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왼쪽부터)반기문 전 총장, 정세균대표, 정동영 의원, 손학규 전 대표. | ||
정 대표의 발 빠른 대권 행보에 위기감을 느낀 무소속 정동영 의원과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는 ‘숨 고르기’를 끝내고 당권 및 대권 경쟁에 뛰어들 채비를 갖추고 있으나 녹록지 않은 정치 상황에 직면해 있다. 이해찬·한명숙 전 국무총리와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 등 친노 핵심 인사들도 ‘포스트 노무현’ 경쟁과 맞물려 저마다 ‘대망론’을 꿈꾸고 있는 형국이다.
범민주계 주변에선 지지율이 답보상태를 면치 못하고 있는 기존 잠룡들로는 차기 대권에서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는 비관론이 대두되면서 경쟁력 있는 제3의 인물을 대권주자로 영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범야권 일각에선 본인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범야권 차기주자로 급부상하고 있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을 비롯해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 등이 구체적인 영입 후보 명단에 오르내리고 있는 실정이다.
하한정국이 무색하게 ‘그들만의 대권전쟁’이 점화되고 있는 범민주계의 심상치 않은 대권 방정식 속으로 들어가 봤다.
경쟁력 있는 제3의 인물을 대권후보로 영입해야 한다.”
8월 5일 기자와 만난 민주당 핵심 당직자 A 씨가 던진 일성이다. A 씨는 “이명박 정부의 실정과 ‘조문정국’ 등 각종 호재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이 대안 야당으로 입지를 확고히 다지지 못하고 있는 이유 중 하나는 당내에 유력한 대권후보가 없기 때문”이라며 이같이 주장했다.
A 씨는 이어 “정세균 대표가 장외투쟁을 진두지휘하면서 고군분투하고 있지만 대중적 인지도가 좀처럼 오르지 않는 한계에 직면해 있고, 정동영 손학규 등 범민주계 잠룡들 또한 지지율 답보상태를 면치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라며 “민주개혁 세력을 통합하고 차기 대권에서 정권 교체를 이루기 위해서는 하루빨리 제3의 인물들을 영입해 경쟁력 있는 대안 정당의 면모를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범민주계 주변에서도 “이대로는 안 된다”는 위기감과 맞물려 ‘제3의 인물론’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정당의 목적이 정권획득에 있다는 관점에서 볼 때 유력한 대권후보가 없는 정당은 식물 정당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고, 경쟁력 있는 대권후보가 우뚝 서야 당 지지율은 물론 지지층도 결집시킬 수 있다는 논리다.
실제로 각종 여론조사 결과 여권의 대표 주자인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지지율은 고공행진을 지속하고 있는 반면 민주당을 비롯한 범민주계 잠룡들은 한 자릿수 지지율에 머물고 있는 게 현실이다. ‘조문정국’ 이후 ‘포스트 노무현’으로 입지를 구축하고 있는 유시민 전 장관이 일부 여론조사에서 10%가 넘는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을 뿐 정 대표를 비롯한 정동영 의원과 손학규 전 대표 등 기존 범민주계 잠룡들의 지지율은 바닥권을 면치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제1 야당인 민주당을 이끌고 있는 정 대표의 지지율과 대중적 인지도는 심각한 상태다. ‘조문정국’과 ‘미디어법 전쟁’ 여파로 민주당의 지지율이 20% 대를 상회하면서 한나라당과의 격차를 좁히고 있지만 정 대표의 지지율은 여전히 1~2%대에 머물고 있다. 대망론을 꿈꾸고 있는 정 대표가 의원직을 버리고 장외투쟁 등을 통해 부족한 야성을 끌어올리는 동시에 대중적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그의 지지율은 좀처럼 바닥권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범민주계 유력한 차기주자로 분류되고 있는 정 의원과 손 전 대표의 사정도 녹록지 않다. ‘민주당 복당’이라는 쉽지 않은 암초에 부딪친 정 의원은 조문정국과 북핵 문제, 미디어 전쟁 등 초대형 이슈가 봇물처럼 쏟아졌지만 무소속 한계에 직면해 이렇다 할 성과물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손 전 대표 역시 칩거가 장기화되면서 당내 지지기반이 눈에 띄게 약화(박스기사 참조)되면서 대권 입지가 크게 흔들리는 위기 국면에 직면해 있다.
정 대표는 확고한 당내 입지를 기반으로 본격적인 대권 행보에 나서고 있지만 지지율을 끌어 올리지 못하고 있고, 그나마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정 의원과 손 전 대표는 각각 ‘무소속 한계’와 ‘존재감 퇴색’이라는 어려운 국면에 처해 있는 상황이다. 이른바 범민주계 ‘대권 빅3’로 분류되고 있는 세 사람 모두 현실적 장벽에 가로막혀 비상구를 찾지 못하고 있는 형국이다.
여기에 ‘조문 정국’ 최대 수혜자로 향후 정치적 역할론에 관심이 쏠리고 있는 친노그룹 역시 일치된 정치 지향점을 찾지 못하 고 의견 충돌을 빚고 있는 실정이다. 이해찬·한명숙 전 총리를 비롯해 안희정 민주당 최고위원, 서갑원·백원우 의원 등 친노 핵심 인사들은 ‘친노 신당론’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이병완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김병준 전 청와대 정책실장, 천호선 전 청와대 대변인 등 참여정부 청와대 핵심 참모진을 중심으로 한 친노 신당파는 구체적인 창당 작업에 돌입한 상태다. ‘친노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한 유시민 전 장관은 신당과 관련해 구체적인 입장을 내놓고 있지 않지만 신당파와 물밑 교감을 나누고 있을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리고 있다.
이처럼 범민주계 ‘대권 빅3’는 물론 친노그룹 핵심 인사들까지 ‘제각각 행보’를 걷고 있어 ‘민주개혁 세력 대통합론’에 찬물을 끼얹고 있는 형국이다. 이는 민주당과 범민주계 주변에서 ‘제3의 인물론’을 부추기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기도 하다. 경쟁력 있는 외부 인사들을 다수 영입해 민주개혁 세력의 대통합과 정권 교체를 위한 동력을 확보해야 한다는 게 ‘제3의 인물론’의 골자다. 또 이들 외부 인사들과 기존 잠룡들 간의 선의의 대권 경쟁을 통해 지지기반을 확대하는 동시에 여권 잠룡들과의 지지율 간극을 좁히는 작업도 병행돼야 한다는 논리에도 힘이 실리고 있다.
범야권 일각에선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을 비롯한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 등이 ‘제3의 인물론’에 부합되는 외부 인사로 거론되고 있다.
특히 반 총장의 경우 최근 모 여론조사기관이 실시한 차기 대선주자 적합도에서 박근혜 전 대표(23.2%)와 1%포인트 차이밖에 나지 않는 22.2%의 지지율로 2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범야권 주자 중에서 유시민 전 장관(12.2%)이 3위를 차지했고, 5위를 기록한 정동영 의원의 지지율은 3.7%에 불과했다는 점에 미뤄 반 총장의 지지율은 그야말로 파격적이다. 반 총장이 범야권 유력한 차기주자로 급부상한 것도 이러한 지지율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하지만 반 총장이 범민주계 차기 대선주자로 나설 가능성은 낮다는 게 정치권 관계자들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반 총장의 임기가 2011년 12월에 종료되고 차기 대선은 2012년 12월에 실시된다는 점에서 시기적 충돌은 피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유엔 사무총장직은 통상 연임이 관례라는 점에서 반 총장이 10년 임기를 다 채울 가능성이 높고, 무엇보다 반 총장 스스로 대망론을 꿈꾸고 있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본인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반 총장은 차기주자 하마평에 자주 오르내릴 것이고, 범야권의 물밑 영입 작업도 은밀히 진행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또 반 총장의 지지율이 급등할 경우 여야를 망라한 차기 대권구도에 상당한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뚜렷한 대권주자가 부상하지 않고 있는 범야권에서는 ‘제3의 인물론’이 탄력을 받으면서 기존 잠룡들의 대권 입지를 뒤흔들어 놓을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정 전 총장과 박 상임이사도 범야권 대안론의 대상으로 거론되고 있다. 정 전 총장은 2007년 대선 때도 여야 정치권으로부터 지속적인 러브콜을 받은 바 있고, 현 정부 출범 후에는 ‘충청 총리론’과 맞물려 총리 하마평에도 오르내리고 있다.
시민사회운동가로 왕성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는 박 상임이사 또한 범민주계 진영으로부터 뜨거운 러브콜을 받고 있다. 박 이사는 그동안 정치권과는 거리가 먼 행보를 보여왔지만 최근 들어 부쩍 ‘정치 행위’로 오해 받을 수 있는 행보를 걷고 있다. 지난 6월에는 국정원의 민간사찰 의혹을 제기해 잔잔한 파장을 일으킨 바 있고, 7월 1일에는 ‘기초지방선거 정당공천제 폐지’를 촉구하는 정치·사회 원로 55명 명단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범야권 차기주자 후보로 물망에 오르고 있는 이들 외부 인사들이 범야권의 러브콜을 받아 들여 차기 대권레이스에 참여하게 될지는 아직 예단할 수 없다. 다만 이들 외부 인사들의 주가가 계속 급등할 경우 기존 범민주계 잠룡들의 불안한 대권 입지와 맞물려 ‘제3의 인물론’은 더욱 탄력을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과연 이들 외부 인사들은 범민주계 권력구도 및 차기 대권지형을 뒤흔드는 핵뇌관으로 부상할 수 있을까. 범민주계의 복잡한 대권 방정식에 정가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