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진 부산대학교 교수
[부산=일요신문] 하용성 기자 = 김성진 부산대학교 교수는 예비후보 등록 첫날인 지난 13일 가장 먼저 등록을 마쳤다. 예비후보 등록 이후 기자회견을 갖고 국제시장 등을 돌며 본격적인 지지세를 다졌다.
부산대에서 국문학과를 전공한 김성진 교수는 고교시절부터 정치에 관심이 많았다. 대학 재학 당시 문예부 동아리인 ‘전원문학회’ 선배들이 긴급조치 위반으로 고생하는 것을 보고 격분해 교복차림으로 동래경찰서 옆에 있던 신민당 부산시당을 직접 찾아 입당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김성진 교수는 이 같은 배경에도 불구, 자신이 보수주의자임을 분명히 했다. 김 교수는 “교육은 보수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보수는 부족한 것을 메우고 지킬 것은 지키는 것을 의미한다. 보수와 진보를 구분하는 것은 잘못됐다. 흑백논리로 양극화를 만들지 말아야 한다. 따라서 이른바 진보교육감이란 말은 잘못됐다. 게다가 진보교육감 체제에서 무엇이 바뀌었는지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근시안적으로 교육 개혁을 추구해서는 안 된다. 교육은 백년대계라고 하는 이유는 오랜 시간을 두고 신중에 신중을 기해 시행착오 끝에 결정돼야 하기 때문”이라며 “결코 교육이 실험의 대상이 돼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김성진 교수는 현재 부산의 교육이 짊어지고 있는 문제점으로 ‘교권실추’, ‘궤상공론식 행정’, ‘경쟁력 약화’ 등을 거론했다. 김 교수는 “이 가운데 교권실추가 가장 심각하다. 이는 급진적 교육운동가들이 ‘학생인권조례’로 교사들의 교편을 빼앗은 까닭”이라며 “이 조례는 ‘인권’이라는 그럴싸한 명분을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동성애 옹호, 학생들의 임신 허용, 동성혼인 등 기존의 전통적인 윤리를 파괴하는 반교육적·반전통적·비윤리적인 규정들이다”라고 밝혔다.
김성진 교수는 자신의 교육 슬로건을 ‘희망찬 교육, 안전한 학교, 합리적인 행정’으로 내세웠다. 김 교수는 “현재 학교 현장에는 볼멘소리가 흘러나온다. 한 두 곳이 아닌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며 “먼저 모 중학교 교장은 ‘ 목적사업비는 정해진 목적으로만 집행할 수 있어 멀쩡한 창과 화장실을 뜯기는데 반해, 정작 학교에 문제가 있는 부분은 현실적으로 개선할 수 없다’고 한숨을 쉬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김 교수는 “교육청 관계자와 교육 전문가들도 ‘매년 반복되는 목적사업비는 줄이고 학교기본운영비를 늘리는 것이 중요한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며 개선 노력이 미온적임을 문제 삼고 있다”고 말했다.
김성진 교수는 교육행정에 있어서도 정확한 진단과 처방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예를 들어 감기 걸린 중증 암환자에게 필요한 것은 당장 환부를 도려내고 치료 하는 것이 급선무인데 그것보다 가벼운 감기 치료를 한다면 환자의 생명은 어떻게 되겠는가”라고 물은 뒤, “결국 병을 치료하려면 정확한 진단이 필요하고 처방이 뒤따라야 하는데, 만약 의사가 오진을 하게 되면 예상치 못한 엉뚱한 결과로 위험한 상황에 처할 수 있다. 이렇듯 전시행정은 반드시 지양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쟁력 있는 학원 행정을 펼치겠다는 의지도 피력했다. 김성진 교수는 “교육감이 된다면 반드시 경쟁력 있는 학교를 만들겠다. 먼저 전수조사를 실시해 우선순위를 정하고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예산집행이 될 수 있도록 하겠다. 취임 즉시 실태를 파악하고 즉각적이고 능동적인 자세로 문제점을 해결해 나가겠다”면서 “현실감 있는 교육감으로서 학교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정확한 진단과 처방을 내릴 것을 약속한다. 어설픈 현장파악으로 혈세가 낭비되는 일은 결코 용납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김성진 교수는 불우했던 과거에 대한 회상도 떠올렸다. 김 교수는 “대학을 졸업하고 고등교사가 될 때까지 언제나 궁핍했다. 특히 유년시절부터 중학교 시절까지는 충남 강경의 금강애린원에서 생활했다. 지금의 젊은이들은 상상이 되지 않을 것”이라며 “배가 고파 이리 저리 다니면서 아카시아꽃을 훑어 먹고, 개구리를 잡아 다리를 삶아 먹었다. 아무 밭이건 무를 뽑아 씹어 먹곤 했다. 그야말로 영락없는 꽃제비 형상이었다”고 전했다.
이어 “때문에 ‘고아원 애’라는 호칭과 함께 생활기록부에는 늘 ‘영양실조’라는 말이 기재돼 있었다. 70년대 초 유행했던 이용복의 ‘가엾은 어머니 왜 나를 낳으셨나요?’라는 노래가 내 삶과 닮아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김 교수는 “유년시절을 겪고 부산대 재학 시절에 풀빵 틀을 돌리며 희망을 키웠다. 풀빵 장수에 군고구마 장수, 말 리어카 등 셀 수없이 많은 일을 하며 끼니를 때우고 생계를 유지했다. 눈물로 만든 좁쌀 밥을 먹으며 ‘눈물 섞인 빵’을 구웠다”고 전했다.
김성진 교수는 이렇게 어렵게 유소년 시절을 보내고 힘들게 대학을 졸업했다. 이후 1984년 금성고교 국어교사를 시작으로 부산여상 등에서 교직생활을 지냈다. 1991년 덕문여고에서 교사를 사직하고는 1992년 3월 그렇게 갈망하던 모교인 부산대 교수가 됐다.
2012년부터 2014년까지 부산대학교 인문대학장을 맡았고, 같은 기간 포럼 신사고 공동대표도 역임했다. 2015년에는 일본 교토대문학부 외국인 초빙학자로 활동하기도 했다. 현재 부산대 한문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전국학부모교육시민단체연합 상임공동대표와 월간 ‘좋은 만남’ 공동발행인 겸 편집인을 겸하고 있다.
김성진 교수는 인터뷰 말미에 “가야 할 길이 있기 때문에 가고, 해야 할 일이 있기 때문에 한다”며 “소신이 뚜렷한 만큼, 자신감 있는 태도로 선거에 임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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