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1차 레이스를 펼치는 윤성빈. 평창사진공동취재단
[일요신문]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의 열기가 뜨겁다. 대한민국은 18일 오후 현재 금메달 3개 동메달 2개로 종합 9위를 달리고 있다. 대한민국이 종합 10위권 내에 안착하게 된 원동력은 역시나 ‘전통의 메달밭’ 쇼트트랙의 역할이 컸다. 대한민국이 획득한 5개의 메달 중 쇼트트랙에서만 3개를 더해 효자 종목으로서의 면모를 과시했다. 이외에도 세계랭킹 1위에 오르며 기대감을 높였던 스켈레톤의 윤성빈이 금메달 1개를 추가했다. 그는 압도적인 실력으로 설날 아침 경기를 지켜보던 팬들을 환호하게 만들었다. 이에 일요신문은 대한민국의 금메달리스트 임효준, 윤성빈, 최민정이 금메달을 따기까지 겪은 특별한 여정을 되돌아 봤다.
대한민국에 첫 금메달을 안긴 임효준. 평창사진공동취재단
그동안 대한민국은 동계올림픽에서 쇼트트랙, 스피드·피겨 스케이팅 외에는 올림픽 출전조차 힘들었다. 하지만 안방에서 열리는 평창 올림픽만큼은 반쪽짜리 대회로 치를 수 없었다. 설상, 썰매 종목 등에서 많은 투자가 이뤄졌다.
그럼에도 대한민국의 믿을 구석은 역시나 쇼트트랙이었다. 대회 개막 이틀째인 10일, 쇼트트랙 남자 1500m에 나선 임효준은 대한민국에 첫 메달을 선사했다. 이는 지난 대회인 2014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쇼트트랙 남자 ‘노 메달’의 수모를 씻는 쾌거이기도 했다.
대회 개막 전부터 유력 메달 후보로 점쳐졌던 임효준이지만 그에게도 아쉬운 점은 존재했다. 특히 일각에서는 그의 경험부족을 약점으로 꼽기도 했다.
10대 시절부터 두각을 드러내는 정상권 쇼트트랙 선수들과 달리 임효준은 이번 2017-2018시즌이 시니어 무대 데뷔 시즌이다. 성인 무대를 처음 경험하고 있는 선수가 올림픽 금메달을 목에 건 것이다.
하지만 그의 급부상이 마냥 갑작스러운 일만은 아니다. 임효준은 2012년 인스부르크 청소년 동계올림픽에서 메달 2개를 획득한 촉망받는 유망주였다. 그가 두각을 드러내기까지 앞을 가로막은 것은 다름아닌 부상이었다.
국제대회 우승을 차지한 중학교 시절부터 성인 태극마크를 달기까지 그는 일곱 번의 수술을 거쳐야 했다. 본인의 선수생활 중 가장 힘들었던 순간으로 고교 시절 2년간의 부상을 꼽곤한다. 발목이 부러지며 세 번의 수술을 받았고 허리도 부러지며 부상에 신음했다.
고교생활을 마무리하며 몸을 추스르기 시작했다. 2016-2017시즌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10위를 하며 자신감을 찾았다. 온전한 몸상태로 참가한 이듬해 선발전에서는 결국 1위를 거머쥐었다.
꿈에도 그리던 국가대표에 발탁된 임효준은 첫 대회인 부다페스트 월드컵부터 실력을 과시했다. 1000m와 1500m에서 1위, 500m에서 2위를 차지하며 개인전 전 종목에서 입상했다.
올림픽이 열리는 시즌의 첫 대회에서 쾌조의 출발을 알렸지만 또 다시 부상이 찾아왔다. 허리에 다시 문제가 생기며 2차(도드레히트)와 3차(상하이) 월드컵에는 참가하지 못했다. 다행히 부상 회복 이후 4차(서울) 월드컵에는 나설 수 있었다.
이 같은 우여곡절 끝에 그는 결국 올림픽 첫 종목에서 금메달을 따냈다. 이어진 1000m에서는 4위로 시상대에 오르지는 못했지만 이제 그는 500m와 5000m 계주를 바라보고 있다.
# 윤성빈 금메달, ‘새로운 황제의 대관식’
지난 9일 대회 개막 이후 딱 일주일이 지난 시점. 대한민국 선수단에서 또다시 금메달 소식이 들려왔다. 금메달의 주인공은 남자 스켈레톤의 윤성빈이었다. 윤성빈은 한국 동계올림픽 사상 최초 썰매종목 메달로 새 역사를 썼다.
이전까지 남자 스켈레톤은 라트비아 출신 마르틴스 두쿠르스의 천하였다. 그는 2009-2010시즌부터 2016-2017시즌까지 국제봅슬레이스켈레톤연맹(IBSF) 랭킹 1위를 지켜온 명실상부 스켈레톤의 황제였다.
윤성빈이 성장하며 국내에서 주목을 받을 때도 매번 두쿠르스가 함께 언급됐다. 윤성빈 본인 또한 ‘자신의 우상’이라며 그에 대한 존경심을 자주 드러냈다.
2012년 본격적으로 스켈레톤 국제무대에 뛰어든 그는 약 4년 만인 2016년 2월 드디어 IBSF 월드컵 1위에 올랐다. 우상 두쿠르스를 2위로 내려 앉히며 거둔 값진 성과였다.
다음 시즌인 2016-2017시즌에는 8번의 월드컵에서 단 한 번도 5위 밖으로 밀려나지 않으며 두쿠르스를 턱 밑까지 추격했다. 세계랭킹 1위 두쿠르스와의 격차는 단 2계단이었다.
2017-2018 시즌에 들어서며 윤성빈은 한 단계 더 성장했다. 각종 대회에서 그에게 3위조차 어색한 순위가 됐다. 지난해 12월에는 단 한 번도 입상하지 못했던 독일의 빈터베르크에서도 1위를 차지했다. 썰매 종목에서 코스에 대한 익숙함은 성적을 크게 좌우한다. 어떤 코스에서도 자신감을 가지게 된 계기가 됐다.
윤성빈의 금메달은 대한민국을 넘어 아시아 최초의 썰매종목 금메달이다. 평창사진공동취재단
한국에서 열리는 올림픽에서 ‘대관식’만을 앞두고 있던 그는 기어코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0.1초 싸움을 벌이는 종목에서 2위와 1초 이상의 큰 격차를 벌린 압도적인 승리였다. 총 4회의 주행을 종합해 성적을 매기는 대회 방식에서 4회 모두 1위에 올라 놀라움을 안겼다.
세계랭킹 1위와 올림픽 금메달을 동시에 석권한 윤성빈은 그럼에도 두쿠르스에 대한 예우를 잊지 않았다. 윤성빈은 “그는 아직 나에게 우상”이라며 “스켈레톤계에 영원히 남게될 선수”라는 말을 남겼다.
반면 두쿠르스는 끊이지 않는 올림픽 불운에 울어야 했다. 2009년부터 세계랭킹 1위를 고수해온 그이지만 올림픽과의 악연이 이어졌다. 2010 밴쿠버와 2014 소치에서 모두 은메달에 그쳤던 그는 이번 대회에서 4위에 만족해야 했다.
# 부담-실망 극복한 최민정
쇼트트랙 최강국 대한민국의 에이스. 최민정은 대회 시작 이전부터 어깨에 큰 짐을 짊어지고 있었다. 2014년 만 15세의 나이에 성인 무대로 뛰어든 그는 꾸준히 정상급 스케이터로 활약해왔다. 이번 시즌에는 여자 쇼트트랙 4종목(500m, 1000m, 1500m, 3000m 계주) 전체에서 1위를 차지해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었다. 일부 외신에서는 “그가 평창 올림픽 전관왕을 이룰 것”이라는 예상을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대회 첫 종목인 500m에서 그가 겪은 것은 환희가 아니라 시련이었다. 분투 끝에 2위로 결승점을 통과했지만 실격 통보가 내려졌다. 아웃코스로 경쟁자를 추월하다 임페딩(impeding·지연행위) 판정을 받았다.
다른 종목보다도 더욱 공을 들여왔던 500m였기에 상심이 컸다. 쇼트트랙 강국으로 불리는 한국도 역대 올림픽 여자 500m에서는 금메달이 없다. 전이경과 박승희만이 동메달을 목에 걸었을 뿐이다.
1000m와 1500m에서 여왕으로 군림하던 최민정은 선배들의 손길이 미치지 못한 500m에도 욕심을 내며 몸을 만들었다. 순간 스피드와 순발력이 강조되는 500m를 위해 근육량을 늘려 체중도 증가했다. 결국 500m에서도 세계랭킹 1위에 올랐다. 하지만 그가 올림픽에서 받아든 성적은 실격, 최종 6위였다.
경기가 끝난 뒤 최민정은 아쉬움에 눈물을 보였다. 그럼에도 이내 마음을 추스르며 “앞으로가 더 ‘꿀잼’일 것 같다”며 대담한 모습을 보였다.
500m 실격의 아쉬움을 딛고 금메달을 목에 건 최민정. 평창사진공동취재단
그의 공언대로 이어진 쇼트트랙 일정에서 꿀잼 경기가 펼쳐졌다. 17일 열린 1500m 결승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임페딩 반칙이 선언될 틈도 없이 순식간에 선두로 치고 나갔다. 이내 압도적인 스피드로 차이를 벌리며 따낸 여유 있는 금메달이었다.
만 19세의 어린 나이에 꿈꿔오던 올림픽 결승에서 실격 처리를 받아 흔들릴 수 있었다. 하지만 다음 일정에서 기어코 금메달을 목에 걸며 ‘강철 멘탈’을 자랑했다. 대표팀 동료 곽윤기가 소셜 미디어에서 최민정과 함께한 사진에 “너 웃을 줄 아네?”라고 남길 정도로 그는 흔들리지 않는 정신력으로 유명하다. 루틴이나 징크스 따위도 ‘없다’고 말한다. 올림픽 직전까지 이번 시즌 대표팀 생활을 함께한 노아름도 최민정에 대해 “나이는 어리지만 정신력이 정말 강한 친구다”라며 “너무 강해서 때로는 부러질까 걱정도 했다. 실격이 됐을 때도 연락을 했더니 ‘괜찮다’고 쿨하게 답하더라”라고 설명했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