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채진 검찰총장(왼쪽)과 노무현 전 대통령. | ||
노 전 대통령이 기소될 경우 검찰과 노 전 대통령은 2차 법리 전쟁을 피할 수 없을 것이고 ‘전직 대통령 사법처리’라는 점에서 거센 정치적 후폭풍을 예고하고 있다. 노 전 대통령과 검찰의 입장이 첨예하게 맞서고 있고 핵심 쟁점을 둘러싼 의혹들이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는 점에서 피 말리는 법정 혈투가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여기에 국정원 개입 논란 등 돌출 변수가 속속 불거지고 있어 노 전 대통령의 사법처리는 향후 전개될 치열한 법정 공방전과 맞물려 당분간 정국을 뜨겁게 달구는 뇌관이 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미완의 ‘노무현 게이트’의 숨겨진 뇌관이 법정에서 폭발할 경우 정치권이 또다시 격랑에 빠져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형국이다. 의혹과 논란을 뒤로한 채 법정으로 향하고 있는 ‘노무현 게이트’의 남겨진 미스터리를 들여다봤다.
''노무현 게이트’가 예상치 못한 돌발 변수와 맞물리면서 더욱 복잡한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애초 검찰 주변에선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소환 조사(4월 30일)가 마무리되고 5월 4일 수사팀의 최종 수사결과 보고서가 임채진 검찰총장에게 전달되면서 6~7일쯤 사법처리 수위가 결정될 것이란 시각이 많았다.
하지만 검찰이 ‘100만 달러 용처’와 관련해 권양숙 여사에 대한 재소환 방침을 정하면서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사법처리는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주 권 여사에 대한 보강조사를 마친 검찰은 이번 주 중 노 전 대통령의 신병 문제를 처리한다는 방침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국정원 압력’ 의혹 등 돌출 변수가 속속 불거지면서 노 전 대통령의 사법처리가 이번 주를 넘길 것이란 관측도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물론 ‘전직 대통령 신병 처리’라는 사건의 중요성을 감안하면 검찰이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일 수도 있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과 그 가족들을 직접 소환 조사하는 등 전 방위 수사를 전개했음에도 진일보된 수사 결과물을 도출하지 못한 채 최종 결정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는 검찰의 태도에 의혹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법조계 주변에선 검찰이 독자적으로 판단할 수 없는 말 못할 속사정이 있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는가 하면 정치권 일각에선 전·현 정권 간의 ‘빅딜설’ 의혹이 불거지고 있는 실정이다.
5월 4일 최종 수사보고서를 전달받은 임 총장은 노 전 대통령의 사법처리 문제와 관련해 “검찰의 독자적인 판단에 따라 합리적인 결정을 도출할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정치적 논리나 언론의 예상 보도를 배제하고 법과 원칙에 따라 검찰권을 행사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한 셈이다.
하지만 임 총장과 검찰이 현 정부 핵심부의 견해나 의중을 철저히 배제한 채 독자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을지에 대해선 여전히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노 전 대통령의 사법처리가 몰고올 정치적 후폭풍과 사회적 논란을 감안할 때 검찰이 어떤 식으로든 현 정권 수뇌부와의 막후 조율 내지는 교감하에 최종 결정을 내릴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리고 있다. 야권 일각에서는 “노 전 대통령의 명운은 이명박 대통령이 쥐고 있다”는 얘기도 설득력 있게 나돌고 있을 정도다.
국내외 정보를 총괄하고 있는 국정원이 ‘노무현 게이트’에 직·간접적으로 연루된 정황이 속속 불거지고 있는 점도 의혹을 부추기고 있다. 검찰은 2007년 2월께 노 전 대통령 측의 요구로 당시 김만복 국가정보원장이 직원을 시켜 노 전 대통령의 장남인 노건호 씨의 미국 거처를 알아봐 줬던 사실을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전 원장은 검찰 조사에서 국정원 직원을 미국으로 보내 주택 10여 채를 물색한 뒤 결과를 정상문 전 비서관에게 보고한 사실은 인정했지만 노 전 대통령에게 직접 보고한 것은 아니라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5월 7일 <조선일보>가 ‘국정원이 검찰 고위층에 노 전 대통령을 불구속 기소할 것을 종용했다’고 보도한 내용을 둘러싼 논란도 증폭되고 있다. 국정원은 즉각 ‘사실 무근’이라며 보도 내용을 부인했지만 여권 핵심부의 수사 개입 의혹과 맞물리면서 파장이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는 형국이다.
7일 기자와 만난 사정당국의 한 관계자는 “그런 중요한 사항을 직원을 시켜 전달했다는 게 납득이 가질 않는다”며 “국정원 직원과 검찰 간부 간의 사적인 대화를 전해 듣고 확대해석한 것 아니냐”고 말했다. 하지만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7일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김만복 전 원장의 개입 정황이 드러나고 있는 데다 노 전 대통령의 사법처리가 몰고올 거센 후폭풍을 감안하면 국정원이 어떤 식으로든 검찰 수사 과정에 개입했을 개연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야권 일각에선 전·현 정권 간의 빅딜설이 설득력 있게 나돌고 있는 실정이다. ‘쥐도 막다른 골목에 몰리면 고양이를 물 수 있다’는 속담처럼 노 전 대통령도 벼랑 끝으로 몰리게 될 경우 여권을 뒤흔들 수 있는 폭탄카드를 꺼내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만큼 전·현 정권 수뇌부가 적당한 선에서 정치적 타협을 모색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의 명운을 좌우할 치열한 법리 전쟁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핵뇌관이 폭발할 수 있다는 점도 빅딜설을 부추기고 있다. 검찰과 노 전 대통령 간의 법정 공방전이 진실게임을 넘어 서바이벌 전쟁으로 비화될 경우 전·현 정권의 숨겨진 ‘X파일’이 공개되는 등 그야말로 ‘너 죽고 나 죽자’식의 막장 정국으로 빠져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전·현 정권이 ‘공멸의 길’만은 피해야 한다는 우려감과 위기감에 교감하면서 정치적 타협점을 모색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관측에도 힘이 실리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의 사법처리를 미루고 있는 검찰의 고민과 말 못할 속사정이 무엇인지는 그 속내를 예단할 순 없다. 다만 검찰이 국민적 의혹을 해소하지 못한 채 노 전 대통령의 명운을 사법부 손에 떠넘길 경우 ‘노무현 게이트’를 둘러싼 미스터리는 제2, 제3의 의혹을 재생산하면서 당분간 정쟁과 사회적 분열을 야기하는 지뢰밭이 될 것으로 보인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