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하게 산속에서 자라던 나무가 있던 언덕이 구치소로 변하고 나무는 졸지에 구치소에 갇혀 버렸다. 변호인 접견실에서 신 교수를 만났다. 가난한 환경에서 힘들게 명문고를 나온 그는 미국의 명문대에서 기계공학분야의 박사학위를 받았다. 삼십년간 공과대학교수를 하면서 그는 전자회로판을 생산하는 기계분야의 세계적인 권위자가 됐다. 그는 학교 내에 벤쳐 회사를 만들어 운영했다. 믿음이 깊은 그는 목사이기도 했다. 교수인 아내와 아버지를 따라 공학을 전공한 총명한 아들을 둔 평화로운 가정이었다.
그런 그가 사기범이 되어 징역 사년을 선고받고 법정구속이 됐다. 판결문은 그를 아주 질 나쁜 사기범으로 비난하고 있었다. 기술력이 없는데도 거짓말을 해서 투자자에게 백억원을 편취했다는 것이다. 백억원이면 서민에게는 천문학적인 숫자의 돈이다. 그의 변호를 맡고 상당한 시간이 흐르도록 묻지 않은 부분이 있었다. 거액을 투자받기 위해 정말 한줌의 거짓말도 하지 않았느냐고. 본질은 입에서 나오는 말이 아니었다. 어떤 느낌이었다.
“변호사님은 나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의문을 숨기시고 있는 것 같은데요. 속으로는 저를 사기범으로 생각하는 거 아닙니까?”
그가 내가 묻고 싶은 말을 던져왔다. 때가 온 것이다.
“벤쳐 회사를 하는 분들은 투자에 목이 말라있습니다. 백억원이라는 투자를 놓고 정말 조금의 거짓말이나 과장이 없었을까요? 아니면 기술자로서 자기도취에 빠져 있어 자랑할 수도 있었을 게 아닙니까? 법은 그 모든 것을 포함해서 사기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변호사님을 접견 할 때 마다 얼굴표정에서 저에 대한 그런 의문을 봤습니다. 저 역시 이 감옥에 있으면서 제가 그 분에게 어떤 거짓말을 했나 철저히 자문해 봤습니다. 그리고 제가 사기꾼이라는 판결이유를 반복해 보았습니다. 처음에는 분노했습니다. 난 그러지 않았으니까요. 그러다가 요즈음에는 ‘아, 판사들은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전에도 종류는 다르지만 그런 오해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어떤 오해였나요?”
그가 잠시 침묵했다. 그늘에서 백짓장 같이 하얗게 바랜 그의 얼굴에서 알 수 없는 어떤 은은한 빛이 배어나오는 것 같았다. 일반 범죄인으로부터 흘러나오는 듯한 탁하고 어두운 기운과는 다른 것이었다. 그가 입을 열었다.
“강의를 하는데 한 학생이 계속 기침을 하는 겁니다. 부모 없이 불우한 환경에서 자란 거친 학생이었지요. 누구와 눈길이 부딪치면 시비를 걸고 곧장 주먹다툼을 하기도 했어요. 저는 기침을 심하게 하는 그 학생을 보고 물을 가져다 그 학생에게 줬습니다. 수업이 끝난 후 그 학생이 저에게 찾아와서 왜 물을 가져다 주셨느냐고 묻더라구요. 저는 그 학생에게 일할 자리를 주기도 하고 집으로 데려와 삼년을 같이 살았죠. 그리고 결혼식까지 치르게 했습니다. 그때 주위에서 소문이 있었습니다. 다른 여자와의 사이에 몰래 낳은 아들이 아니면 저렇게 할 리가 없다고 말입니다. 긍정적으로 봐주는 세상이 아니었습니다. 판사님들은 특히 매일 거짓과 마주하는데 저를 당연히 사기꾼으로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 하고 이제 이해할 것 같습니다.”
의외였다. 감옥에 들어오면 억울하다고 분노하고 날뛰는 게 보통이었다. 판사의 입장까지 생각해서 판단하는 사람은 변호사생활 삼십년에 처음 보는 경우였다.
“그러면 어떻게 사기꾼이 되어 여기 감옥까지 오게 됐다고 생각하십니까?”
“투자를 한 그분은 제 기술을 이용하면 대박을 터뜨리겠구나 생각하셨던 것 같아요. 당연하죠. 그러다 어떤 동기인지 몰라도 마음이 변했어요. 돈을 돌려받고 싶은 거죠. 그런데 증자등기까지 마치고 그 돈이 법적으로 회사의 자본이 된 뒤에는 그게 여의치 않은 거예요. 회사의 청산절차를 밟거나 다른 법적조치를 해야 하는데 그 과정의 세금문제가 골치 아프거든요. 결국 저를 사기범으로 만들어야 그 돈을 다시 찾아갈 수 있는 거예요. 그 분은 저보고 큰 로펌 변호사를 동원해서 사기죄로 만들겠다고 했어요. 그리고 지금은 판결문은 있으니까 사기를 쳤다는 자인서만 쓰면 합의서를 써서 얼른 석방시켜 주겠다고 하는 거예요. 제가 몰랐던 건 제 마음만 생각하고 법원에서 판사들이 현명하게 판단해서 무죄가 되겠지 했었던 겁니다. 그런데 그 분들도 보통사람이더라구요. 백억원 투자를 받았으면 당연히 뭔가 거짓말했겠지 하는 거죠. 이제는 알 것 같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시려고 합니까?”
보통은 허위자백으로 죄를 뒤집어쓰더라도 우선 석방되기를 원했다.
“저는 징역을 사년 살고 교수직이나 그동안의 명예나 실적을 다 잃는다고 해도 사기를 자인할 생각이 없습니다. 거짓말을 한 적이 없으니까요. 평생 하나님을 섬기면서 아들에게 정직을 가르쳤는데 내가 살기위해 거짓된 모습을 보일 수는 없어요. 허구 헌 날 거짓말을 듣는 판사들에게 제가 진실을 말해도 듣겠습니까? 이제는 이 십자가를 받아들여야죠.”
내 마음방속에 끼어있던 안개 같은 의심들이 어느새 다 사라져 가는 것 같았다. 그는 진짜 악마적인 사기꾼이거나 천사 둘 중의 하나였다. 인간의 선입견과 고정관념이란 참 무서운 것이다. 변호를 하는 나도 그걸 벗어날 수가 없었다. 그날 밤 나는 한 밤중에 그의 부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거액의 투자를 받으면서 정말 조금의 욕심도 없었을까요?”
나의 말에 그의 아내가 주저 없이 대답했다.
“삼십년이 넘게 살아왔지만 제 남편은 돈에 대한 관심이 없습니다. 자기 학문분야가 아닌 이상 그게 백억이건 천억이건 관심이 없어요. 그래서 세계적인 학자가 됐다고 생각합니다. 남편은 거짓말을 할 사람이 아닙니다. 그건 같이 살아온 내가 압니다. 그런데 그걸 어떻게 설명합니까? 귀가 막힌 사람들이 말한다고 듣겠습니까?”
우울한 하루였다. 감옥에서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얘기하다 순간 섬광같이 느끼는 게 있다. 그게 진짜다. 그러나 아무것도 해 줄 수가 없다. 그 사람의 마음을 법정에 담아가 보여줄 능력이 없다. 거짓말에 쩔은 판사의 마음도 열 수도 없다. 나는 무능한 변호사다.
엄상익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