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촌역에서 내려 한시간쯤 구곡폭포 옆길을 따라 오르면 도시곁의 오지 문배마을(왼쪽 아래사진)이 나타난다. 오른쪽 아래 사진은 구곡폭포. | ||
기차가 종점에 다다르기 전 강물 위 높은 다리를 바라보고 내리면 강촌역. 오래 묵은 낙서들은 추억처럼 번져 있다. 멀지 않은 곳에 구곡폭포를 품은 봉화산 자락은 자전거를 탄 사람들로 늘 붐비지만 요즘은 인라인을 즐기는 사람들도 쌩쌩 바람을 가르고 달린다.
길은 세 갈래. 어느 길을 선택해도 좋다. 오르는 내내 가쁘지 않은 호흡에 차오르는 맑은 공기가 혈관까지 흘러든다. 주차장 매표소에서 오른쪽으로 난 능선은 폭포를 지나 잘 다듬어진 잣나무숲길로 접어들고 왼쪽 길은 다시 차량 통행길과 등산로로 나뉜다.
많은 사람들이 구곡폭포 옆 작은 이정표가 가리키는 곳을 따라 산을 오른다. 오르는 시간도 세 길 중 가장 짧은 40분 정도면 충분하다. 오르막길이 끝나는 곳의 언덕에는 오가는 사람들이 따뜻한 커피와 음료를 파는 손수레가 보인다. 문배마을은 그 언덕 너머에 있다.
차량 통행길은 마을주민들에게만 허용하고 있다. 산꼭대기까지 편히 앉아 자동차로 오르던 사람들도 여기서는 별 수 없이 운동화 끈을 조여 매야 한다. 찻길이라 완만한 이곳으로는 어린아이를 데리고 두 시간 가까이 쉬엄쉬엄 오르는 사람들이 보인다. 거친 돌들이 그대로 드러나 있어 가끔 지나는 차들이 오히려 힘겹게 덜컹거린다.
등산로로 오르는 초입에 서있는 이정표는 ‘문배마을 30분’이라고 적혀있지만 숨가쁘게 달리지 않는 이상 어림도 없는 시간이다. 보통걸음으로도 한 시간은 족히 걸린다. 바쁘게 오를 이유가 없다면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산의 정경이 주는 행복감을 느끼며 걷는 것도 좋을 듯하다. 이파리 없는 나무들은 빈 겨울 하늘을 바라보고, 그 아래로 걷는 사람들의 푹신하게 깔린 낙엽 밟는 소리가 유난히도 사그락거린다.
오르막길, 내리막길, 반가운 손님처럼 눈앞에 나타나는 작은 시냇물과 돌다리. 어느 곳에나 앉아 오랜 시간을 보내고 싶을 만큼 흐뭇한 길이다.
어느새 나무들 사이로 하늘빛 연못이 보이는가 싶더니 산길은 거기서 끝나 마을에 다다랐음을 알려준다.
▲ 15년 전 전기가 들어오면서 ‘깡촌’은 면했지만 푸근했던 옛 정경은 그대로다. | ||
오래 전에 30호는 됐다던 이 마을에 빈집들이 늘어나고 이제 양철지붕은 녹슬고 흙담마저 무너져가고 있는 모습이 눈에 많이 띈다.
전기가 들어온 지도 겨우 15년 전이고 얼마전까지 휴대폰도 터지지 않았다는데, 지금은 서울 가까운 오지마을이라며 찾아드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바람에 매끈하게 길들여진 흙길 옆으로 가로등이 매달려 이제는 오지라는 이름을 벗어버린 것 같다.
봉화산과 검봉산의 중간쯤, 대대로 산나물을 뜯고 농사를 지어 생계를 유지해왔던 이 마을 사람들이 낯선 방문객을 맞아 장사를 시작한지는 10여 년 정도 된다. 이씨네 한씨네 김가네 신가네 그리고 큰집. 부르기 편한 이름의 간판들이 걸린 마을은 뜰마루건 안채건 자리를 잡고 앉아, 시켜놓은 손두부 동동주에 입담을 즐기는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가득하다.
이곳도 젊은이나 어린아이가 없는 건 마찬가지라 두부를 만들고 메밀 파전을 부치고 산나물 무치는 손도 모두 늙으신 어머님의 그것. 그래서인지 음식마다 유난히 토속적이고 깊게 밴 고향맛이 진하다. 한적하기 이를 데 없는 이곳이 주말이면 이렇게 동네 잔치하듯 여기저기 맛난 음식들로 가득하다.
춘천 시내에 사는 사람들까지 외식하러 이곳을 찾는다고 한다. 토종닭요리라도 시키면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널따란 마당에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몰려나와 족구를 즐기며 닭이 익기를 기다린다.
어느 집 마당이나 운동장처럼 공간이 넉넉해 겨울바람 매서운 줄 모르고 뛰노는 아이들 모습이 귀엽다. 군불로 뜨거워진 아랫목에서 기나긴 겨울밤을 보낼 수도 있다. 마을의 열 가구 중 여덟이 민박을 한다. 윗목 한 귀퉁이에서는 동동주 익어가는 냄새가 방 안 가득 퍼지고 있다.
▲ 수확을 끝낸 문배마을 조랑밭(아래 왼쪽). 찾아드는 사람들이 늘면서 집집마다 민박과 요리를 한다. | ||
문배마을이란 이름이 생겨난 것도 배나무와 관련이 있긴 하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2백 년 전쯤 마을 입구에는 엄청나게 큰 두 그루의 문배나무가 있었다고 한다. 또 하나는 이 마을의 형태가 짐을 가득 실은 돛단배처럼 보여 이런 이름이 생겨났다고도 한다.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는 큰집의 한진영씨(33)는 문배마을에서 가장 젊은 남자다. 태어나 자란 곳이 이곳 문배마을이지만 초등학교 2년간은 매일 20리 산길을 걸어 다녔다고 한다.
“할 수 없이 3학년 때부터는 할머니, 누나랑 시내에 나가 자취생활을 했어요. 학교 졸업하고는 춘천시내에서도 살다가 서울에서 직장생활도 몇 년 했지만 도저히 답답해 못 살겠더라구요. 다시 고향에 돌아와서 주말이면 어머니를 도와 닭도 잡고 이것저것 실어 나르기도 하고 어쨌든 이것저것 신경 쓸일 없이 맘 편하게 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