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을 한 후 집을 김포의 아파트로 옮겼어요. 그리고 동네 도서관을 다니면서 책을 읽고 소설을 써요. 난 앞으로 차별이라는 주제로 쓰고 싶어. 우리사회에 빈부차별이 있잖아? 앞으로 남북통일이 되면 돈 없는 북한사람들에 대한 차별이 사회문제가 될거라구. 그런 걸 쓸 거야. 그리고 뒤늦었지만 노력할 거야. 소설가 신경숙은 야간여상을 다닐 때 처음에는 소설을 무턱대고 베껴 썼대. 습작을 그렇게 한 거지. 문학이라는 게 뭐 별게 있나 처음에는 남의 작품을 많이 읽고 흉내 내 보는 거지. 혼자 갑자기 대작을 창조해 내려고 해도 되지 않는 거야.”
그는 이미 논설위원 중에서도 글을 잘 쓴다고 평가받았던 사람이다. 소설영역은 또 다른 것 같았다. 같이 않아 있던 기자출신 고교동기가 쇳소리 나는 목소리로 그 말을 받았다.
“맞아 드라마도 히트한 한 작품을 보고 변용을 하기도 하고 그렇잖아? 후속편을 만들기도 하고 말이야. 난 요새 집에서 드라마를 거의 다 보는 셈이야. 영화도 보고. 그리고 동네 피아노 학원에 가서 재즈피아노를 배우고 있어.”
신문편집을 평생 해 왔던 그는 탁월한 글 수리공이었다. 내가 편집인으로 있었던 대한변협신문의 편집을 부탁했었다. 내가 퇴직 후 소설을 쓰는 논설위원에게 말했다.
“문예창작과를 나오고 동기들 중에 유명소설가도 많은데 추상적인 관념 말고 구체적으로 읽어야 할 책과 글 쓰는 방법에 대해 한 말씀해 봐요.”
장인들이 자기의 비법을 남들에게 절대 알려주지 않듯이 내가 만난 소설가들도 세부적인 것은 말하지 않았다.
“먼저 좋은 책을 골라 많이 봐야죠. 읽을 때마다 새롭게 배울 수 있는 책 잠든 영혼을 불러일으켜 삶의 의미와 기쁨을 안겨주는 그런 책은 수명이 길죠. 수많은 세월을 거쳐 지금도 책으로 살아 숨 쉬는 동서양의 고전들이 그게 아니겠어요? 결국 다시 고전으로 돌아가는 것 같아. 책들을 읽는 건 음식으로 치면 시장에서 싱싱한 야채를 구입하는 것이고 그걸 읽으면서 메모들을 하는 건 야채를 다듬는 것 같다고 봐요. 나는 그렇게 하고 있어.”
옆에서 듣고 있던 고교동기인 친구가 끼어들었다.
“그런 책도 좋지만 우리시대의 진실을 공유하기 위해 고통과 박해를 무릎 쓰고 쓴 책들도 읽어야 해. 그런 책들은 작가의 체험이 그대로 녹아있기도 하지.”
“완성한 원고를 출판사에서 책을 만들어 주겠다고 해요?”
내가 전 논설위원에게 물었다. 그는 내게 소설속의 법정풍경을 한 번 검토해달라고 원고를 보내왔었다.
“원고를 출판사에 넘겼는데 예전 같으면 사장이 마음대로 했는데 요즈음은 그렇지 않다는 거예요. 먼저 팔릴 책인지 몇 부나 나갈 책인지를 담당자가 판단하고 그 다음은 평론가출신이 소설원고를 하나하나 꼬집고 파헤친다는 거예요. 그러다 보니 소설을 출간해 주는 출판사는 거의 없어요. 출판을 해도 유명작가의 작품을 내지 신인이나 우리 같은 사람들의 책은 내주지 않아요.”
그는 풀이 죽은 표정이었다. 그 말을 듣고 있던 고교동기인 친구가 말했다.
“자의식의 표현이라고 하면서 재미없는 글만 써댄 우리 소설가들한테도 책임이 있는 거지 뭐. 상당수의 작가들이 문장에만 매몰되어 스토리가 없는 거야. 끼리끼리만 서로 추켜세우고 끼리끼리만 문학상을 주고 그러니 일반 독자한테서 멀어지는 거지. 난 진 작에 글 쓰는 걸 때려치웠어.”
그는 소설가 김동리에 대한 논문을 썼던 문학청년이었다.
같이 저녁만 함께 먹어도 그 사이에 머릿속을 충만하게 해 주는 친구들이었다. 이런 날은 행복하다. 다음날 저녁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데 전 논설위원한테서 전화가 왔다.
“어제 정말 너무 재미있었어요. 노년의 이 나이에 어디서 그런 문학얘기를 하고 즐길 수 있겠어요. 앞으로 친구하며 고정적으로 만납시다.”
노년의 작은 행복이었다.
엄상익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