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감이 들어와서 바쁘게 일을 했으면 좋겠어요. 일이 없어서 벌써 두 달 동안 쉬었어요.”
그 동네의 길가에 있는 또 다른 봉제공장이 화면에 나타났다. 그 공장을 지키는 남자도 걱정을 한다.
“저는 어려서부터 30년을 봉제 일을 했어요. 집안사정 때문에 초등학교도 제대로 나오지 못했죠. 다시 옛날로 돌아갈 수 있다면 정말 열심히 공부하고 싶어요. 영어공부를 해서 외국인과 대화를 하고 싶어요. 그렇지만 이제는 불가능한 일이지. 왜 아침부터 내가 쓸데없는 말을 하지? 에이”
그의 눈이 순간 붉어지는 것 같았다. 코 위에 얹힌 돋보기를 위로 올리고 눈물을 닦았다. 서민들의 사는 모습이었다. 일감은 가족이 밥을 먹게 해 주는 축복이었다. 화면 속의 모습을 보면서 초등학교시절을 떠올렸다. 어머니는 세평정도의 가게를 빌려 편물점을 했었다. 편물기계를 두 대정도 놓고 일감이 들어오면 세타를 짜주었다. 나는 더러 털실을 풀고 초를 먹여 깡통에 감는 일을 도왔다. 그리고 그렇게 받은 임가공비로 아들인 나는 책을 사서 공부를 했다. 어린 시절 겨울이면 상계동 빈민촌에 사는 목수인 숙부 집을 자주 갔었다. 창고 같은 수백채의 바라크집들이 닥지닥지 붙어 있었다. 많은 주민들이 공동으로 쓰는 변소 앞은 오물이 항상 얼어붙어 번질거렸다. 가난했지만 아버지 오남매는 가장 가난한 동생 집에 모여 순대를 삶고 만두를 빚어 소주와 함께 한 밥상에서 나누어 먹곤 했다. 따뜻한 밥상은 가난을 녹여내는 것 같았다. 아버지는 나를 거기에 가서 더러 묵게 하면서 가난한 삶을 공감하게 했다. 세월이 흘러 윗대들이 다 돌아가셨다. 아버지는 친척들에게 잘해주라고 유언을 했다. 나는 가끔 친척동생들을 불러 밥을 먹으면서 살아가는 얘기를 듣는다. 힘들게 살면서도 나름대로 자기자리에서 꽃을 피우고 있는 것 같았다. 오십대 말의 사촌동생이 자신의 삶을 이렇게 말했다.
“형님 제약회사 과장이 된 제 딸이 개인택시를 사줘서 영업을 시작했는데 욕심 때문에 스스로 통제가 안돼요. 밥 먹을 시간인데도 손님이 타면 또 가고 또 가고 해요”
동생은 평생 택시기사를 하면서 딸을 대학까지 가르쳤다.
딸 자랑이다. 쉬는 날이면 집근처에서 텃밭을 가꾸면서 삶을 즐기고 있었다. 강남의 대형 백화점에서 이십년 이상 판매원을 한 친척여동생은 이렇게 자기 일을 말했다.
“백화점에서 오래 근무한 비결은 참는 거 였어요. 갑질을 심하게 하는 여자가 있었어요. 고객님하고 공손하게 대했는데도 ‘너 이년 무릎 꿇어’하는 고객이 있었어요. 그래서 무릎을 꿇었더니 단번에 내 머리채를 휘어잡고 흔드는 거야. 그런 걸 아무렇지도 않게 참아야 해요. 한번만 그렇게 꾹 참아내면 그 고객이 오히려 내 단골이 되는 거야. 그게 오래 버틴 영업의 비결이야.”
나는 속으로 박수를 쳐 주었다. 그 친척 여동생의 남편은 포크레인을 오랫동안 몰고 있었다. 친척 여동생은 남편대신 이런 말을 했다.
“없는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려면 우리 남편같이 포크레인 기술자를 하는 게 좋은 것 같아요. 목이 잘릴 염려 없이 나이 먹어서도 할 수 있으니까. 남편말로는 깊은 산중에서 몇 달간 혼자 일할 때나 지하에서 땅을 팔 때는 외로움을 느낀다고 하더라구. 그래도 그렇게 혼자 묵묵히 가는 길이 좋은 것 같아. 주위에 보니까 입만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아. 그런 사람들은 우선 돈을 만지려고 다단계를 거쳐 사기꾼으로 가는 수가 많아요.”
이번에는 간호사를 한지 얼마 되지 않는 조카가 말했다.
“중환자실에서 일을 하는데 덩치 큰 사람이 환자로 들어왔을 때 나 같은 신참은 너무 힘들어요. 일으켜 목욕도 시키고 똥오줌도 받아내야 하는데 그런 일을 하다보면 침대 옆에서 늘 구부정하게 엎드리니까 허리가 아파요. 그래도 얼마든지 참아내며 즐겁게 일할 수 있어요.”
조카는 어려서부터 가난 속에서 철저한 고생으로 단련이 되어 있었다. 친척동생들은 남들이 부러워하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정직하게 땀을 흘리는 일을 열심히 하며 살고 있다. 주어진 일을 감사하게 여기고 번 돈으로 가족과 저녁에 따뜻한 밥상을 맞이하고 있다. 그들에게는 부자 못지않은 행복감에 충만해 있다. 가난 속에서 성장한 사람은 가난 자체가 무엇인지 모른다. 나 역시 그랬다. 골짜기든 햇볕 좋은 곳이던 나무가 태어난 자리를 원망하지 않듯이 각자 제자리에서 꽃을 피우는 게 행복을 찾는 길 아닐까.
엄상익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