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과 바위가 만난 ‘기와집몰랑’. 바위능선이 기와지붕처럼 보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 ||
여수항에서 거문도까지 큰 파도가 없는 날이라면 큰 배라서 불편은 없다. 일부 속설과 달리 거문도는 섬이 검어서 붙여진 이름이 아니라 큰 글자 또는 문장을 의미하는 거문(巨文)이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거문도 서도의 수월산 아래 바다 속에는 길이 30m나 되는 거대한 남근형 바위가 있어다고 한다. 이 바위의 정기를 받아 이곳에서 대유학자가 태어났고, 이 바위를 일명 ‘문필암’이라 부른다는 것이다. 또 다른 얘기로는 조선시대 중국 청나라 제독 정여창이 이 섬에 들어와 김유라는 대학자와 필담을 나누다가 그의 문장력에 탄복하여 거문도라 이름을 지었다고도 한다.
거문도는 크게 동도와 서도, 그리고 고도 등 세 개의 섬으로 나뉜다. 뭍에서 온 배가 처음 닿는 곳이 면소재지인 고도다. 면적은 세 섬 가운데 가장 작지만 면 소재지라서 수협, 어판장, 여관, 식당 등 주요시설이 모여 있다.
부두에서 마을 길을 따라 걸어가면 어판장. 가을철 갈치잡이가 한창이어서 곳곳에 눈부시게 빛나는 은빛 갈치가 상자마다 가득하다. 섬 마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정겨운 돌담 사이로 걸어 해안 언덕에 오르면 영국군 묘지를 만날 수 있다. 영국은 러시아의 남하정책을 견제하기 위해 1885년(고종 22년) 4월, 군함 6척과 수송선 2척으로 구성된 해군선단을 거문도에 주둔시켰다. 철수 당시 영국군 묘지는 7~9기가 있었다고 하지만 현재는 3기만 확인될 뿐이다.
서도는 트레킹에 알맞은 능선이 잘 발달돼 있다. 보통 유람객들은 거문도 등대를 찾아보는 것으로 만족하지만 이곳까지 들러 서도의 신선암을 들러보지 않는다면 먼길을 찾아온 시간이나 비용이 아까워질지도 모른다.
서도의 산들은 높지는 않지만 넓게 펼쳐져 규모가 제법 크다. 산에 이름도 딱히 없으나 정상 부근에 붙인 불탄봉을 비롯하여 여러 기암괴석과 봉우리마다 붙은 이름들이 종주 트레킹의 목표들이다. 산행코스는 여러 갈래다. 아주 가벼운 산행을 원한다면 유림해수욕장 방면에서 왕복 2~3시간 정도 걸을 수 있다. 하지만 섬 전체를 걸어보겠다면 불탄봉에서 보로봉을 거쳐 거문도 등대로 이어지는 5km(8시간 소요) 코스가 있다. 시간 사정에 따라 중요한 부분만 잘라서 즐겨도 좋다.
▲ 뭍에서 온 배가 처음 와 닿는 고도. 거문도는 동도, 서도, 고도로 이루어졌다(위). 불탄봉에서 바라본 서도 전경. 불이 자주 나 이름도 ‘불탄봉’이라고. | ||
숨을 돌리면서 산 밑 풍광을 감상한다. 고도와 동도, 그리고 초도 손죽도 등 크고 작은 주변의 섬들이 마치 지도처럼 눈앞에 펼쳐진다. 정상 주변엔 일제 때 만들어진 지하 벙커 두 개가 있다. 풀숲에 뒤덮혀 안으로 들어갈 수 없으며 박쥐만 서식하고 있다.
연이어 오르막 내리막길이 이어진다. 누가 갖다 놓은 것처럼 칼처럼 긴 바위 하나가 있는 절경이 있고, 억새 군락지도 만난다. 거문도가 가장 아름다운 때는 억새가 피어 바닷바람에 흔들릴 때라고 한다. 억새가 하늘거리는 10월부터 동백꽃도 피어난다고 하니 얼마나 따뜻한 곳인가. 대신 바다 바람이 센 탓인지 키는 크지 않다.
등대쪽 바다가 보인다. 깍아지른 듯한 절벽 위 산능선에서 바라보는 바다 풍광을 어찌 육지나 뱃길에서 보는 풍광에 비할 수 있을 것인가.
이제 막바지 힘을 쏟아야 할 때. 멀리 신선바위가 손짓하고 있기 때문. 가는 길목에는 바다와 산이 조화를 이루는 ‘기와집몰랑(용마루)’이라는 바위 능선이 펼쳐진다. 바다나 불탄봉에서 보면 마치 기와지붕처럼 보인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기와집몰랑에 안개가 자욱히 끼면 기와 지붕 형태가 더욱 뚜렷하다. ‘거문도 팔경’ 중의 하나다.
비경에 넋을 잃다가 고갯길을 내려서면 돌로 둘러쌓은 사각 우리가 나선다. 방목 염소들을 가두기 위한 우리다. 이곳에는 등산로 표지가 있다. 사람들이 단거리로 많이 찾아드는 유림해수욕장쪽에서 시작되는 등산로다. 다시 한 고개를 더 넘어서는 신선바위(115m)는 멀리서 보면 올라가는 길이 험하고 위태로워 보이지만 막상 다가서면 누구나 오를 수 있을 정도로 길이 잘 나 있다. 잠시 신선이 된 듯한 착각에 빠지게 되는 선경이다. 가을 하늘의 맑은 구름이 떠다닌다면 신선의 경계가 따로 있겠는가.
이곳에는 여름이면 자연 무화과 열매가 지천으로 열린다. 흔히 볼 수 있는 무화과보다 크기는 아주 작고 단맛도 적지만 건강에는 최고란다. 포도알처럼 검게 익은 자연산 무화과가 곳곳에 따는 이 없이 땅에 떨어지고 있다.
거문도 여행에서 일반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드나드는 곳은 거문도 등대가 있는 수월산(196m) 끝자락. 고도에서 아치형의 삼산교가 섬을 이어주고 있다. 바다를 건너고 가파른 산길을 오르면 동백나무 군락이 나선다. 워낙 빽빽해서 길이 어두울 정도다. 이내 평평한 산허리로 난 숲길을 따라 20여 분 정도 걸어가면 반도 끝자락에 하얀 등대와 관백정이 모습을 드러낸다.
등대는 꼭 1백 년 전인 1905년 4월 준공, 점등되었다고 한다. 방파제 위에 들어앉은 등대와는 비견되지 않는 바다 풍광이 사방으로 펼쳐진다. 확 트인 바다 너머로 사그라드는 낙조가 장관이다.
▲ 동백 터널(왼쪽)과 갈치 어판장. | ||
백도는 거문도항에서 동쪽으로 28km 떨어져 있는 무인도로 주변에 39개의 작은 섬을 거느리고 있다. 매바위, 서방바위, 병풍바위, 형제바위 등 갖은 사연과 전설이 담긴 기암괴석들이 바다 위로 솟구쳐 있다. 상백도, 하백도로 나뉘는데, 안내원이 설명을 잘해준다. 전설에 따르면 일찍이 섬 전체의 봉우리가 백(百)개에서 하나가 모자라 백도(白島)라는 지명이 붙었다고도 하고, 멀리서 보면 섬 전체가 흰 빛을 띠고 있어 그렇다는 이도 있다. 생태계 보호를 위해 일반인들의 상륙은 금지돼 있다.
백도는 망망대해에서 첫 모습을 드러낼 때와 배가 떠나올 때 아련히 실루엣으로 비치는 형태가 가장 아름다운 것이 아닐는지. 배가 멀어지면서 알 수 없는 그리움처럼 아스라이 형체만 남기는 백도다.
▲ 볼거리: 조선시대 유학자로 유명했던 귤은 김유를 기리는 거문사, 유학자 만해 김양록을 기리는 서산사 등의 역사 유적이 있다. 서도에는 ‘거문도 뱃노래’ 전수관이 있다. 거문도 주변의 해역은 고기떼가 훤히 보일 정도로 물이 맑으며, 특히 성어기에는 각지에서 고기잡이배들이 몰려와 불야성을 이룬다.
▲교통: 현지 사정에 따라 변화가 심하므로 사전문의 필수. 여수여객선 터미널에서 하루 6회 운항. (주)온바다 061-665-7070, 663-2191. (주)청해진해운 663-2824. 백도는 거문항에서 유람선 이용. 1인 1만원. 거문도관광여행사(www.geomundo.or.kr 080-665-4477)를 다양한 패키지 상품을 이용할 수 있다. 거문도의 서도리에서 거문도 등대까지 능선을 타는 종주코스(8시간)와 불탄봉에서 시작하는 반주코스(5시간), 유림해수욕장에서 산을 타는 기본코스(3시간) 등 다양한 패키지 상품을 판매한다. 섬 내에 개인 차량을 가져갈 수 없으며, 단체 이용이 가능한 승합차 택시가 운행된다. 1만원 내외.
▲별미 & 숙박: 가을철에는 갈치가 제철. 은갈치회와 구이가 있다. 고도항 매일횟집(061-666-8478)은 새우를 넣어 끓인 미역국이 시원해 조식으로 괜찮다. 삼도식당(665-5946)은 갈치회, 서도의 장촌타운(665-1329)은 직접 잡은 해물구이 바비큐가 일미다. 여수에서는 각종 회가 한상 가득 오르는 한일관(642-5600)의 정식과 원앙식당(664-5567)의 꽃게장백반(5천원)이 괜찮다. 숙박은 한일관과 인접한 여수 로또모텔(061-654-3700)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