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도의 벽 아래는 문이 열려진 검사실 안쪽을 들여다보며 늙수그레한 교도관 한명이 조용히 앉아 있었다. 나는 그의 옆에 놓여있는 접이식 철 의자에 앉았다. 갑자기 그의 존재가 내게 느껴졌다. 그는 검사실의 동향을 살피는 살아있는 CCTV였다. 다만 말을 하지 않을 뿐이었다. 아니 누군가 물어보는 사람도 없었을 것이다.
“하루 종일 이렇게 검사실 구석에 앉아 있으면 힘들죠?”
내가 위로조로 말을 걸었다.
“뭐, 평생 해 온 일인데 괜찮습니다.”
그가 담담하게 대답했다. 오십대 중반쯤의 고참 교도관 같았다. 무료했던 그는 내가 말을 걸어주는 게 좋았는지 스스로 입을 열었다.
“저는 교도관으로 평생 검사실을 다니면서 봤는데요 시대가 변하면서 검사실 분위기도 변했어요. 십 년 전만 해도 검사실은 검사와 피의자가 싸우는 곳이었어요. 검사가 욕하고 때리기도 했어요. 그런데 요즈음은 세대가 교체되서 다들 젊어요. 검사들이 대개 삼십대예요. 분위기도 바뀌었어요. 예전같이 욕하거나 때리는 게 없어졌어요. 안 때리는 대신 교도관인 제가 보면 검사들이 훨씬 교활해 졌어요.”
폭행이나 협박대신 인간적인 모멸감을 주는 경우도 많았다. 더러는 다른 약점을 잡고 흔드는 수도 있었다. 교도관은 그런 지능적인 방법들을 지적하는 것 같았다.
“검사실은 그렇고 요즈음 구치소는 어떻습니까? 거기도 변했죠?”
내가 물어보았다. 구치소 풍경도 이십년전 십년전 요즈음이 달라졌다. 그가 이렇게 대답했다.
“서울구치소를 보면 CCTV를 곳곳에 수백대 설치했어요. 그 놈들이 재소자뿐만 아니라 우리 교도관들이 감방을 돌아다니며 근무할 때도 꼭 따라다녀요. 교도관도 이제 감시를 당하는 거죠. 예전에는 설이나 추석 같은 명절에 고깃점 몇 개라도 졈퍼 속에 숨겨가지고 와서 면회오는 사람도 없는 외롭고 불쌍한 재소자 방에 슬쩍 던져준 적도 있어요. 그런데 이제는 그렇게 못하는 거예요. 그리고 전에는 우리 교도관이 재소자의 인간적인 편지 심부름도 더러 해 줬어요. 뇌물을 받는 나쁜 짓이 아니라 민주화투쟁을 하는 사람들 도와 준 것도 있거든요. 그런데 이제는 우리도 기계들의 감시를 받으니까 꼼짝 못하는 거죠. 감옥안에도 사람이 살아가는 인정이 있었는데 그게 다 말라 버렸어요. 구치소는 담 밖에도 CCTV가 산 쪽으로 수백대 설치되어 있어요. 이제는 탈주가 불가능 합니다. 어떤 구치소는 이중 담벽 사이의 레일을 타고 CCTV란 놈이 자체적으로 돌아다니고 있으니까요.”
앞으로는 총을 든 로봇교도관이 탄생할 것 같았다. 그가 말을 계속했다.
“기계만 발달한 게 아니라 구치소에 있는 재소자의 학력들도 예전과는 비교가 안 되게 높아졌어요. 박사님도 많이 계시고 수용자의 대부분이 고학력자예요. 예전에는 우리 교도관들이 높은 사람들이 들어오면 더러 대접을 해 줬어요. 그런데 요즈음 그렇게 하면 다른 재소자들이 다 똑같은 죄인인데 왜 그런 놈들을 특별취급 하느냐면서 바로 진정을 하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들 교도관이 사무적으로 다 똑같이 취급할 수 밖에 없어요.”
나는 얼핏 교도소를 배경으로 한 ‘쇼생크 탈출’이나 ‘프리즌 브레이크’ 같은 영화와 드라마가 떠올라 물었다.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교도소 안에서 소장이 왕이던데 교도관의 입장에서 어떻게 생각해요?”
“소장도 옷 갈아입고 담 밖으로 나오면 나하고 똑같은데요 뭐.”
공무원들도 이제는 예전같이 상관에게 절대적으로 복종하는 신분관계가 아닌 것 같았다. 그때 검사실 복도로 설농탕 배달이 지나가 검사실로 들어가고 있었다. 검사가 조사를 하던 사람에게 먹이려고 주문한 것 같았다. 옆에 있던 교도관이 벌떡 일어나 검사실 안 책상 뒤에 앉아 있는 검사에게 가서 항의하는 소리가 들렸다.
“검사님 그렇게 마음대로 검사실에서 특정인을 불러 면회도 시켜주고 사식을 먹게 하면 안 됩니다. 밥 때가 되면 아래에 있는 구치감으로 가서 거기서 규정된 식사를 해야 합니다. 그게 행형 규칙입니다. 왜 그러십니까?”
그의 말을 듣는 검사의 얼굴이 붉어지고 있었다. 세상이 권위주의에서 기계와 규칙의 통제로 변하는 것 같았다.
엄상익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