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왼쪽은 환기미술관, 오른쪽은 평창동 가나아트. | ||
“정말 천원이에요?”
버스에 오르면서 맨 처음 물어오는 것은 바로 순회버스 요금. 1천원이 못미덥다는 듯이 말이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에게 미술관은 여전히 낯선 모양이다. 여유있는 사람들의 전유물처럼 여겨오던 미술관이, 그것도 반나절을 순회하는 데 고작 1천원일까 하는 생각일지도 모른다.
미술관 탐방이 여전히 어렵게만 느껴지는 사람, 유명하다는 해외의 박물관 미술관은 비싼 비용을 들여 가봤으면서도 정작 가까이 있는 국내의 미술관은 어떻게 가야 하는지 모르는 사람, 주말이면 시내에 나가기 싫으면서도 집안에서 뒹굴기에 지친 사람, 그리고 더 늦기 전에 낙엽길을 밟아보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서울 인사동에서 ‘미술관 순회버스’가 항시 대기중이다
1. 먹거리 볼거리 쏠쏠한 인사동 인사아트센터
미술관 순회버스는 매일 오후 1시부터 5시까지 매시 정각(사실 시내 교통상황으로 1시5분, 2시10분, 3시15분 정도로 조금씩 늦어지는 경향이 있다) 인사동 인사아트센터에서 출발한다.두 시간 전쯤 미리 인사동에 도착하는 것이 좋다. 인사동에는 항상 전통 먹거리부터 볼거리가 쏠쏠해서 지겹지가 않다.
특히 주말에는 이른 시간에도 외국 관광객들을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기 때문에 조금 복잡하다는 느낌마저 든다. 순회버스 출발 장소는 인사아트센터. 주로 생활미술품을 전시 판매하므로 아기자기한 볼거리가 많은 곳이다. 순회버스를 탄 후에는 식사할 시간이 그리 넉넉하지 않으므로 인사동에서 미리 든든하게 속을 채우고 가는 것이 좋다.
한정식집을 고를 때는 조금 허름해 보이는 곳일수록 오래되고 맛있는 집인 경우가 많다고 한다. 맷돌두부, 콩비지 등의 향토음식을 저렴한 가격에 먹을 수 있는 지리산(723-4696), 항아리에 담겨 나오는 수제비가 일품인 항아리수제비(735-5481), 청송의 달기약수로 만든 영양돌솥밥과, 달기백숙이 유명한 옥정(733-5412) 등이 추천할 만하다.
막 출발하는 순회버스를 놓쳤을 경우, 안국동 방면으로 걸어가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때로는 버스보다 훨씬 빠르기 때문이다. 인사동에서 안국동으로 나와 큰길을 건너(횡단보도를 이용한다) 정독도서관 길로 들어간다.
정독도서관 맞은 편에 아트선재센터가 있고 찻길로 돌아오는 순환버스를 먼저 가 기다릴 수 있다.아트선재센터에서 경복궁길로 나가면 사간동 갤러리 지역이다. 돌아볼 곳이 아주 많다. 넉넉하게 두 시간 정도는 돌아봐야 한다.아트선재센터는 주로 실험정신을 바탕으로 한 작가들의 작품전과 기획전이 자주 열리는 곳으로 유명하다.
인디영화제, 서울여성영화제 등 다양한 문화를 수용하는 공간으로 일반 대중과 친숙하다. 이곳은 주변풍경도 재미있다. 세련된 미술관 풍경 너머에는 1백년쯤 전 세도가들의 거주지 분위기를 채 벗지 않은 옛날 풍경이 짙게 남아 있다. 오래된 목욕탕 굴뚝, 작은 소품 가게, 기와지붕이 남아 있는 오래된 분식점, 리어카에 놓여진 먹거리 등 옛길이 변하지 않은 채로 남아 있다. 기념물이 된 고 윤보선 전 대통령의 99칸 생가도 가까이에 남아있다.
전시관에서는 지금 세계적인 설치작가 다츠오 미야지마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다. 제48회 베니스 비엔날레에 출품돼 호평을 받은 설치작품 외에 8명의 한국 작가들이 참여한 작품이 대형 스크린으로 전시되기도 한다. 아트선재센터 1층에는 Dal이라는 인도요리 전문 레스토랑이 눈길을 끈다.
인도요리도 이색적이지만 봄베이 핑크의 소파와 장미 꽃잎을 띄운 분수대 등 실내 인테리어에서부터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독특한 분위기에 압도된다. 월드컵 이후 히딩크 감독도 다녀간 흔적을 남겨두었다. 점심으로 먹기엔 조금 부담되는 가격이므로 저녁약속 장소로 다시 찾아올 만하다(02-736-4627).
정독도서관과 작은 상점 사이의 골목에는 티벳박물관이라는 이색 박물관도 있다. 입장료는 5천원(일반 기준). 잠깐 들르는 가격으로 다소 비싸다는 느낌이 있지만 볼거리는 알차다는 평가다.
시간 여유가 있으면 사간동 갤러리, 경복궁에서 삼청동으로 가는 길의 멋진 가로수 풍경과 주변의 갤러리를 돌아볼 것을 추천한다. 지방작가를 발굴 지원하는 금호갤러리를 비롯해 국제갤러리, 현대갤러리 등이 있고 건너편 경복궁 돌담을 따라 걷는 맛도 운치 있다. 경복궁 안에는 국립민속박물관과 전통공예전시판매센터가 있다. 삼청동과 청와대 길 사이에 있는 진선북카페는 연령층에 관계없이 책과 문화를 즐겨 찾는 곳이다.
3. 아름다운 뚤과 건물 환기미술관 일대
아트선재센터에서 환기미술관으로 이동할 때는 노란 은행나무의 긴 행렬이 장관인 청와대 길을 지나간다. 순회버스의 이동코스 가운데 가장 느낌이 좋은 드라이브 코스다. 버스는 청와대 앞을 지나 자하문터널을 지나 부암동으로 올라간다.
환기미술관은 서양화가 김환기씨가 작고한 뒤 부인 이향안 여사에 의해 설립된 환기재단이 1992년에 건립한 미술관이다. 작가가 생시에 구상한 현대미술관을 구체적으로 실현한 것으로, 건물 자체의 구조도 흥미롭다. 외벽의 계단을 따라 오르면 건물 전체를 한바퀴 돌아 내려오는 독특한 구조로 각 위치마다 달라지는 북악산 풍경을 감상하기도 한다. 소장품으로는 회화 3백여 점이 있으며 일부 작품을 기획 전시하고 있다.늦가을에 놓칠 수 없는 한 가지는 미술관 입구에서 왼쪽 돌계단을 따라 걷는 것. 돌계단을 따라 담쟁이들이 숨쉴 틈 없이 붉게 타오르고 있어 작은 성에 올라가는 듯한 환상을 느낀다.
미술관 들어가는 골목에서 보면 팔각정으로 오르는 방향에 ‘손만두’라는 간판을 쉽게 찾을 수 있다. 미술관보다 오히려 손만두가 더 유명한 것 같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는 미술관 큐레이터의 추천이니 믿을 만하다. 2대째 만두를 빚어온 전문점으로 만두만 살 수도 있다(02-379-2648).
▲ 1.인사동 2.국제갤러리 3.이응노미술관 4.티벳박물관 5.가나아트센터 뒤편 토탈미술 | ||
다음은 평창동이다. 가나아트에 도착하기 전, 전시가 있는 경우에 한해 이응노미술관과 영인문학관에서 하차할 수 있다. 아담하지만 깔끔하게 지어진 이응노미술관은 12월까지 ‘60년대 이응노 추상화전 墨과 色’을 열고 있다. 관람료 2천원. 동양화가로서 독특한 세계를 구축했던 대가의 작품을 접할 수 있는 기회다. 2층 테라스에서 시원스런 전망과 함께 북악스카이웨이의 팔각정까지 보인다.
이응노미술관에서 언덕으로 약 20분 정도 걸어 올라가면(걸어가기 꽤 먼 코스다. 시간이 촉박하면 다음기회로) 문학평론가 이어령과 그의 부인 강인숙이 설립한 영인문학관이 있으며, 이응노미술관 정면으로 약 10분 정도 거리에 평창동 가나아트가 있다. 평창동 언덕길은 서울에 ‘강남 특별구’가 발전되기 전부터 부촌으로 유명했던 곳. 언덕가 높은 축대 위에 서있는 집들이 워낙 대단해보여 자칫 미술관인 줄 알고 찰칵! 하는 경우도 생겨난다고.
가나아트에는 볼만한 전시회가 끊이지 않는다. 야외 무대에서 음악회나 다양한 이벤트도 자주 열린다. 얼마 전까지 불교미술전이 열리던 전시장에서는 11월1일부터 ‘빛, 공간, 구조’라는 타이틀로 하동철 개인전이 열리고 있다. 좁은 계단을 따라 3층 야외 조각장에 이르면 저마다 독특한 양식으로 지어진 평창동 고급 주택들마저 제각기 작품인듯 한눈에 들어온다. 생활 공예품을 전시 판매하는 공예관에서는 한국전통인형전 ‘흑운’(조선시대 여인의 가발로 장식한 머리모양이 구름처럼 풍성하고 아름답다해서 붙인 이름)이 관심을 끌고 있다. 전시가 끝난 뒤에도 작품 일부는 상설 전시될 예정.
가나아트센터 뒷편으로는 토탈미술이라는 작은 갤러리가 있다. 특이한 구조로 된 이곳에는 같은 이름의 카페가 있으며 미술계 인사들의 담소 장소로 이용되곤 한다(02-379-3994).가나아트센터에서 인사동으로 가는 마지막 순회버스는 5시35분에 있다.
박수운 프리랜서 tour@ilyo.co.kr
[순회버스 이용안내]
매일 오후 1시부터 5시까지 매시 정각 인사동에서 출발한다. 1천원짜리 한장의 티켓으로 원하는 미술관 앞에서 내린 후 1시간 뒤에 오는 다음 버스를 계속해 이용할 수 있다.
인사아트센터(정시출발)-아트선재센터(5분소요)-환기미술관(10분)-가나아트센터(25분)
▶타는 곳: 평일은 인사동 인사아트센터 앞. 주말은 안국동쪽 입구 크라운베이커리 앞 관광안내소에서 출발. 지하철 3호선 안국역 6번 출구.
▶순회버스 관람권 구입: 버스에 오르면 기사아저씨에게서 직접 구입한다. 1천원.
▶문의: 인사아트센터 ☎ 02-736-1020. 월요일은 대부분의 미술관이 휴관하므로 버스가 운행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