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우기 씨와 『요즘 우리말께서는 안녕하신가요?』 표지
[경남=일요신문] 송희숙 기자 = 국립 경상대학교(GNUㆍ총장 이상경) 홍보실장 이우기(50) 씨가 ‘요즘 우리말께서는 안녕하신가요?’를 펴냈다. 부제로는 ‘올바른 말글살이를 바라는 쓸모 있는 걱정’이라고 달았다.
이 책은 이우기 씨가 평소 우리말과 글이 안고 있는 문제에 대하여 고민한 결과를 쉽고 재미있게 풀어 쓴 내용이다. 이우기 씨는 경상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나온 뒤 ‘경남일보’에서 교열부 기자로 일했고 1994년부터 10여년 동안 ‘진주 우리말 우리글 살리는 모임’, ‘우리말 살리는 겨레 모임’의 편집 일꾼으로 일했다. 그 과정에서 우리말과 글에 대한 고민을 거듭해 왔고, 자신의 신념을 굳혀 갔다.
『요즘 우리말께서는 안녕하신가요?』는 크게 다섯 마당으로 나뉘어 있다. 첫째 마당은 ‘영어에 머리 조아린 불쌍한 우리 얼’이다. 하루가 다르게 쏟아져 나오는 온갖 미국말에 짓눌려 숨쉬기조차 힘든 우리말의 실태를 고발한다. 슈퍼리치, 빅텐트, 게이트, 윈드시어, 코리아 세일 페스타, 팸투어, 핫 플레이스, 테이크 아웃, 디스, 싱크홀 같은 말을 비판의 도마에 올렸다.
둘째 마당은 ‘우리말 속에 낀 뉘를 어찌 할까’라는 제목을 붙였다. 뉘는 쓿은쌀 속에 등겨가 벗겨지지 않은 채로 섞인 벼 알갱이로서 등겨를 잘 벗겨내면 흰쌀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이우기 씨는 “말에서는 (흰쌀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단정한다. 샤방샤방, 멘붕, 무한리필, 시월드ㆍ처월드, 란파라치, 포텐터지다, 브런치, 케어, 케미, 썸타다 같은 말을 분석하고 비판한다.
셋째 마당은 ‘비틀어지고 배배 꼬인 우리말’이다. 낯설고 황당한 우리말, 혀를 찰 만한 말, 까무러칠 만한 말을 모았다고 하는데 보기를 들면 ~러, -느님, 국뽕, ~한다는 계획이다, 개-, ~지 말입니다, 째다 따위가 그것이다. 이우기 씨는 “이런 말은 주로 젊은 층의 사사로운 대화에서 오고가는 말인데 어느새 텔레비전 화면이나 신문에서도 보게 된다.”고 지적한다.
넷째 마당은 ‘아직도 중국 귀신을 떨치지 못한 우리말’인데 중국글자말의 그늘을 실감할 것이다. 우천시, 수高했3, 자괴감, 가성비, 대개봉, 품절남 품절녀, 관건, 역대급, 수입산과 같은 말을 놓고 과연 바르게 쓰인 말인지, 바르게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설명한다.
다섯째 마당은 ‘새로 만든 꽤 괜찮은 말’이다. 이우기 씨는 “괜찮은가 아닌가 하는 판단은 주관적이다.”라고 전제하면서도 초록초록하다, 치맥, 엄지척, 멍때리다, 혼밥, 웃프다, 문콕, 심쿵, 어마무시하다, 쓰담쓰담과 같은 말을 잘 만든 새 말로 소개하고 있다. 문법에 어긋나게 만들어진 말들이 앞으로 어떤 변천과정을 거쳐 갈지 지켜보자고 설득한다.
이우기 씨는 책 곳곳에서 언론의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가령 대통령이 “초고소득자에게 세금을 더 물리겠다.”고 기자회견을 했는데 언론은 “슈퍼리치”라는 말을 제목으로 붙였다는 것이다. ‘윈드시어’라는 말을 놓고는 “언론사에서 낯선 외국어를 자꾸 사용하지 말고 국민들이 알아듣기 쉬운 말로 바꾸어 쓸 수는 없었을까.”라고 묻는다. ‘멘붕’을 설명하는 글에서는 “일부 계층에서 신조어ㆍ유행어로 쓰더라도 멀쩡한 언론과 방송인ㆍ정치인들까지 갖다 쓸 까닭은 없었다.”고 꼬집는다. 이우기 씨가 책에서 잘못 쓰인 보기로 든 예문은 거의 대부분 신문, 방송에서 갖고 왔다.
이우기 씨는 ‘들어가는 말’에서 “말과 글에는 그 말과 글을 쓰는 사람의 정신이 깃들어 있다. 새로운 문물이 외국에서 들어올 때 따라 들어오는 말을 그대로 받아서 쓰는 사람과, 이를 어떡하면 쉽고 편한 우리말로 바꿔 쓸 것인가를 고민하는 사람 사이에는 큰 정신의 차이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뒤엣것처럼 생각하는 사람이 정치를 맡게 되고 기업의 경영자가 되고 전문가 집단으로서 영향력을 넓혀 나가면, 외국어ㆍ국적불명어ㆍ잡탕말 들이 우리말 속에 쉽사리 숨어들지 못할 것이다.”라고 강조한다.
이우기 씨는 이 책에서 말과 글에 대한 이야기만 늘어놓은 건 아니다. 정치, 사회 등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를 끄집어내어 비판하는 것을 서슴지 않았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에서부터 증세 문제, 쌀값 문제, 크고 작은 사건 사고 들을 놓치지 않고 화제로 삼는다. 자잘하고 소소한 일상에서 잘못 쓴 말을 찾아내기도 한다. 책을 읽다 보면 말과 글에 대한 문제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의 병리현상에 대해서도 자연스럽게 관심을 갖게 된다. 그 병리현상은 거의 예외없이 말과 글을 통해 세상에 드러나기 때문이다.
말과 글이란 생각을 나누고 소통하는 도구라는 데 대해 동의하면서도 “그러나 말과 글이 단순히 도구이기만 한 것일까?”라고 의문을 품는다는 이우기 씨는 이렇게 주장한다. “말 자체에 생명력이 있어서 많은 사람이 쓰면 살아남고 그렇지 않으면 자연스럽게 죽어 없어진다는 일반적인 논리에 반박하고 싶다. 정부 기관이나 시민 단체가 의지를 가지고 강력히 밀어붙이면 일본말이든 미국말이든 깨끗하게 없애 나갈 수 있다. ‘말 스스로 나서 자라고 죽는다’는 학설은 언어 제국주의자들의 속임수임에 분명하다.”고 일갈한다.
이 책은 ‘주문형 인쇄’(Publish On Demand) 방식으로 펴냈다. 완성한 책은 출판사 누리집에 ‘파일’로 저장되어 있다. 책을 사려는 사람이 출판사 누리집이나 온라인 서점에 주문을 하면 단 한 권이라도 인쇄, 제본하여 발송한다. 주문한 뒤 책을 받아보려면 5~7일 정도 걸린다. 대신 종이 낭비를 하지 않고 절판이라는 개념이 없다. 진주에서는 ‘진주문고’에서도 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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