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넛 껍질에 계피가루를 뿌리고 황설탕을 입혔어. 그게 우리가 어릴 적 종로의 고려당에서 먹던 추억의 맛을 재생시키는 비결이야.”
“어릴 적 우리한테 인박혀 있던 종로의 고려당이나 광화문의 덕수제과의 단팥빵이나 곰보빵들의 맛의 정체가 뭐야?” “일제시대 경성의 일본인제과점 주인들이 해방이 되고 돌아가도 그 밑에서 도제노릇을 하던 한국인들이 맛을 내는 기술을 전수받아 빵을 만들었지. 그래서 우리가 어렸을 때 맛있는 빵을 먹었던 거야. 그런데 그런 분들이 돌아가신 후에 앙꼬라고 우리가 부르던 팥소를 만드는 기술부터 어느새 없어져 버린 거야. 일본인 장인들은 팥소를 만들 때도 새벽의 맑은 물에 팥을 깨끗이 씻으면서 한 알 한 알 팥 알갱이를 사랑하면서 얘기하듯 해. 끓일 때도 어린아이 돌보듯 옆에서 떠나지 않고 거품을 걷어 내면서 온 정성을 다해. 그 다음은 가는 체로 쳐서 껍질 부분을 모두 제거해 그런 후에 남은 부분만을 가지고 앙꼬를 만들어 모나카를 만들거나 앙빵을 만들었어. 우리나라에 프랜챠이져 제과점들이 많지만 그런 품질 좋은 앙꼬가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나오지 않아. 그러니까 우리가 어릴 적 먹던 도넛이 지금은 없는 거야. 잠깐.”
그가 일어서서 카운터로 가더니 쟁반에 담겨있는 도넛을 나무도마 같은 받침 위에 담아 와 탁자위에 올려놓았다. 노란색갈로 바삭하게 튀겨진 껍질 위에 알이 작은 알갱이의 황설탕이 골고루 묻어 있었다. 그가 도넛을 반으로 잘라 내게 먹어보라고 하면서 말했다.
“이 도넛은 사실 어제 만든 거야. 그래도 바삭한 껍질의 식감이나 촉촉하고 달콤한 앙꼬의 맛이 조금도 변하지 않았잖아. 어떤 제과점이던 이런 맛을 낼 수 있는 빵을 한번 가져와 보라고 해.”
그는 자부심이 어린 표정이었다.
“지금 서울에도 고급 제과점들이 많은데 왜 그런 앙꼬를 만들어 내지 않는 거야?”
내가 물었다.
“진짜 좋은 앙꼬를 만들어 내려면 팥의 껍질을 다 체로 걸러야 해. 그런데 그 양이 얼마인지 아니? 팥의 삼분지 일을 버려야 하는 셈이야. 그 돈이 아까우니까 그렇게 하지 못하고 기계로 으깨서 설탕을 섞어 그대로 쓰는 거야. 거기서 근본적인 질의 차이가 나는 거지. 그리고 토질이 다른 중국 팥으로는 좋은 맛이 나지 않아. 국산을 써야 하는데 작황에 따라 그 값이 수시로 몇 배씩 뛰니까 좋은 앙꼬를 만들어내는 게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 거야. 게다가 최고 품질은 기계로 만들지 말고 손으로 직접 해야 해. 어제 밤도 나 밤 두시까지 체로 껍질을 거르면서 앙꼬를 만들었어. 집사람이나 딸은 청승스럽다면서 늙은 내가 이러는 걸 반기지 않지.”
“너도 제자를 만들어 기술을 전수하지 그래?”
“싫어, 나도 어떻게 힘들게 배운 기술인데 거저 알려줘? 함부로 믿을 수가 없어.”
어느새 그 친구도 옹고집 장인이 된 것 같다. 그는 재산이 있는데도 사장이나 회장이 되려고 하지 않았다. 국회의원의 꿈도 없었다. 일본사람의 입맛과 다른 우리나라에 맞는 최고의 앙꼬 아니 팥소를 만드는 장인이 되고 싶어했다.
엄상익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