최근 생가 주변에 7만 7620㎡(약 2만 3480평) 규모의 추모관과 ‘박정희대통령 기념공원’을 건립한다는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노벨평화상’ 수상의 명성과 정치적 영향력으로 인해 김대중 전 대통령의 생가도 관리가 잘 되고 있는 편이다. 김 전 대통령의 생가가 위치한 곳은 전남 신안군 하의면 후광리 100번지. 전남 목포에서 뱃길로 두 시간 거리에 있는 하의도의 북동쪽 끝인 후광마을 중에서도 끝집으로 김 전 대통령의 아호인 ‘후광’(後廣)은 이 마을에서 따온 것이다.
김 전 대통령은 175㎡(약 53평) 규모의 이 집에서 초등학교 4학년 1학기까지 살다가 중학교 진학을 위해 목포로 나갔다. 김 전 대통령 생가는 1999년 대대적인 보수작업을 거쳤는데 당시 김해 김 씨 종친회에서 8000만 원의 성금을 모으고 대구노인복지대학노인회에서 120만 원을 모금해 보내기도 했다. 생가 복원 후 2000년 1월 신안군에 기증돼 군에서 관리하고 있다.
이곳은 2002년 12월 방화 사건으로 또 한 번 복원을 거치는 수난을 겪기도 했다. 하지만 현재 전남도와 신안군은 김 전 대통령의 생가 일대에 노벨평화상 기념관과 전망대 등을 조성, 세계평화공원을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는 숙명의 라이벌이었던 김영삼 전 대통령의 고향은 경남 거제시 장목면 외포리 대계마을이다. 김 전 대통령은 이곳에서 열세 살까지 살았는데 바닷가 마을인 이곳에서 살던 어린 시절부터 대통령의 꿈을 키웠다고 한다.
현재 김 전 대통령의 생가(경남 거제시 장목면 외포리 1383-3번지)는 거제시에서 관리를 맡고 있다. 김 전 대통령의 부친 김홍조 옹이 생전인 지난 2000년 10월 거제시에 기증해 소유권이 넘어간 상태. 거제시청 관광과 관계자는 “관리인 두 명이 상시 근무를 하고 있고 관람객도 늘어나는 추세”라고 전했다. 이곳에는 김 전 대통령의 학창시절 성적표와 사진, 쓰던 물건 등이 전시돼 있다. 거제시청 관계자는 “가족들도 수시로 방문하고, 와서 주무시고 가는 경우도 많다”고 설명했다.
▲ 전두환 생가 경남 합천(위), 노태우 생가 대구(아래) | ||
전 전 대통령의 생가는 5공 당시인 1983년 전면적으로 보수됐는데 당시 전투경찰이 배치돼 경비를 맡았다. 그러나 이곳도 1988년 11월 방화사건으로 소실됐다가 복구되는 수난을 겪은 바 있다. 6명의 대학생들이 전투경찰을 밀어내고 화염병을 던져 생가 건물을 불태웠던 것.
합천군청 관계자는 전 전 대통령 생가에 대해 “관리인은 따로 없고 가끔 군청 직원이 들러 풀을 베는 정도의 관리만을 하고 있다”며 “이따금 방문하고 싶다는 문의전화가 오면 문을 열어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의 생가(대구광역시 동구 신용동 596번지) 역시 계속해서 고초를 겪고 있다. 지난해 11월 대구 동구청과 교하 노 씨 종중에서 거액을 들여 생가보존사업 및 관광단지화 사업을 추진하려 하자 대구지역 시민단체들이 “비자금 조성으로 역사적 심판을 받은 전직 대통령의 생가를 지역 출신이라는 이유로 공공기관이 관리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며 강력 반발하고 나섰다. 대구동구청 문화공보실 관계자는 “2007년 동구의회에서 노 전 대통령 생가 보존사업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냈고 종중이 기부채납의사를 밝혔지만 이후 진행된 내용이 없다”며 “사실상 방치되어 있고 근처에 사는 조카가 가끔 들러 청소만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윤보선 전 대통령의 생가는 충남 아산군 둔포면 신항리 143번지. 이 집은 1907년에 선친인 윤치소 씨가 지은 것으로 1984년 12월 24일 중요민속자료 제 196호로 지정됐다. 이곳의 구조에 대해 풍수 전문가들은 좋은 방위 조건을 모두 갖춘 ‘양택지’라고 평한다.
윤 전 대통령은 이 집에서 태어나 10세까지 살다가 서울 종로구 안국동 8번지로 옮겨갔는데 현재는 유가족들이 머물고 있다. 이곳 역시 서울시 민속사료 제27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 집은 대지가 4664㎡(약 1411평), 건평 826㎡(약 250평)에 이르는 큰 규모로 1800년대에 지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당시 주택 규모가 너무 커서 고종 황제의 눈총을 받았다고 한다. 이 집은 이후 개화론자인 박영효가 살았던 것으로도 유명하다.
한편 생가는 아니지만 초대 이승만 대통령이 머물렀던 사저 ‘이화장’은 역사적 의미가 깊은 곳이다. 황해도 평산이 고향인 초대 이승만 대통령은 미국에서 오래 생활하다가 해방 후 서울에 돌아온 뒤에는 종로구 이화동 1-2번지에 위치한 ‘이화장’에서 거주했다. 이곳은 서울시기념물 제6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대지 1332㎡(약 400평)에 이르는 규모. 본 건물은 ㄷ자 형태의 한옥으로 조각당과 유족들이 생활하는 건물 등 총 세 채로 이루어져 있다. 조각당은 그 이름대로 1948년 8월 우리나라 초대 내각이 조직된 역사적인 의미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 집은 이승만 전 대통령과 프란체스카 여사가 공동 소유하다가 1965년 7월 양아들인 이인수 씨 등에게 상속됐다. 프란체스카 여사는 1960년 4·19혁명 이후 하와이로 망명했다가 1970년 돌아와 1992년 92세로 사망하기까지 22년간을 이인수 씨 내외와 여기에서 머물렀다. 대통령 시절 이승만 박사는 사저를 수리하는 것이 부정부패의 원인이 된다며 이화장의 수리를 절대 금했다고 한다. 일부 풍수지리 전문가들은 이화장의 지세는 좋으나 건물 형태와 배치 등에 부족함이 많다고 지적한다. 이승만 대통령이 이곳에 머무르는 동안 경제적으로 어려운 생활을 하고 친 혈육을 보지 못한 것 등은 풍수와도 어느 정도 영향이 있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조성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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