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권석 신궁의 멋진 자세(왼쪽)와 국궁을 즐기는 사람들. | ||
기자가 상암정을 찾은 날은 국궁의 내로라하는 궁사들이 담화를 나누고 있었다. 5단으로 명궁의 반열에 오른 서울시협회 손철현(65) 전무와 9단으로 더 이상 오를 데 없는 신궁 이한철(56), 안권석(45)씨. 전국적으로 신궁이 11명밖에 되지 않는다는데 그 중 두 명이나 한 자리에서 만날 수 있었다는 것은 분명 행운이었다. 이 전무 등은 가끔 이곳에 들러 활을 쏘거나, 체험객들에게 활을 가르치기도 한다.
활은 그 크기에 따라 장궁(長弓)과 단궁(短弓)으로 나뉜다. 장궁은 크기가 2m 이상이다. 재료에 따라 나무로 만든 목궁, 대나무로 만든 죽궁, 소뿔로 만든 각궁, 놋쇠로 만든 철궁 등으로 나뉘며, 몇 가지 재료가 사용됐는지에 따라 단일궁과 복합궁으로 갈린다.
복합궁은 시위를 벗겼을 때 둥그런 궁체가 시위를 걸면 여자의 양 가슴처럼 모양이 변하는데, 이를 만곡궁(彎曲弓)이라고 한다. 탄력과 복원력이 뛰어나 사정거리가 가장 길다. 우리나라의 전통 활은 크기가 1.2m 정도 되는 단궁으로 물소뿔과 소힘줄, 대나무, 뽕나무, 벚나무껍질, 민어부레풀 등을 이용해 만든 각궁이며 만곡궁이다.
양궁과 국궁은 활을 쏜다는 것만 같을 뿐, 활모양에서부터 과녁거리, 자세, 시위를 당기는 방법 등 거의 모든 점에서 다르다. 양궁이 명중률을 높이기 위해 안전장치와 조준기, 무게조절기 등을 활에 부착하는 데 비해 국궁에는 아무 것도 달지 않는다. 단지 오랜 훈련으로 쌓은 감에 의지한다.
시위를 당길 때 양궁은 검지와 중지를 이용하지만 국궁은 엄지로 당긴다. 간혹 사극에서 검지와 중지로 시위를 당기는 장면이 나오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과녁 거리가 양궁은 30∼90m이나, 국궁은 1백45m로 훨씬 길다. 입사 자세도 양궁이 과녁을 중심으로 옆으로 서는 반면, 국궁은 과녁을 마주보고 선다. 양궁은 시위를 턱까지 당기지만 국궁은 어깨까지 당긴다.
신궁 안권석씨에게서 활의 기본자세를 배웠다. 각자 허리에 줌대를 두르고 화살 다섯 시(矢)를 꽂아 넣은 다음, 활 한 장(張)씩을 들고 사대로 나섰다. 신궁의 활은 전통방식 그대로 만든 60파운드 무게의 각궁이었으나, 초보자인 기자는 교습용 25파운드짜리 카본궁을 들어야 했다. 각궁은 역도, 레슬링 선수들도 완전히 당기지 못해 쩔쩔맬 정도로 시위를 당기기가 힘들다. 보통 사람이라면 각궁 시위를 당기기까지 최소 1년은 수련이 필요하다고 한다.
수련용으로 사용하는 카본궁은 25파운드에서부터 60파운드까지 단계별로 있는데, 가장 가벼운 25∼44파운드짜리 연궁에서 시작해서 중궁, 강궁 순으로 무거워진다. 물론 초보자들은 25파운드로 시작한다.
▲ 만곡궁(아래)과 카본궁의 시위를 풀었을 때의 모습. 만곡궁의 복원력이 훨씬 세서 더 멀리 나간다. | ||
“시위를 당기는 손 힘이 세면 우측으로 화살이 향하고, 쥐는 손이 세면 좌측으로 나가요.” 양 손의 힘 균형이 절묘하게 맞아야한다는 안 신궁의 조언이다. 스승의 가르침을 받아 잡념을 버리고 온 정신을 집중해 쏜 세 번째 화살, 드디어 정 중앙으로 1백여m를 날아간다. 짜릿한 성취감이 느껴진다.
거리가 과녁에 미치진 못했지만 스승은 “그것만도 대단한 것”이라고 위로했다. 1백45m까지 날리려면 최소한 45파운드 이상의 활을 써야 한다는 것. 25파운드로는 50m 과녁을 쏘는 것이 보통이라고 한다.
다섯 시(矢)의 화살을 아홉 순, 45시를 다 쏘고 나면 북한산 정상을 등반하는 것과 같은 운동량이 된다는 이한철 명궁의 말처럼 국궁을 쏘는 것은 대단한 운동이 된다. 시위를 당기는 손과 활을 미는 손에는 근육이 붙고, 몸을 지탱하는 하체가 튼튼해진다. 뿐만 아니라 시위를 당길 때 숨을 깊이 들이쉬고, 시위를 놓기까지 한참 참는 것은 단전호흡의 효과가 있다. 과녁을 주시할 때 온 정신을 한 시(矢)에 집중하니 머리 또한 맑아진다. 국궁을 하면서 10년 이상 젊은 신체나이를 유지하게 됐다는 안권석, 이한철씨와 뱃살을 빼고 98kg에서 13kg을 감량했다는 손철현 전무의 말이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상암정 국궁체험은 개인 일일체험의 경우 무료, 10인 이상 단체는 활의 망실이나 화살 분실 등을 고려 1인당 2만원씩을 받는다. 문의 서울시 궁도협회 02-303-5838. 이 밖에 전국 각지의 궁도장 위치와 연락처는 한국 국궁문화세계화협회(www.bowkorea.co.kr) 홈페이지에서 찾아볼 수 있다.
▲상암정 가는 길 : 지하철 6호선 월드컵경기장 역 1번 출구 이용