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슬아슬 줄타기 공연. 재기있는 발놀림을 보고 있자면 더위는 어느새 사라진다. | ||
지방도시 같으면 주변 아무곳으로나 나가도 계곡이나 바다를 찾을 수 있겠지만, 서울 주변에서 상황은 또 다르다. 웬만큼 가서는 도시의 열기를 잊을 수 있는, 그리고 재미있는 여행지를 찾기가 쉽지 않다.
경기도 안성은 그런 조건을 충족하는 곳이다. 멀지도 않고, 그러면서 농촌 분위기도 있고, 자연도 있고, 적당히 도회적이기도 하면서 전통 문화가 살아숨쉬는. 마침 청포도 무르익는 안성으로 떠나보자.
온몸을 물에 담그는 바캉스는 아니지만, 태평무 공연과 남사당 전통놀이에 흠뻑 젖어볼 수 있는 안성으로의 여행은 마음을 담그는 여행이다.
기대하지 않았던 여행지에서 맛보는 만족은 기쁨이 훨씬 크다. 바캉스를 미처 준비하지 못한 오너드라이버라면 안성이 제격. 주말 상설공연이 열리는 토요일도 노려볼 만하다. 이곳에서 볼 수 있는 공연은 전통 태평무와 남사당 공연이다.
먼저 자연을 맛보자. 안성에는 청룡사와 석남사, 칠장사 등고찰이 있다. 세 곳 다 들러볼 만하지만 저녁의 남사당 공연을 보기 위해서는 남사당패들이 가까이 살았던 청룡사를 먼저 들러보는 게 좋다.
안성에서 가장 내로라 하는 서운산(547m) 남쪽 기슭에 청룡사가 있다. 길게 늘어선 포도밭을 지나 청룡사 입구에 도착하면 먼저 저수지가 반긴다. 풀숲에 들어앉아 고기를 낚는 낚시객들을 뒤로 하고 둑을 지나면 자그마한 마을 안쪽에 청룡사가 자리잡고 있다.
고려 원종6년(1265년) 명본국사가 지어 대장암이라 하였으며 그 후 공민왕13년(1364년) 나옹화상이 크게 중창하여 청룡사로 고쳐 불렀다고 한다. 나옹화상이 구름을 타고 내려오는 청룡을 보았다는 데서 유래한 이름이다. 그 뒤 청룡사는 1900년대 이 지역에 둥지를 튼 남사당패와의 인연으로 더 유명해졌다.
남사당은 농사철이 시작되는 봄부터 추수가 마무리되는 가을까지 마을을 떠나 천지사방을 떠돌며 살다가 추운 겨울이 되면 이곳 둥지로 찾아들었다. 남사당이란 신분이 천시되는 시절. 이들에게는 마을 출입마저 수월치 않았지만 절집의 일손을 거들면서 겨울을 났다.
▲ 야외에서 펼쳐지는 남사당 풍물 여섯마당 놀이. | ||
본명은 김암덕(金岩德·1847∼1870)이며 출생지는 분명치 않다. 다만 다섯 살에 남사당에 들어가 15세에 꼭두쇠(우두머리)가 되었다고 한다. 바우덕이는 꼭두쇠로서 뛰어난 기량을 지녔을 뿐 아니라 미모 또한 빼어나 많은 사내들의 가슴을 태우고, 보는 사람들을 매혹시켰다고 한다. 바우덕이는 경복궁 중건 때에도 뽑혀와 나랏님 앞에서 소고와 선소리를 하였다고 한다. 그곳에서 대원군과의 만남을 갖게 되고 대원군은 일꾼들을 신명나는 세계로 인도하는 그의 예술성을 칭찬하여 옥관자를 하사하였다.
‘바우덕이 소고만 들어도 돈 나온다/바우덕이 치마만 들어도 돈 나온다/바우덕이 줄 위에 오르니 돈 쏟아진다/바우덕이 바람결에 잘도 떠나간다’
하지만 바우덕이는 사당패를 이끌고 악전고투하다가 거리에서 병을 얻어 죽었다고 한다. 90년대까지 돌보는 이 없이 잡초 속에 방치돼있던 바우덕이 묘는 1989년 안성 남사당놀이가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한 것을 계기로 되살려졌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1998년 마침내 서운산 밤나무골 양지바른 비탈에 바람처럼 살다간 그의 묘가 단장되었다.
청룡사에서 5백m 정도 올라가면 불당골이 있는데 이곳이 남사당패를 이끌던 여장부 바우덕이가 살던 곳이라고 한다. 지금은 여름철 마시고 춤추는 향락객들만 가득하다.
다음으로 찾을 곳은 태평무전수관(031-676-0141~2, 안성시 사곡동)이다. 매주 토요일 오후 4시부터 공연이 펼쳐진다.
자그마한 전시관 앞. 정원 잔디밭에는 쉴 수 있는 의자 몇 개가 놓여 있다. 가족들은 하나둘 공연장 앞으로 모여들고 뒤에는 언제나 많은 사진가들이 대기하고 있다. 에어컨이 있지만 무더위가 느껴지는 공연장. 하지만 더위쯤은 공연의 열기에 묻혀 어느 순간엔가 사라지고 없다. 태평무를 시작으로 장고춤 부채춤 북춤 무당춤 등이 연이어 펼쳐진다.
나라의 태평성대를 기원하는 뜻에서 왕과 왕비가 춤을 추는 내용을 담고 있는 태평무가 우아하다면 부채춤은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준다.
가장 신명나는 것은 무당춤. 무희의 움직임에 관중도 어깨를 들썩이며 ‘얼쑤∼’ 추임새를 넣기도 한다. 진한 화장에 한결같이 웃고 있는 무희들에게서는 힘든 연습을 통해 얻어진 완성미가 느껴진다.
태평무는 안성의 한성준 선생에 의해 크게 중흥된 한국 근대무용의 뿌리다. 춤꾼 최승희를 이어 현재는 무형문화재 기능보유자인 강선영 선생이 전시관을 운영하고 있다. 공연은 1시간이지만 마냥 짧기만 하다. 입장료는 없으며 태평무 배울 사람을 수시로 모집하고 대회를 열기도 한다.
▲ 대접돌리기 공연 모습. | ||
비오는 날 이외에는 야외 상설 무대에서 열린다. 네모진 공연장 계단은 관람객으로 인산인해.
“덕아 덕아 바우덕아, 바람에 손목 잡혀 이 세상에 왔느냐, 길 따라 가도 편히 못 가는 인생, 어찌하여 너는 외줄을 타려 하느냐.” 처량하면서도 구성진 바우덕이 노랫가락이 울려 퍼지는 전수관 앞마당. 안성시립 남사당 바우덕이 풍물단의 공연이 시작된다. 신나는 북 장단을 시작으로 이어 여섯 마당 공연이 이어진다.
살판(땅재주), 덧뵈기(가면극)가 끝나면 네 명이서 서로 바꿔가며 기교를 펼치는 버나(대접)돌리기가 이어진다. 공연장 중앙에서 이내 가면극(덧뵈기)이 펼쳐지면 아이들은 신기한 표정을 지으며 공연에 흠뻑 빠져든다.
공연의 백미인 줄타기(어름). 줄타기의 명인은 세 명. 상황에 따라 돌아가면서 줄타기 시연을 한다. 이번 공연은 어린 여학생. 외줄을 오가며 펼치는 한바퀴 돌기, 외무릎 꿇기, 양발 들어 코차기 등 아슬아슬한 묘기가 보는 이들의 가슴을 철렁 내려앉게 만든다. 묘기에 매료된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돈을 내기도 한다. 구전을 줘서 그런지 줄타기는 더욱 탄력을 받는다.
줄타기 뒤에 신나는 풍물놀이가 이어진다. 칠흙 같은 어둠을 비추는 조명등 사이로 땀을 뻘뻘 흘리며 심취된 농악단의 몸짓과 북소리에 모두 하나가 된다. 12자짜리 상모가 돌아갈 때쯤이면 공연은 최고조에 달한다. 이것이 끝은 아니다. 관중과 공연단이 함께 어우러지는 뒤풀이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뜨거운 여름 열기는 통하지 않는다.
바우덕이 상설공연은 4월부터 10월까지 이어지며 10월에는 바우덕이축제가 펼쳐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