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DJ 서거에 따른 후폭풍은 박 전 대표의 대세론에도 적잖은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잘 알려진 대로 DJ와 박 전 대표의 부친인 박정희 전 대통령은 18년 동안 질긴 악연으로 맺어진 ‘정적’ 관계다. 특히 DJ를 죽음의 문턱까지 몰고간 ‘도쿄 피랍’ 사건은 지금도 정치 호사가들 사이에서 회자되고 있다. 박정희 정권 시절인 1973년 8월 13일 DJ는 일본 도쿄에서 중앙정보부(현 국가정보원) 직원들에게 납치돼 바다에 던져질 뻔했으나 미국의 도움으로 극적으로 살아 돌아왔고, DJ 측은 해마다 이날을 ‘생환기념일’로 자축해 왔다.
DJ가 사경을 헤매던 8월 13일은 공교롭게도 DJ가 36번째로 맞이하는 생환기념일이었다. DJ의 병세가 심상치 않다는 소식을 접한 정·관계 거물들이 앞 다퉈 DJ를 병문안했지만 박 전 대표는 언론의 시선을 피해 광복절 휴일인 8월 15일 오후 조용히 병원을 찾았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박 전 대표가 생환기념일을 병상에서 맞이한 DJ와 부친의 악연이 ‘오버랩’되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 ‘깜짝’ 병문안을 선택한 게 아니냐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정치권 관계자들은 DJ의 추모 열기와 맞물려 그에 대한 재평가 움직임이 본격화될 경우 DJ와 박 전 대통령의 18년 악연도 재조명될 수밖에 없고, 이런 상황이 박 전 대표의 대권 행보에 적잖은 걸림돌로 작용될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박정희 정권 시절 모진 고문과 탄압을 받으면서 죽을 고비까지 넘긴 DJ의 민주화 투쟁사가 재조명될 경우 호남권과 민주개혁 진영을 중심으로 ‘반 박근혜’ 정서가 확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DJ는 2004년 상반기부터 준비한 자서전을 통해 암울했던 군사독재 치하에서 겪었던 정치 보복 및 탄압 사례에 대한 상세한 소회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조만간 출간될 것으로 알져진 자서전이 아버지의 후광을 업고 있는 박 전 대표의 이미지에 적잖은 상처를 남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게 정치권 관계자들의 시각이다.
8월 21일 공개된 DJ의 생전 일기 내용에도 박 전 대통령과의 악연이 기록돼 있다. DJ는 입원하기 전인 지난 6월 2일자 일기에서 “71년 국회의원 선거시 박 정권의 살해음모로 트럭에 치어 다친 허벅지 관절이 매우 불편해져서 김 아무개 박사에게 치료를 받았다”고 기록했다. DJ가 서거 직전까지 박정희 정권 시절에 받았던 숱한 고문과 탄압 후유증에 시달려 왔음을 시사하고 있는 대목으로 정치적 파장을 예고하고 있다.
과연 죽은 DJ는 박 전 대표의 거침없는 대세론에 제동을 걸 수 있을까. 막바지 무더위가 무색할 정도로 그 열기가 식지 않고 있는 DJ 추모 열기와 후폭풍이 박 전 대표의 대권 행보에 어떤 변수로 작용할지 자못 궁금하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