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들 분류해서 꽂아놓으면 좋지 않겠어요?”
내가 책방주인에게 말했다.
“그렇게 못해요, 할 수가 없어요.”
주인남자가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일손이 딸리는 것 같았다. 먼지가 자욱한 빈 공간에서 살펴보고 책을 골라내는 건 불가능했다. 인연이 닿아 우연히 책이 내 눈에 띄어야 했다. 우연히 책더미 사이에서 ‘아름다운 마무리’라는 법정스님의 수필집이 나를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사십대부터 그가 쓴 수필집이나 기행문을 빠짐없이 읽었다고 생각했는데 그 책은 읽은 기억이 없었다. 보물이라도 만난 것 같이 기뻤다.
요즈음은 대형서점에서 좋은 책을 고르기가 힘들다. 출판사마다 자기 매대를 만들고 자기 책들만 사라고 강요하는 것 같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면 출세를 하는지 사회를 살아가는 기술을 어떤 것인지 얕은 자기개발서가 많았다. 명사라고 불리는 사람들의 시시덕거리는 내용을 담은 책도 많았다. 게오르규의 ‘25시’라는 책을 찾았다. 감성이 많이 녹슨 사십대에 읽었는데도 눈물을 흘린 고전이었다. 두 세 번 다시 읽을 마음이 나야 좋은 책이다. 점원은 판매가 중단되어 그 책이 없다고 했다. 좋은 책이 큰 서점에서조차 사라진 것이다.
그래서 요즈음은 발품을 팔아 헌책방들을 간다. 거기서도 수북이 쌓인 책 중에서 좋은 책을 고르기는 쉽지 않다. 구해온 법정의 수필집을 매일 아껴가며 조금씩 음미했다. 다른 세상으로 훌쩍 옮겨간 법정스님은 아직도 책속에서 가을 계곡 맑은 물 속의 물고기같이 청정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스님은 ‘월든’을 쓴 자연주의자 데이빗 소로우를 좋아했던 것 같다. 데이빗 소로우가 혼자 들어가 살며 글을 썼던 월든 호숫가도 몇 차례 갔다고 쓰고 있다. 데이빗 소로우의 생활신조를 법정스님은 이렇게 전하고 있다.
‘간소하게 살라, 일을 두세 가지로 줄일 것이며 여러 가지 만들지 말라. 단순하게 살면 우주법칙은 명료해 질 것이며 그때 비로서 고독은 고독이 아니고 가난은 가난이 아니다.’
깊은 진리가 담겨있는 말이다. 세상은 끼리끼리 통하는 것 같다. 영혼이 맑은 사람은 영혼이 맑은 다른 사람을 알아본다. 그건 바로 법정스님의 삶이 아니었을까. 법정스님은 또 소로우의 생애를 가장 충실하게 기록한 영국의 헨리솔트의 말을 이렇게 소개했다.
‘소로우가 공적인 일을 하여 남길 수 있었던 것 보다 월든이라는 책을 씀으로써 인류에게 남긴 유산이 훨씬 더 훌륭한 것이었다.’
법정의 수필집 ‘무소유’도 ‘월든’에 못지않다는 생각이다. 월든 호숫가 숲속에서 맑게 살았던 데이빗 소로우도 죽었고 산골 오두막에서 청정한 삶을 살았던 법정스님도 저 세상으로 허허롭게 건너갔다. 법정스님이 조계산의 산자락에서 보라색 연기로 변해 숲속의 청정한 소나무들과 마지막 인사를 할 때 나는 그 자리에 있었다. 세상과 섞이기 싫어하는 그를 번거롭게 하기 싫어 살아서는 찾아가거나 본 적이 없었다. 법정스님은 수필집에서 계속 살아 숨쉬면서 나와 대화를 하고 있었다. 영혼의 사람들은 죽어도 죽지 않는 것 같다. 그가 주장하던 무소유란 탐욕을 갖지 말라는 가르침이었다. 죽을 때까지 탐욕에 끌려 끙끙대다가 빈손으로 가는 사람보다 일찍 모든 걸 털어버리고 밤하늘의 별과 바닷가의 파도를 보고 아름다운 기억을 많이 담아 간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이익을 본 성공한 사람일 것 같다.
엄상익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